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477) 시 쓰기 상상 테마 5 - ④ 생체성(몸성)을 바탕으로 상상하며 시 쓰기/ 중앙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하린
시 쓰기 상상 테마 5
네이버블로그/ 44. 상상테마43 - 생체성(몸성)을 바탕으로 상상하며 시 쓰기
④ 생체성(몸성)을 바탕으로 상상하며 시 쓰기
@ 생체성을 상상에 적용할 때
필자는 ‘시클’에서 시에서의 경직성을 탈피하려면 생체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제안한 적 있다.
시는 그 자체로 생명성을 가지고 존재하는 형사의 실체다.
시가 생명성을 가지고 존재하려면 읽었을 때 정서의 파장이나 생각할 거리,
이미지의 움직임 등이 생동감 있게 감지되어야 한다.
잘 쓴 시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독자의 감수성을 깨우지 못하는 시들이 있다.
이지적인 시와 주지적인 시들이 주로 거기에 해당한다.
그런 경향의 시들은 시인의 깨어있는 의식이 강렬하게 다가오게 하고,
현대적인 감각이 시원시원하게 펼쳐지게 하는 장점은 있지만
경직성 때문에 건조하고 딱딱한 느낌을 주는 단점도 있다.
그렇게 건조하고 딱딱한 인상을 주는 시에서 탈피하는 방법은 시에 생체성을 적극적으로 집어넣는 것이다.
생체성은 모든 사물을 생체성이 있는 몸으로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단적으로 말해 시는 머리로 하는 사유가 아니라 몸으로 하는 사유다.
무관심한 독자의 감각을 깨우려면 우리가 직접 관계 맺고 있는
모든 사물을 몸성으로 인식해서 실감(實感)을 던져줘야 한다.
몸성은 만국 공통 언어이기 때문에 공감 지대가 넓고 직접적이다.
시인에게 근원적인 자극이 되는 세계와 대상은 이미 우리 몸과 관계하면서 이미지를 획득하고 있다.
몸과 근원적으로 분리될 수 없는 상태에서 대상과 대상이 만날 수 없는 것이
시 속의 감각화 된 ‘나’와 시적 대상들인 것이다.
몸과 세계는 이미 서로 관계를 맺고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종의 뫼비우스 띠를 형성하고 있다.
그런데도 자꾸 몸성을 버리고 이성을 끌어당기려고 한다면 시 쓰기의 실패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생체성의 중요성을 강조한 글이다.
시를 생동감 있게 하고 감각화시키는 방법은 바로 열린 몸성을 가지고 대상과 상관물을 만나는 것이다.
만나서 대상과 상관물의 몸성을 서로 읽어내고 교류까지 할 수만 있다면 몸성을 바탕으로 한 시를 쓸 수 있다.
몸성의 중요성을 인식했다면 이제 생체성을 활용해서 상상을 적용할 때이다.
으깨다, 물렁뼈, 잎맥, 즙, 흑점, 수혈, 밀어, 치통, 아사자, 골절, 숨, 통, 힘줄, 비듬, 종양, 지문, 손금, 검버섯, 인중, 정강이, 여드름, 눈물주머니, 주름살, 재채기, 장딴지, 속눈썹, 무좀, 뒤꿈치, 배꼽, 판막, 가르마, 각질, 횡격막,
갈비뼈, 뒤태, 비장, 젖꼭지, 콧수염, 맥박, 열꽃, 체온, 혈압, 황달, 제왕절개, 낙태, 생리혈, 면역, 홀몸, 백혈구,
신진대사, 협심증, 골다공증, 저혈암, 콜레스테롤, 제비추리, 수치, 호흡곤란, 심근경색, 달팽이관, 요추, 색맹,
인대, 아킬레스건, 마비, 실핏줄, 디스크, 동맥, 정맥, 발목, 혀, 백태, 백내장, 산통, 녹내장, 자궁, 진통, 동공,
정수리, 편두통, 대상포진, 홍역, 전염, 항문, 독감, 바이러스, 백신, 항체, 풍토병, 항원, 늑골, 다크서클, 급소,
어깨, 견갑골, 명치, 단전, 뇌경색, 암, 구토, 복통, 소화, 울렁증, 엔도르핀, 고지혈증, 하지정맥, 성병, 평발, 기형, 가슴앓이, 결핵, 충치, 복통, 치통, 기생충, 틀니, 심장, 귀머거리, 치매, 쓸개, 변비, 옴, 위하수, 갈증, 화상, 파상풍, 몽유병, 발작, 각혈, 경련, 경기, 화장, 코골이, 마취, 수술 자국, 아토피, 외눈박이, 잠꼬대, 주정, 사랑니, 의식불명, 무의식, 혼수상태, 골절, 이명, 백치, 비문증, 편도선, 땀샘, 다한증, 액취, 헐떡이다. 비틀거리다. 뒤척이다,
허둥대다, 어른거리다, 치근대다, 응얼대가, 칭얼대다, 화끈거리다, 답답하다, 울먹이다, 지루하다, 노곤하다,
상쾌하다, 개운하다, 울적하다, 비웃다, 눈물 난다, 절뚝거리다, 목이 탄다, 피눈물, 손사래 치다, 안절부절못하다, 어리둥절, 체념, 눈물샘, 목울음, 연골, 소름, 쉰내, 천식, 생인손, 훌쩍거리다, 침침하다, 환청, 환각, 앉은뱅이,
겨드랑이, 실핏줄, 속살, 식욕, 혈액, 떨림, 울음
위와 같은 몸성과 관련된 단어를 생각나는 대로 다 적어보자.
