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극단적인 사람들이 주장하는 연해주 수복대상영토입니다.
아래 자료는 조선과근대 코너에 실려있지요.
문제는, 그림에선 흑룡강 종점까지 연해주라고 인식하고 본문에서는,
연해주의 면적은 남북한보다 훨씬 적다라고 인식하여 모순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눈대중으로 보아도 지도의 연해주면적은 한반도보다 거의 두 배는 크지요.
어느 쪽이 진실이냐 이전에, 얼마나 우리가 영토를 수복하자 목소리만 무성했지,
연구에 허점이 많느냐를 먼저 인식지 못하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
이래서 제가 수십차례 아래 내용을 주장하는 분과 마찰을 빚고 있는 것입니다.
아래의 문제도 그 분께 제기를 했지만, 신문사에 얘기하라고 하더군요.
이런 식으로 우리가 러시아에 얘기해봐야 바보밖에 안될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걱정입니다. 영토는 나이롱이 아닙니다.
본문의 16만 5900이란 면적은 우수리강과 흑룡강이 합치는 곳 조금 아래에서 비킨강을 따라
동해로 이어지는, 지도상 연해주의 남반부 면적이며 현재 러시아의 행정구역상 러시아어로
프리모리에주(州) 면적이죠. 그 북반부는 하바로프스프주 영역으로, 연해주가 아닙니다.
아무리 동위토문이라지만 문구에만 의지해서 선을 늘리고 늘리고 허황한 지도를 만들지 말자.
흑룡강 꼭대기에 무슨도 무슨군이 설치된 적도 없지 않느냐.
두만강-압록강 이북영역이 조선영토로 그려진 많은 지도가 있지만 아래그림과 같은 지도는 없었다.
조선인들이 건너가 선점하고 개척했다는 것이 인정되려면 어떤 누구가 얼마나 가서
어디를 어떻게 개발하고 그 지역을 지배했는가부터 충분히 밝혀야지
냅다 충분히 정확한지도 의심스런 지도부터 거창하게 그려서 뭐하겠다는 것인가.
이것이 제 생각입니다.
저는 16만 5900 정도의 지역이 연고권이 있다는데는 크게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흑룡강꼭대기까지라는 데는 그 주장의 근거가 심히 허약하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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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 역시 통일 후 영유권 주장 가능 네르친스크 조약으로 동진이 좌절된 러시아가 다시 이곳으로 진출한 것은 19세기 중반이다. 러시아는 1859년 블라디보스토크에 닻을 내렸다. 그리고 이 지역을 러시아 땅이라고 선언했다. 이때부터 러시아 농민들이 연해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와 청은 1860년 11월 2일 베이징 조약을 맺는다. 17세기에는 조선땅이던 연해주 지역이 이 조약으로 러시아 땅으로 인정받는다. 이미 이곳에서 살고 있던 조선인들이 졸지에 남의 땅에 사는 게 된 셈이다. 베이징 조약 이후 조선과 러시아는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직접 국경을 접한다. 박연구원의 표현에 의하면 ‘러시아는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아무르강에서 연해주를 차지’했다. 1860년 제2차아편전쟁으로 청이 영불연합군에 밀려 베이징이 위태로워졌을 때 러시아는 외교적 수완을 발휘해 베이징 조약을 맺은 것이다. 두만강 하구의 섬으로 조선땅으로 기록된 녹둔도도 이때 러시아령으로 들어가고 만다. 반면 이미 17세기에 조선인들이 연해주 지역까지 진출했지만 국력이 쇠약한 조선은 국제정세에 어두웠다. 러시아와 청의 베이징 조약 체결 사실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두만강에서 러시아와 접하게 된 사실을 안 것은 베이징 조약이 체결된 다음해인 1861년이다. 러시아군이 국경비를 세울 때에야 조선은 러시아와 이곳에서 국경을 접하게 됐다는 사실을 안다. 경흥부사 이석영은 조정에 이 사실을 알렸지만 조선 조정에서는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조선인들은 흉년이 들면 간도뿐만 아니라 연해주로 대거 이주한다. 박연구원이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러시아 기록에서는 1860년 이후 조선인들이 이주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미 이전에 조선인들이 진출한 사실을 의도적으로 드러내지 않은 것이다. 조선인들은 1937년 스탈린에 의해 18만여명이 이 지역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다.
이곳 연해주의 면적은 16만 5900㎢. 남북한 면적(22만1000㎢)에 버금가는 땅이다.
한나라당 권오을의원은 지난 4월 1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해찬 국무총리에게 “고구려, 발해와 동북지방에 대한 연고권을 주장하고 이를 한국사에 편입해 기술해야 통일 후 간도 및 연해주 일부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연해주 역시 간도처럼 통일 후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곳으로 지목한 셈이다. 지난해 결성된 간도되찾기운동본부에서도 간도에 이어 연해주의 영유권을 주장할 계획이다. 육낙현대표는 “당초 러시아와 외교 마찰을 빚을까 우려해서 삭제했으나 앞으로 운동본부의 대한민국 지도에 연해주도 포함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육대표는 “연해주는 러시아가 진출하기 이전부터 조선인들이 개간해 살던 곳”이라고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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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고로 러시아어로는 바다가 모례 (Mope)입니다. p를 r로 발음해요. 프리모례주가 바로 바다와 연했다는 연해주 그 곳입니다.
러시아가 강탈한 땅을 무어라 부르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연해주라면 바다와 인접한 대충 그쪽 지역이라는 의미 밖에 없지요. 이런 사소한 일로 싸운건가요?
간도도 문자그대로 하면 어느 대충 두 육지 사이의 사이섬이란 의미밖에 없으니 사소한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영토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명과 그 지명이 미치는 영역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만.
사소하다고 넘기려면 사소할지 모르지만, 진정한 우리 역사의 내용이 뭔지 밝히고 되돌릴 부분은 되돌리는 것은 사소한 문제가 아니겠지요. 무어라 부르는가를 가지고 분쟁한게 아닙니다. 어디까지를 수복해야 맞느냐로 그런 것이죠.
글쎄요..간도에 대한 영유권만을 주장하는 것이라면 연해주 전체를 따지는 것이 과장된 것일지 모르나, 러시아가 이곳을 차지한 것이 거의 불법에 가까웠다고 하는데다가, 이곳의 영유권을 따지고 보면 우리나 만주족 밖에는 없다고 봐야합니다. 과거에는 국경이라는 개념이 없었으니, 불과 조선시대라 하더라도 간도 땅을
정확히 측정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엄연히 따질 수 있는 것이라 한다면 토문강을 경계로 한다는 것 뿐입니다. 게다가 영유권에서라면 만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곳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다만 영토를 갖기 위해 침략주의로 흘러서는 안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