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475) 시 쓰기 상상 테마 5 - ② 역설적 상상력으로 시 쓰기/ 중앙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하린
시 쓰기 상상 테마 5
네이버블로그/ 42. 상상테마41 - 역설적 상상력으로 시 쓰기
② 역설적 상상력으로 시 쓰기
@ 역설을 상상에 적용할 땐
잘 알려진 대로 역설이란 언술 된 겉의 의미가 모순을 일으키지만,
그 속에 진실, 본질, 진리가 함축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아아, 나의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얐습니다.”
(한용운, 「님의 침묵」)와 같은 표현은 역설이다.
사람이 떠났는데, 사람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데 가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과학적 논리로 판단하면 모순이다. 그러나 정서적 논리로 접근하면 그 의미는 달라진다.
‘내 마음속엔 당신이 떠나지 않고 영원히 살고 있으니 나는 당신을 보낸 것이 아닙니다’라는 뜻이 된다.
이별 앞에서도 초연한 자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 알 수 있게 하는 표현이다.
이처럼 역설은 과학적 논리와 객관성의 잣대로 보면 모순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서적 논리로 보면 진실이나 본질, 진리에 부합하는 언술인 셈이다.
역설은 표현 자체가 궁금증을 유발하고 연상 작용을 일으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A는 B가 아니다’ ‘A 안엔 A가 없다’ ‘A가 갔지만(없지만) A는 있다’ 등의 표현에서
A 대신 다양한 단어를 넣어보면 모순된 문장으로부터 ‘왜 이런 표현을 썼지?’하는 궁금증이 발생하고,
그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추리적 연상 작용이 일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머니 안엔 어머니가 없다’라고 표현하게 되면 어머니는 어머니가 가득 차 있는 존재인데
‘왜 없다고 하지?’ 하는 궁금증이 1차적으로 발생한다.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독자들은 어머니와 관련된 이미지들을 취합한다.
그런 고생만 한 어머니에게 주체적인 어머니가 지금까지 없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해답을 찾으려고 발생시킨 연상 작용이 어머니의 본질적인 속성을 더욱더 문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만이 발견한 본질성이나 근원성을 감각적인 언술로 드러내는 것이 시의 목적 중 하나이기에
역설법은 그 목적을 수행하는 데 있어 좋은 창작 도구가 된다.
그러니 자신만이 발견한 본질성과 근원성을 드러내고 싶을 땐 역설적인 사유를 자주 펼치고,
역설적인 문장을 바탕으로 개별화된 연상 작용이나 상상이 동원되도록 해야 한다.
필자의 시를 바탕으로 그것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비상구에 대한 역설
건물은 비상구를 전부 갖고 있는데
사람만 갖고 있지 않다
아니다 누구나 비상구가 있다
그저 사용하지 않을 뿐이다
스스로 폐쇄시키거나 열지 않는 사람들
그중에 한 명은 기필코 내 어머니다
처음부터 갖고 있지 않았던 사람처럼
어머니는 어머니를 끝까지 탈출시키지 않았다
평생 누군가의 비상구만 되어준 이력
어머니의 등엔 날개가 없었다
아니 펴지 않았다
마음속 비상구를 한 번도 들키지 않았다
그래서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나는 궁금했다
비상구가 처음으로 열린 걸까
마침내 닫힌 걸까
― 《리토피아》 2021년 가을호
<1단계> 스스로 점검하기 – 메시지 분명히 하기+내 시만의 장점 찾기
「비상구에 대한 역설」에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어머니가 가진 본질과 근원성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각자만의 비상구가 있는데 화자의 어머니는 끝까지 비상구를 사용하지 않고 돌아가셨다.
“평생 누군가의 비상구만 되어준” 어머니. 그 어머니의 본질성을 드러내기 위해 필자는
시의 처음부터 끝까지 역설적 문장을 나열했다.
살아있는 자가 위기 상황에서 탈출하고 싶을 때 사용하는 것이 비상구인데,
어머니가 탈출을 위해 찾는 것은 ‘죽음’이다.
그 ‘죽음’이 오히려 어머니에겐 비상구가 아닐까 하는 역설적 사유로 인해,
고생만 하다 죽은 어머니의 안타까운 삶이 더욱더 부각되었다.
<2단계> 객관적 상관물(현상)을 찾기+관찰과 조사 정밀하게 하기
이 시에 활용된 객관적 상관물은 비상구이다.
비상구가 어머니의 존재론적 의미를 더욱 명확히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희생만 하면서 살고 있는 어머니 이미지는 너무나 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어머니의 이미지를 무조건 뒤틀어서 ‘낯선’ 어머니
(나쁜 어머니, 개성적인 어머니, 불편한 어머니, 예상치 못한 트라우마를 가진 어머니 등)로 만들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어머니를 표현하되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어머니의 존재성을 세련되게,
선명하게 드러내고 싶었다.
<3단계> 확장하기 – 상상적 체험을 섬세하게 극적으로 하기
앞에서 필자는 역설적 사유 자체가 상상을 동반한 연상 작용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 시를 쓸 때도 역설적 사유를 펼치면서 상상적 체험을 자동적으로 하게 되었다.
‘사람들에겐 전부 비상구가 있다. 어머니도 사람이다.
그런데 어머니에게 비상구가 없다’와 같은 ‘논법’을 펼치면서 어머니의 삶을 연상을 통해 되돌아보았다.
어머니는 그 흔한 비상구 한번 사용하지 않고 일평생 타인의 비상구만 되어주다가 죽는 삶을 살았다.
비상구가 있으면서도 일부러 사용하지 않은 어머니.
그녀의 안쪽엔 무엇이 있었을까, 상상을 했다.
시커멓게 타들어간 애간장과 억눌린 자아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어머니에게 어머니만의 비상구를 만들어줬다.
하늘을 향해 열려있는 비상구, ‘죽음’만이 어머니의 비상구였다.
※ 또 다른 예문 (예문 내용의 기재는 생략함)
· 정숙자의 ‘공간의 역설’ (《불교문예》 2020년 여름호)
· 박남희의 ‘유리창의 심리학’ (《문예연구》 2020년 봄호)
· 신미균의 ‘쥐약’ (《문학과 창작》 2014년 가을호)
<직접 써 보세요>
* 여기에 제시하는 단어를 바탕으로 시 쓰기 3단계를 채워 넣은 다음 시를 한 편 창작하시오.
- 제시 단어: ‘A는 A가 아니다’ ‘A 안엔 A가 없다’ ‘A가 갔지만(없지만) A는 있다’라고 했을 때
‘A 자리에 상상이 가미된 다양한 단어를 넣어보고 시를 쓰세요.
(이 밖에 나만의 시적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것이면 역설과 관련된 다른 방법을 바탕으로 써도 된다.
꼭 이 구조의 문장을 제목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 모티브 속에 주로 활용되는 사물이나 현상을 가지고 창작을 하면 된다.)
| 시 쓰기 3단계 적용 |
1단계 스스로 점검하기 (메시지 분명히 하기 + 내 시만의 장점 찾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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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계 객관적 상관물(현상) 찾기 + 관찰과 조사 정밀하게 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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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계 확장하기 (상상적 체험을 섬세하게 극적으로 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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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가지 시 쓰기 상상 테마(하린, 더푸른출판사, 2021)’에서 옮겨 적음. (2023. 9.24.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475) 시 쓰기 상상 테마 5 - ② 역설적 상상력으로 시 쓰기/ 중앙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하린|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