그런 후 이질적인 것과 섞어보는 상상을 하면 된다.
‘구름의 눈물주머니’ ‘노래의 혈자리’ ‘시간의 검버섯’ ‘봄의 환청’ ‘슬픔은 면역력이 왜 약할까’
‘콘크리트의 맥박’ ‘고독의 주름살’ ‘그리움은 왜 번식할까’ ‘안개의 심장을 만난 적이 있다’
우울의 급소를 찾을 수 없다‘ 등처럼 생체성을 활용한 상상적 구절이나 문장을 우선 만든 다음,
간절한 개별자의 상황과 결합시켜 시를 전개해 나가면 된다.
필자의 시를 바탕으로 그것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면역(免疫)
새벽 4시 무렵엔 콘크리트의 맥박이 들리고
잠든 아내에게선 물거품 냄새가 난다
계획이란 누구의 것일까
가난은 왜 슬픔보다 면역력이 더 강할까
미래란 단어가 옆구리를 휘감으려다 달아난다
아무리 낮을 치열하게 감당해도
밤은 기름지지 않고
일상은 침투에 약하다
어항에 금붕어라도 키우고 싶다던 아이는
꿈속을 뛰어다닐까 헤엄쳐 다닐까
불황이 나에게만 집중해도
목뼈가 고댁체를 실천해도
침대에 누워
형광등 갓 속 죽은 날벌레들을 본다
죽음 아래에서 몇 년째 괜찮은 척을 한다
비참은 만성이 된 지 오래
비굴은 독종이 된 지 오래
바이러스로 가득 찬 꿈을 꾼다
적응과 순응 두 가지 선택만 있지만
난 끝까지 울지 않는다
나를 지켜보는 신만이
조급할 뿐이다
― 《시와 편견》 2021년 가을호
<1단계> 스스로 점검하기 – 메시지 분명히 하기+내 시만의 장점 찾기
이 시의 제목은 「면역」이다.
면역은 몸속에 들어온 병원(病原) 미생물에 대항하는 항체를 생산하여 독소를 중화하거나
병원 미생물을 죽여서 다음엔 그 병에 걸리지 않도록 된 상태 또는 작용을 의미한다.
반복되는 자극 따위에 반응하지 않고 무감각해지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나타낼 때도 면역이란 말을 사용한다.
필자는 두 번째 뜻을 활용하여 ‘가난은 나에게만 면역력이 강하다’라는 상상력을 펼쳤다.
화자인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면역력이 강한 가난은 나를 떠날 생각이 없다.
평생 따라다니며 나를 괴롭힐 작정이다.
그런 상태에 놓여있는 가난한 화자의 심리 상태를 직관적인 표현을 통해 그려내려고 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역발상도 적용됐다.
‘나’에게 가난에 대한 면역력이 생긴 것(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상태)이 아니라
‘나’에 대한 면역력이 가난에게 생겼다는 설정(암담한 상태).
이 역발상이 「면역」을 개별화시키는 힘이 되었다.
<2단계> 객관적 상관물(현상) 찾기+관찰과 조사 정밀하게 하기
이 시에서 활용된 객관적 상관물은 콘크리트, 물거품, 어항, 날벌레들이다.
