"왜냐하면 현재 기성세대는 청소년들이 이해할 수 없는 언어를 사용하기 떄문입니다(청소년을 위한 교육예술, 2023, 173)."
슈타이너가 살던 시대(1861-1925)에도 청소년들과 기성세대들과의 괴리가 있었던 모양이다. 물론 지금은 그떄 보다 훨씬 심하고 조금 과장하면 건널 수없는 강이 된듯도 하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가 질문이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 괴리를 줄일 수가 있을까'도 질문한다.
슈타이너는 인간의 정신과학적 요소의 관계, 교사와 아이들간의 관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강의하였다. 인간의 정신과학적 요소는 육체, 에테르체, 아스트랄체, 자아이다. 먼저 말하면 교사의 정신과학적 요소가 아이들의 정신과학적 요소에 당연히 영향을 미친다. 교사의 에테르체는 아이들의 신체에, 교사의 아스트랄체는 아이들의 에테르체에, 교사의 자아는 아이들의 아스트랄체에, 그리고 교사의 정신자아는 아이들의 자아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교사는 아이들의 정신과학적 요소에 올바르게 영향을 미치도록 자신의 정신과학적 요소를 형성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슈타이너는 평생 한 번 특수아동을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강의를 하였는데, 거기에서 슈타이너가 한 말이다. "어린이 속에 에테르체가 어떤 방식으로 쇠약하다는 것을 알아채면, 여러분은 자신의 아스트랄체를 그 아이의 에테르체를 정정하는 작용을 할 수 있도록 형성해야만 합니다(특수교육학 강의 2008, 53)." 그래야 특수아동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은 알겠는데, 문제는 어떻게 할 수 있느냐이다. 요컨대 책에 나오는 인간의 정신과학적 요소도 이해하지 못하는데, 나아가 정신과학적 요소를 형성까지 해야 하니, 필자 역시 이 책을 읽을 당시에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했다.
툭히 '어린 아이들의 문제는 대부분 정신적인 결함에서 나오고, 이런 정신적인 문제는 사춘기 이전에 치료를 한다면 대부분 치유도 가능하다'고 한다. 이런 슈타이너의 주장까지 읽으면, 마음이 더 착잡해진다. 이 문장을 읽은 후, 필자는 현장에서 한 특수아이를 만났다. 당시 아이는 5학년이었고 자폐라는 정도만 알았다. 구체적으로 특수 아이의 정보는 공개하지 않기 떄문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아이가 5학년이면 치료될 수있는 골든 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이가 올바른 치료를 받는다면, 정상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에 조바심이 났지만, 필자가 잘 몰랐기 떄문에 도움을 주기도 어려웠다. 물론 아이의 마음을 최대한 편하게 해주었고 수업을 재미있게 할려고도 노력했지만, 이것이 아이에게 치유로 연결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한 아이의 인생이 결렸는데, 지금도 안타까운 마음이 필자에게 여전히 남아 있다.
여담으로 언론에서 성 정체성에 대한 뉴스를 가끔 듣는데 이것도 마찬가지이다. 아이에게 성정체성의 문제가 있는 것은, 태어날 때 생긴 어떤 정신적인 결함 떄문이다. 괴테도 태어날 떄 에테르체가 올바르게 육체에 안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 아이의 혈색이 새파랗게 질리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괴테는 자연 치유가 되었다고 한다. 또 사춘기의 남자 아이는 혼자서 동굴속에 들어가 숨어있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이 정상이다. 만약 아이가 이런 징후를 보이지 않는다면, 훗날 성정체성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한다(슈타이너의 주장). 이런 징후를 발견하면 곧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문제가 드러난 후에는 벌써 늦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울했는데 등산을 다니면서 치유가 되었다는 경우를 가끔 보듯이, 정신은 자연 치유도 많이 된다. 특히 우리 모두는 자라면서 한번 쯤 문제가 발생했는데, 그떄마다 이런 문제가 대부분 부모님의 사랑으로 해결이 되었다. 짐작하기에 부모님의 사랑이 부모님의 정신과학적 요소를 아이의 정신과학적 요소에 도움이 되도록 형성되게 한 것이다. 지금 인류에게는 정신이 배제되어서, 정신의 실체,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어려운 듯하다. 이렇듯 정신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이를 양육하는 양육자는 이런 상황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청소년과 기성세대간의 괴리도 같은 맥락이다. 먼저 말하면 기성세대의 정신이 청소년들의 정신과 괴리가 있다. 그 괴리는 현재 정신이 배제되어서 기성세대의 정신이 청소년들이 원하는, 닮고자 하는 정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성세대의 잘못도 아니라고 보아도 될 듯하다. 구체적으로 정신은 자라면서 어떤 모델을 필요로 하는데, 현 기성세대가 청소년들이 닮고 싶어하는 모델이 아니다. 슈타이너의 주장에 따르면, "그리스시대는 28- 35세 성인과 14- 21세까지 청소년 사이에 꽤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위 책, 196)." 당시 그리스인은 14-21세 청소년이 원하는 정신을 28- 35세 성인이 기지고 있어서 배울 수가 있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그리스 시대는 14- 21세 청소년이 집을 떠나서 자신이 좋아하는 28- 35세 성인의 집에 가서 공부를 하는 전통이 있었다.
