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으로 돌아갑시다 (2585) ///////
2017년 영주일보 신춘문예 / 송창권, 임지나
5월 억새에게 내미는 시 / 임지나
할머니들 아직 하늘로 올라가지 마세요
똑똑 분질러져도 자꾸 휘어져도 같이 살아요
저는 꽃의 키만큼도 닿지 않은 걸요
사람이 사람을 뚫고 나오는 걸 알았네요
할머니의 뻣뻣한 발등에서 푸른 순이 올라오는 걸 봤어요
오늘은 밀알만 한 무당벌레가 어디서부터 기어 왔는지
얇고 가는 마른 대를 타고 끝까지 올라가더군요
모든 것들은 꼭대기라는 정자亭子를 향해 나는 걸 좋아하지요
그러다 갑자기 날개를 펼치고 붕붕대네요
늙어서 너무 길어진다고 말씀하지 마세요
누구에게나 넓은 등이 되어 주셨잖아요
쓸쓸한 할머니의 은비녀 사이로 저수지도 보이네요
저수지는 삶이 관통한 듯 여지없이 파랗군요
누런 풀들 사이로 제 눈에 막 들어오고 있어요
그것은 드문드문 보이는, 만질 수 없는 영애令愛같은 고움
잠겨 있는 옛날이야기 같은 거죠
패물 상자처럼 언제까지나 우리 꽉 끌어안고 있기로 해요
몇 해가 흘렀는지 알 수 없지만 늙수그레한 풀과 호수는
이 계절을 처음 앓는 듯 쑥쓰러워하네요
아, 저 성성한 머릿결 같은 햇빛, 약하지만 발걸음 소리 내는 풀
꿀을 머금고 있는 공기, 바람과 나부대는 나무는
저를 교란 시켜요, 할머니
저는요, 조용히 또 임신하고 싶어요
[당선소감]
며칠 전 서점에 갔었는데 시집 코너가 없었습니다.
작은 서점도 아닌데 내가 못 찾는 게 아닌가 싶어 문의해 보니 직원은 한쪽 구석으로 저를 안내했습니다.
서점 바닥에 딱 붙은, 책꽂이 맨 아랫칸, 먼지가 쌓인 곳에 시집들이 자리해 있었습니다.
쪼그려 앉아 읽기도 힘든 자리였습니다.
이렇게 독자들과 소통이 안 되는 좁디 좁은 시와의 거리에서 난 뭘 얻고자 고군분투 하고 있는 건지
잠깐 상념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말하자면 시를 담아내기에 내가 너무 작은 그릇이란 걸 깨닫기도 바쁜 날들이었습니다.
한 가지 확실했던 것은, 시란, 분명 다른 생각, 또, 사물 그 너머의 생각, 허투루 보는
사물의 속성을 꿰뚫어 무엇이라도 저는 시에서 얻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시 때문에 힘들었단 말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시를 공부하고 쓰면서, 삶을 많이 위로 받은 것 같습니다.
문학은 내게 위로였습니다.
쪼그려 앉아 다리가 저려도 서점의 남루한 그 시집들을 전 사랑하니까요.
당선 전화를 받았을 때, 멍해서 좀 주저앉았습니다. 설핏 마취가 된 듯 혼미했습니다.
그리고 서점에서의 쪼그림이 다시 생각났고, 속울음이 일었습니다.
절망의 힘을 다시 믿기로 했습니다.
우석대 안도현 교수님, 교수님은 역시 대한민국의 안도현이십니다. 감사합니다.
진정 흠모했던 유강희 교수님, 교수님 덕분에 시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김혜원 은사님. 조만간 회에 소주 한 잔 올릴게요.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학우들, 만학도 아지매 품어줘서 고맙고,
평생 교육원 시 창작반 선생님들,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새해엔 더 뜨겁고 끈적거리게 시 열심히 쓰겠습니다.
그리고 항상 성실한, 제 시의 첫 독자이면서 시 어렵다고 머리 뜯으며 읽어준 남편 고마워. 무한히 사랑합니다.
