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492) 시 합평의 실제 5 - ⑨ 박영애의 ‘골목길’/ 한남대 평생교육원 교수 안현심
시 합평의 실제 5
게티이미지/ 골목길
⑨ 박영애의 ‘골목길’
<원작>
골목길/ 박영애
낯선 숲길에서
나뭇가지에 묶인 리본 따라 걸은 것처럼
헤매다 들어선 골목길은 안도와 용기를 주었지
바뀌어버린 간판을 쳐다보며
옛날의 흔적과 기억으로 휘청이는 발걸음
가로등 아래 흰 나방들 춤추고
옥상 스티로폼 사이사이가 제 자리인 양
싹을 틔워 풀밭을 만들고
애벌레처럼 꼬부리다 펴가며
밤낮의 시름을 다독이던 골목길은
웃음 길이었다가
고독 길이었다가
<합평작>
골목길/ 박영애
숲길에서 나뭇가지에 묶인 리본을 따라 걷는 것처럼
헤매다 들어선 골목길은 안도와 용기를 주었지
바뀌어버린 간판을 올려다보며
옛날의 기억으로 휘청거리는 걸음
가로등 아래 불나방이 춤추고
옥상 스티로폼 사이사이 고개 내민 풀
자벌레처럼 꼬부리고 펴가며
밤낮의 시름을 다독이던 골목길,
웃음이었는가, 고독이었는가.
<시작노트>
출퇴근하는 골목길에
열 평 남짓한 가게들이 즐비합니다.
꿈을 갖고 개업하지만
몇 개월 못 버티고 문 닫는 걸 보면서
몹시 마음이 아팠습니다.
<합평노트>
시인은 높지 않은 사람, 엎드린 사람, 가난을 연민하고 다독이는 사람입니다.
시인의 눈은 화려한 것을 좇지 않고 소박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렇기에 작은 상점의 주인이 자주 바뀌는 것을 내 일처럼 가슴 아파하는 것입니다.
이 시는 행의 길이를 좀 늘였습니다.
물결치는 것처럼 유장한 맛을 내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담백함을 추구하고 중복 수식을 피하기 위해 “낯선”, “흔적과”와 같은 어휘는 삭제합니다.
제4연의 “애벌레처럼”이란 어휘를 “자벌레처럼”으로 바꿉니다.
“꼬부리고 펴가며” 기는 것은 애벌레라기보다 자벌레라고 명명했을 때 설득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벌레는 자로 재는 듯 구부렸다 펴기를 반복하면서 기어가는 벌레입니다.
마지막 연의 “웃음 길이었다가/ 고독 길이었다가”라는 표현은 “웃음이었는가,
고독이었는가.”라고 수정함으로써 설의법을 차용하기로 합니다.
설의법은 구체적인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을 향해 반문하는 듯한 물음입니다.
골목길은 지나다니는 사람에게 많은 추억을 안겨주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내용인지 추측해보는 것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입니다.
< ‘안현심의 시창작 강의노트(안현심, 도서출판 지혜, 2021)’에서 옮겨 적음. (2023.11.25.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492) 시 합평의 실제 5 - ⑨ 박영애의 ‘골목길’/ 한남대 평생교육원 교수 안현심|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