맥박이 들리는 콘크리트는 화자가 매우 예민한 상태에 놓여 있음을 암시하고,
아내에게서 나는 물거품 냄새는 쉽게 와해되어버린 희망을 암시한다.
그리고 어항은 아이가 마음껏 펼치고 싶은 소박한 꿈을 상징하고,
‘형광등 갓 속 죽은 날벌레들은 “죽음 아래에서 몇 년째 괜찮은 척을” 하고 있는
화자의 무덤덤한(죽어 있는) 태도를 암시한다.
많은 부분이 시적 진술로 이루어진 이 시에서
객관적 상관물이 들어간 부분은 ‘묘사적 진술’(묘사+진술)에 가깝다
‘묘사적 진술’은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효과를 가진 진술인데,
‘그림 + 나만의 시각으로 발견한 직관(뉘앙스)’의 힘을 갖기에 최근 현대시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다.
“잠든 아내에게선 물거품 냄새가 난다”라는 문장을 예로 들겠다.
이 문장을 읽으면 아내에게서 물거품 냄새가 나는 심상이 펼쳐지고,
‘물거품’이란 단어 때문에 ‘허무’의 이미지가 추가로 뒤따라옴을 느낄 수 있다.
묘사적 진술은 이렇게 묘사가 가진 영상성과 진술이 가진 직관성을 동시에 품는다.
<3단계> 확장하기 – 상상적 체험을 섬세하게 극적으로 하기
이 시를 쓰기 위해 어린아이가 있고 아내가 있는 가난한 화자를 상상했다.
그런 다음 가난에게 볼모 잡힌 상태의 화자가 새벽 늦게 들어오는 장면을 상상했다.
집에 와보니 아내와 아이가 자고 있다.
희망 없는 삶의 연속이라는 듯 아내에게서 물거품 냄새가 난다.
아이를 보자 자동적으로 “어항에 금붕어라도 키우고 싶다던 아이는/
꿈속을 뛰어다닐까 헤엄쳐 다닐까”하는 질문이 떠오른다.
어항을 사주지 못한 미안함을 안고 화자는 자신의 처지를 진단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구절이 탄생했다.
“계획이란 건 누구의 것일까/ 가난은 왜 슬픔보다 면역력이 더 강할까”
“미래란 단어가 옆구리를 휘감으려다 달아난다” “아무리 낮을 치열하게 감당해도/ 밤은 기름지지 않고/
일상은 침투에 약하다”
“비참은 만성이 된 지 오래/ 비굴은 독종이 된 지 오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절망 속으로 자신을 침몰시키지 않을 것임을 언술한다.
“적응과 순응 두 가지 선택만 있지만/ 난 끝까지 울지 않는다”
“나를 지켜보는 신만이/ 조급할 뿐이다”라고 말하여 생의 의지를 불 태운다.
※ 또 다른 예문 (예문의 내용 기재는 생략함)
· 마경덕의 ‘놀란흙’ (『사물의 입』, 가람토, 2016.)
· 김경선의 ‘외로움의 면역체계’ (《수주문학》 2009년 제6호)
· 장인수의 ‘혀’ (《시인세계》 2013년 가을호)
<직접 써 보세요>
* 아래의 예시 구절이나 문장처럼 이질적인 것이 결합된 구절이나 문장을 창작하시오.
그런 다음 생체성과 상상력이 가미된 시를 한 편 창작하시오.
반드시 시 쓰기 3단계를 채워 넣은 후 쓰시오.
― 예시 구절과 문장: ‘구름의 눈물주머니’ ‘노래의 혈자리’ ‘시간의 검버섯’ ‘봄의 환청’
‘슬픔은 면역력이 왜 약할까’ ‘콘트리트의 맥박’ ‘고독의 주름살’ ‘그리움은 왜 번식력이 강할까’
‘안개의 심장을 만난 적이 있다’ ‘우울의 급소를 찾을 수 없다’ 등
| 시 쓰기 3단계 적용 |
1단계 스스로 점검하기 (메시지 분명히 하기 + 내 시만의 장점 찾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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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계 객관적 상관물(현상) 찾기 + 관찰과 조사 정밀하게 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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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계 확장하기 (상상적 체험을 섬세하게 극적으로 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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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가지 시 쓰기 상상 테마(하린, 더푸른출판사, 2021)’에서 옮겨 적음. (2023. 9.30.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477) 시 쓰기 상상 테마 5 - ④ 생체성(몸성)을 바탕으로 상상하며 시 쓰기/ 중앙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하린|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