시와 소금 임동윤, 박해림 주간 선생님, 언제나 따뜻한 식구처럼 끌어주시고 모든 선생님들 일일이 독려해주시고, 정말 감사드립니다.
더욱 정진하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당신이 내가 필요하다고 말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 맞아 죽을까봐 나는, 빗방울까지도 조심하는...’
베르톨트 브레히트 시인의 이 싯구처럼, 시가, 내가 필요하다고 속삭여 준 것 같습니다.
한걸음씩 정교하고 예민하게 시에게 다가서는 시인이 되겠습니다.
혹시 금명간 비가 온다면 그날만은 비를 맞고 싶습니다.
‘나, 그렇게 열망하던 거 해냈다.’ 라고……. 크게크게 외칠겁니다.
부족한 시에 숨처럼 기회를 불어 넣어 주신 영주일보와 심사위원님께 깊은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고립 / 송창권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숱한 바람 따라 머무른 그 곳
네모난 절벽에 떨어지고 만다
불빛만 화려해진 세상
정작
고요라는 추상은
저 몸짓에 지워져 가는가
여기
좁다란 땅에 발 디딜 틈조차 보이지 않는 세상
스스로 탈출을 시도하지만
콘크리트 벽으로
창살로
아!
동트는 새벽 미명이라도
만질 수 있으려나
아니,
보기만 해도
볼 수만이라도 있으려나.
세상 속에 푹 빠져
나오지 못하는 각진 영혼이여
시나브로 작아지고 있다
버려지고 있다
저 네모 속에 몸부림치는 고적(孤寂),
무덤 속의 침묵!
[당선소감]
끄적거리 시작한건 오래 되었지만, 감히 어딜 출품한다는 맘을 먹은 건 연하의 선배 시인의 권유로 인한다.
"시인으로 등단하고부터 본격적인 시를 쓰는 것이지, 완숙미를 갖춘 후, 등단으로 확인하는 것이 아니"란다.
용기를 내어, 어설픈 시인의 뒤안길을 헤매였다.
일반인들은 시인들이 어떤 시상에 빠져서 즉시 한 간의 돌담집이 만들어 지는 것처럼, 천재를 만들어 버린다.
물론 그런 이들도 있겠지만, 세계적인 작가들도 초고는 끔찍하다고 했을 정도였으니,
찰깍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닐 게다.
더욱이 나의 경우는 두 말 할 것 없다.
왜 퇴고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는지를 실감했다.
시상이 떠오르고 얼른 스케치하고 덕지덕지 유화의 붓질이 수 없이 가해져야 그나마 보였다.
그러다간 더 혼탁해지곤 했다.
지인들과 시인 여러분들의 지도와 애정이 보태지기도 했다.
지은이 송창권이라 쉬이 인치기는 아직 부끄럽고 당황스럽다.
아마도 심사 선생님들께서 "다 내린 진한 아메리카노의 '한' 잔 커피보다는
'두' 잔의 양을 담은 깔대기 속 원두의 기다림에 더 기대를 표해 주셨다"고 여긴다.
만개한 꽃보다 터질 듯한 봉우리의 기대감에 더 점수를 주신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더욱 두렵다.
활짝 피지도 못하고 그저 굳어 버리거나, 떨어져 버릴 봉우리가 되어선 안 되겠다는 다짐도 한다.
한편 만날 과락 수준이었던 아이가 70점대를 받고 기뻐 집 문을 보무도 당당히 걸어 들어가는 것 같은 마음도 한 켵 있다.
중학교 동창 여류시인은 "진정한 시인이라면 시와 악수하고부터는 시를 애인 삼고,
시와 희노애락을 나누며 해로해 간다"고 했다.
"나 정도가" 하고 있었는데, 덜컥 시인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염치없지만,
그래도, 주체 못할 기쁨을 안고 벅찬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먼저 이런 기회를 주신 영주일보와 관계자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밤잠을 설쳐대는 남편에게 "현실을 생각하라"며 핀잔을 주면서도,
늘 안타까운 기대를 거두지 않는 사랑하는 아내 김신영에게 감사하다.
