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으로 읽는 수요 말씀 ◈
신앙의 징검다리: 사도들과 동행하기- 새로운 기회! (12월 28일)
본문: 사도행전 16:6-15 주관/기도- 김경미/임한별님
바나바와 헤어진 바울에게 나타난 건 선교 활동 중단 사건이었습니다.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을 성령이 막으시므로...”(6절)
잠시 바울의 모든 활동이 중단된 듯싶습니다. 성경은 성령이 그를 일하지 못하게 했다고 적고 있으나 10절에 갑자기 등장하는 ‘우리’라는 단어를 단서로 추론하자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집니다. 그동안 바울은 소아시아에서 활동했습니다. 그의 모든 기반이 아시아였다는 겁니다. 그런 그가 갑자기 활동 중지 상태가 된 후 활동지를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옮깁니다.
바울은 바나바와 갑자기 헤어진 후 심신이 미약해졌을 겁니다. 형제 이상으로 서로 의지했던 사람들의 갈라섬은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고, 심신의 미약으로 옮겨갔음은 이해되는 부분입니다. 게다가 이를 뒷받침하는 건 ‘우리’라는 단어입니다. 여기서 우리란, 동역자 ‘누가’를 말합니다. 누가의 직업은 의사였고, 그는 마케도니아인이었습니다. 병약한 바울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은 의사였을 겁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마케도니아인이었으니 바울은 자연스럽게 유럽으로 방향을 잡았을 겁니다. 성서는 이를 “환상 속에 나타난 마케도니아인”으로 적고 있습니다. 마케도니아는 당시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의 본거지입니다. 바울이 간 드로아(11절)의 원래 이름은 ‘알렉산드리아 드로아’이고 대왕의 이름을 따서 세운 도시입니다. 이웃한 바다 건너에 있는 ‘빌립보’는 대왕의 아버지 이름을 딴 것이었고, 대왕의 이복누이인 ‘데살로니가’의 이름을 딴 도시도 가까웠으며, 주변이 온통 알렉산더의 추억으로 가득 찬 도시였으니 세계를 정복하려 한 대왕처럼 바울은 동서를 아우르는 선교 전략을 떠올렸을 충분한 이유가 되었을 겁니다.
성령은 바울의 육체적 약함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만들게 했습니다. 위기가 새로운 기회라는 걸 성령은 바울에게 보여준 것이죠.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위기가 닥쳤을 때 그것을 어찌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자신의 인생이 달라진다는 걸 알지 못할 뿐이죠.
바울과 누가는 드로아에서 빌립보로 갔습니다. 빌립보에는 회당이 없어서 기도를 하려는 유대인들은 대부분 강가를 찾아 기도했습니다. 안식일에 강가를 찾은 일행은 그곳에서 만난 여인들과 대화를 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빌립보 상류사회 여인들이었다는 겁니다. 그중에 한 사람이 ‘루디아’ 였습니다. 루디아는 상류사회 출신의 여인이었고, 자주 물감 장사를 했습니다. 자주 물감은 어느 조개에서 한 방울씩 수집되는 아주 귀한 연료였습니다. 그러니 그 물감으로 만든 옷이야 말해 뭘 하겠습니까. 루디아는 부유한 상인 귀족이었던 거죠. 그런 루디아가 예수를 믿게 되었으니 바울 일행의 선교는 탄탄해 보입니다.
루디아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바울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14절 후반) 귀담아 들었다는 건 마음을 다해 경청했다는 뜻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여셨기 때문이죠. 마음을 열지 않으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선생님의 말에 마음을 연 학생은 공부를 잘하고, 목사의 말에 마음을 연 교인은 순종합니다.마음을 연 루디아가 제일 먼저 한 일은 1. “집안 식구와 함께 세례를 받고 나서”(15절)
2. “우리 집에 오셔서 묵으십시오.”(15절)입니다.
믿으려면 획기적인 심령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루디아는 자기만이 아니라 온 집안을 세례로 인도했습니다. 또 믿으려면 행동이 필요합니다. 루디아는 일행에게 처소를 마련해 주었습니다.롬 12:13, 벧전 4:9절이 말하는 손 대접하기를 힘쓴 것이죠. 그리스도인은 주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