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함께 우리는 지구적 현 존재안에서 영혼발달의 법칙앞에 서있다. 이 영혼의 발달은 탄생과 죽음에 관한 법칙및 신비와 연관되어있다(인간과 지구의 발달, 2021, 94)."
슈타이너를 공부하면서 느낀 점은 인간에게는 영혼뿐만이 아니라 정신도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영혼과 정신이 보이지 않아서 우리가 모를 뿐이다. 슈타이너 책을 읽으면 각각의 단계가 아주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어서, 각각의 발달단계에 따라서 발달이 이루어진다는 사실도 알 수가 있다. 문제는 보이지 않아서 믿기 어렵다는 사실인데, 좋은 점은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파악해서 영혼의 발달을 도모할 수가 있다. 이렇게 할 경우 문제점은 현실의 삶에서 배제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서 세계적으로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 대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현실의 삶에서 자신의 삶을 구축했다. 그럴려면 일정한 시간 현실의 삶에서 자신을 분리해서 그 물질 분야에 몰입해야 한다. 이것이 자신의 정신을 발달시키는 시간이다.
또 정신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어느 수준에 이른다고 해도 알아차리기 어렵다. 그래서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해야 한다. 그렇지만 정신의 발달은 그 결과가 언젠가는 반드시 드러나고, 또 발달이 이루어진 만큼 앞으로 나아가므로 꾸준히 해야 한다. 지금 비록 정신의 발달에 관해서 관심이 없다고 해도 발달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는 정신이 잠을 자고 있는 경우뿐이다. 이 경우는 자신의 카르마 대로 현실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보면 된다.
현재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경우에 놓여서 고민을 한다면, 자신의 카르마대로 살지 않겠다는 방증이다. 그러므로 이 경우는 정신의 속성에 따라서 선택을 한다면, 자신의 카르마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요컨대 현실의 이익이 아니라 마지노선(불가의 계율 등)을 정해놓고 그렇게 해야 한다. 필자 역시 돌아보면 '불가의 오계'와 같은 정신의 속성에 따라서 선택을 했기 떄문에, 그나마 이 정도나마, 필자의 자아가 안내했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인간은 현재 생 이전 생(전생)에 자신의 목표를 설정해서 온다(슈타이너의주장). 이 목표를 본래 자아가 현 생에서 안내하고 있다. 이를 인간이 모르는 이유는 인간의 본래 자아가 무의식에 내재하기 때문이다. 즉 깨어있는 현실의 의식에서 인간이 알지 못한다. 그래서 현실의 꺠어있는 의식에서 정신의 속성에 따른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파악하는 것도 정신의 발달이 어느 정도 이루어져야만 알 수가 있다.
'영혼발달의 법칙이 뭘까'가 질문이다. 요컨대 정신이 발달하는 법칙이다. 불가에서는 수행이다. 참선과 경전, 얌불을 통하여 영혼발달이 이루어진다. 슈타이너의 방법은 정신과학적 요소의 발달이다. 육체, 에테르체, 아스트랄체, 자아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현재 인류가 정신을 배제해서 이와 같은 정신과학적 요소의 느낌이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느낌이 곧 정신의 발달과 연계되기 떄문인데, 그래서 더 힘들어졌다는 생각을 한다.
다음은 영혼발달의 법칙이다. 첫째, 영혼의 느낌을 느껴야 한다. 예컨대 온기라면 온기를 감각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고, 영혼이 느끼는 온기의 느낌이다. 내면에 아주 집중해야 하는데, 통상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여기에서 영혼의 활동을 감지할 수가 있고, 그렇게 영혼의 활동을 감지하는 것이 영혼과 정신의 발달로 이어진다. 특히 현재의 인간이 어려운 것은 인간 영혼 발달의 단계에 정신을 배제하기 때문에 공교육을 받는 경우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신의 내부와 외부의 연결을 막게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공교육에서 살아 남지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필자 역시 그랬기 때문에 이를 안다.