기성세대가 더 이상 청소년들의 모델이 되지 못하자, 이어서 나온 청소년들의 활동이 보이스카웃이다. 자신들의 모델을 자연에서 구한 것이다. 그리고 청소년들 스스로 조직해서 운영하는 활동(자치회)도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들과 기성세대와의 괴리가 줄어들지 않자, 요컨대 청소년들이 기성세대의 말도 듣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한다고 생각이 들자, 드디어는 기성세대가 폭력을 행사해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라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면 정신을 어떻게 찾을 수가 있을까? 정신을 어떻게 이해할 수가 있을까가 질문이다. 정신을 이해해야 기성세대가 청소년들의 모델이 될수가 있기 떄문이다. 바로 말하면 에테르체를 이해해야 한다. 에테르체의 속성, 에테르체를 통해서 자신의 몸이 형성되어서 작동하는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에테르체는 인간의 몸을 형성해서 운용한다. 식물이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듯이 인간에게도 이런 작용이 일어나고, 이를 에테르체가 하고 있다. 이런 에테르체의 작용을 알아야 하는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슈타이너의 설명에 따르면 불, 물, 흙, 공기에 대한 느낌이 있어야 한다. 불을 생각하면 따뜻하지만 건조한 느낌이다. 흙을 생각하면 촉촉한 느낌이 있어야 식물이 자란다는 생각이 든다. 물은 냉기와 습기를, 공기에는 이런 상태가 모두 뒤섞여 있어서 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아는 것이 '무엇이 중요한가'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이런 느낌을 에테르체가 갖고 있는 그 정신 상황이 청소년들이 원하는 정신 상황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에테르체가 온전하게 활동하는 상황이기 떄문이다.
에테르체가 어느 정도 자연과 소통이 되는 상태, 청소년들이 자신들도 그렇게 소통이 되고 싶은 것이다. 왜냐하면 에테르체가 그렇게 소통이 되는 것이 정신이 지향하는 '바'로, 정신이 성장하고 싶은 욕구이기 때문이다. 슈타이너는 청소년들이 숨을 들이 쉬면서 '들판이 초록으로 물든 것'을 느끼고, 숨을 내쉬면서 '나는 무엇이든 할 수있다'는 느낌을 느낀다면, 어느정도는 이룬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이것이 에테르체의 올바른 성장이다. 이렇게 인간의 정신과학적 요소가 성장, 발달하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현 인류가 인간의 정신을 인정하지 않아서, 결과 정신이 배제된 채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정신이 발달하는 단계에 있는 아이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되고 있다. 하지만 정신은 인류의 인정 여부와 상관없이 그 시대에 맞게 발달하고 있다. 그러므로 문제는 내가 나의 정신을 발달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반드시 스스로 해야 하는데, 도움은 도처에 널려있기 떄문에 구하고자 한다면 구해진다는 것도 진리이다.
얼마 전에도 한 유명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안타까웠는데, 그만큼 정신이 나약하다는 의미인 듯 생각이 된다. 이렇듯 정신이 발달하는 기간에 발달하지 못한 때문이다. 즉 정신이 잠을 자는 상황에 온전한 판단을 하지 못했다. 현 상황은 다만 '상'일 뿐인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어떤 상황에도 목숨을 걸면 해결이 된다. 그것은 자신의 정신을 총 동원해서 헤쳐나간다는 의미이다. 정신이 전면에 나서면 극복하지 못하는 어려움은 없다.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되풀이 하지만 정신이 잠을 자기 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