제주시청 공무원인 김정수 시인, 중학교 동창 양순진 시인, 고등학교 친구 강기암 시인,
특히 시집을 건네 주면서 "좋은 시 많이 쓰라"건네 주었던 함민복 시인,
남제주요양원 김영진 목사님 등 여러분들께도 지도와 조언 그리고 응원에 감사를 드린다.
[심사평] 인터넷신문의 깊이가 느껴지는 시인들의 열망
병신년 올해 10회를 맞이하는 영주신춘문예에 응모한 작품들의 응모자들은 다양했다.
여러 해 동안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일념 하나로 작품을 쓰고 지우고 한 원고를 생각하면서
마지막 마무리로 보내온 작품을 감상하노라면 긴장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제주에서 공모를 함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원고들뿐만 아니라,
국제우편으로 보내온 원고까지 각양각색이었다.
또한 최근 추세에 컴퓨터 워드로 작성하는 시대에 원고지에 직접 손으로 쓴 작품들의 열정들도 뜨거웠다.
많은 신인작가들의 원고와 우편요금이 아깝지 않게 좋은 작품을 따지기 전에
그 열정들을 잊지 않기 위해 옥고를 고르기 위해 쉴 여유가 없었다.
우선 심사를 하면서 완벽한 시보다는 현대시의 흐름을 반영하되,
그 중 새로운 감각을 지니되 완성도가 뛰어난 작품을 가려내기로 하였다.
그렇게 해서 본심에 부쳐진 작품으로는 김길전, 김진실, 송창권, 백승권, 임지나 씨의 작품들이었다.
각각 일장일단이 있는 작품이면서도 오랜 세월 습작의 이력을 찾아볼 수 있는 작품들이라는 데는 공감하면서도,
신춘문예 작품의 취지에 맞게 열정적인 작가의 작품을 고르기로 합의하였다.
김길전의 ‘처남댁’이라는 시들에서는
세 편 모두 산문시 형식인 듯한데,
평이한 언어로도 개성을 살린 시편을 만들어냈다는 장점은 있으나 딱딱한 끝맺음의 어휘로 조금은 아쉬움이 있었다.
김진실의 ‘즐거운 식사’는
독특한 제목으로 상상력을 구사하여 맛깔스런 시들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상의 초점을 흐리게 하는 산문적 어법이 아쉬웠다.
송창권의 시들은
응모한 3 편 중 산문시 형식이 아니어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쓴 시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표현에서 조금 아쉬움이 있었다.
백승권의 ‘늘 같은 색의 겨울’ 이라는 시는
그리 도드라지는 표현이 없으면서도 읽고 나면 뒷입맛이 달짝지근해지는 느낌이 있는 시였다.
다만 제목과 내용이 조금은 거슬렸다.
임지나의 시들은
앞에서 지적한 시들의 단점을 거의 지니지 않고 있어 맛깔스런 느낌을 주는 시들이었다.
현실을 바탕으로 하되 현실에 치우치지 않고,
상상력의 유희를 즐길 줄 알면서도 시적 이미지가 난잡하거나 산만하지 않은 장점이 있었다.
최종적으로 남은 작품으로는 임지나와 송창권 두 사람의 작품이 남아,
심사위원들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였다.
그러다가 결국 어느 한 사람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쉽다는 의견에 이르러, 공동 수상자로 결정하였다.
신춘문예에 공동 수상이 마땅한 일일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쪽을 선택하고 다른 쪽을 제외하는 것은 너무 큰 아쉬움이었기 때문이다.
낙선한 분들에게는 격려를, 당선하신 수상자들에게는 큰 박수로 우리 시단의 미래를 기대해 본다.
- 심사위원 양대영 영주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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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ilot
웹사용
보낸 사람 Copilot:
이 시는 할머니의 삶과 경험을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할머니는 노년에도 불구하고 삶의 여정을 꾸준히 이어가며, 자연과 인간의 연결을 느끼고 있습니다.
발등에서 푸른 순이 오르는 모습, 무당벌레의 끈질긴 기어오름,
그리고 저수지의 파란 물결은 모두 삶의 아름다움과 희망을 상징하며,
할머니의 내면을 풍부하게 담아냅니다.
이 시는 우리에게 감동과 위로를 전달하는 작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