늘 되풀이 하지만 인간의 발달단계란 인간의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시기이다. 그런 시기에 오히려 현재와 같이 막을 경우, 어떻게 될 것인지는 불을 보듯 환하다. 아이들의 정신이 잠을 자는 것이다. 여기에서 거의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고 해도 전혀 틀리지 않다.
둘째, 에테르체의 느낌, 아스트랄체의 느낌을 느껴야 한다. 나아가 아스트랄체와 에테르체의 움직임을 느껴야 자아의 움직임도 파악한다. 슈타이너는 이것을 오류로 설명한다. 정신은 현실 삶에서 오류로 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현실 삶에서 인간의 자아는 상속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본래 자아는 모든 존재가 다 같은 존재인데, 현실의 자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요컨대 현실 삶에서 모든 존재는 각각 다 다른 존재이다. 그래서 오류라고 밖에 설명할 수가 없는데, 이때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오류에 자신을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즉 만약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이런 오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정신의 상황이 오류를 받아들이는 수준이 되어야 나아 간다. 요컨대 현실 삶에서 정신의 세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수준이 정신세계의 수준에 어느 정도 도달해야 한다.
셋째, 오류에 자신을 맡기는 방법, 오류에 대해서, 외부의 모든 감각을 닫고, 오류의 상을 떠올린다. 그리면 영혼의 작업에 들어갈 수가 있다. 예를 들면 지난 기억을 떠올리면 어떤 상이 떠오른다. 그 상에 집중하면 영혼이 그 상을 만든 상황이 떠오를 것이다. 그 영혼의 활동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외부의 모든 정보를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혼의 활동은 결국 인간의 정신과학적 요소의 활동이다. 이렇게 해서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의 활동을 파악한다. 파악하는 과정이 발달이고, 또 나아가서 법칙에 맞게 발달시킬 수가 있다.
넷째, 외부의 모든 정보를 닫고 떠오른 상이 '상상'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상상과는 다르다. 일반적인 상상이 '대상적 인식'이라면, 정신과학적 상상은 영혼의 활동으로 드러난 상이다. 체험하기가 쉽지 않은데 인간의 몸이 물질에 매여서, 몸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상은 에테르체가 만든다. 인간이 죽으면 육체가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에서 놓여나는데, 이때 아스트랄체가 에테르체의 상을 보여 준다고 한다. 이때 보여주는 상이다.
다섯째, 여기에서 영감으로 나아가야 한다. 영감으로 들어갈려면 에테르체가 만든 상상의 상을 모두 다 지워야 한다. 그러면 영혼의 작업에 들어갈 수가 있다. 여기에서 영혼의 작업이란 대상의 내면으로 들어가서 대상과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다음은 직관이다. 직관이란 영혼이 대상의 내부와 하나가 되어서 대상을 완전히 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점점 더 큰 에너지, 의지의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예컨대 장미를 보면 영혼이 장미의 상을 만든다. 그리고 장미와의 관계, 장미가 아름다운 존재 등등을 파악한다. 직관은 장미의 존재와 완전히 하나가 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영혼의 작업이다. 이런 작업이 내 안에서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 그리고 자아가 함께 하고 있다.
다음은 필자의 경험이다. 어떤 사람이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그 힘든 감정이 자신을 어렵게 한다. 결과 물질체인 육체를 상하게 할 수도 있고, 다른 정신과학적 요소도 힘들어진다. 이런 것을 파악하는 것이 영혼의 활동이다. 물론 자신의 어려움도 파악하도록 집중해야 한다. 그래서 언제나 자신의 시선을 내부로 돌려서 성찰해야 한다. 이것이 영혼의 탄생과 죽음에 관한 법칙및 신비이다.
중요한 것은 누구라도 이런 영혼의 법칙앞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잘 성찰한다면 자신의 영혼을 발달시킬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