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494) 시 합평의 실제 5 - ⑪ 이세진의 ‘댓방’/ 한남대 평생교육원 교수 안현심
시 합평의 실제 5
Daum카페/ 염소중에 댓방
⑪ 이세진의 ‘댓방’
<원작>
댓방/ 이세진
수업이 끝난 국민학교 오전반 아이들이 목조교실 뒤 콘크리트 담장으로 몰려간다. 얼굴에 흉터가 가득하고 낡고 찌든 바지저고리를 입은 머리 큰 아이가 키 큰 아이에게 손가락질을 한다.
키 큰 아이는 눈을 내리깔며 가소롭다는 듯 쳐다보다 주먹을 날린다. 머리 큰 아이가 맞받아친다. 처음엔 비슷한 듯했지만 머리 큰 아이는 맞아도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나가며 빠르고 정확한 주먹을 계속 날려댔고 키 큰 아이는 주먹이 무뎌지며 뒤로 밀리다 비틀거렸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신이 나서 머리 큰 아이를 둘러싸고 “댓방! 댓방!”을 외치며 급식실로 들어가 양호교사에게서 배식판에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빨간 강냉이죽을 받아 맛있게 먹는다.
운동장 가운데, 아이들이 구름처럼 몰려 있다. 댓방이라 불리던 머리 큰 아이와 덩치 좋은 아이가 말다툼을 주고받다가 댓방이 먼저 주먹을 날린다. 처음 댓방의 주먹이 빠르게 덩치 좋은 아이에게 날아갔지만 갈수록 댓방의 주먹은 약해지고, 덩치의 주먹을 맞는 댓방은 뒤로 밀리며 비틀거린다. 댓방이 쓰러지기 일보 직전 갑자기 옆에서 발이 날아오며 덩치의 가슴을 찬다. 기습공격에 뒤로 밀린 덩치의 등을 다른 발이 날아오며 찬다. 비틀거리는 덩치를 다른 발이 날아와 차며 덩치는 쓰러졌다.
<합평작>
댓방/ 이세진
수업이 끝난 아이들이 목조교실 뒤 콘크리트 담장으로 몰려간다. 얼굴에 흉터가 가득하고 낡은 바지저고리를 입은 머리 큰 아이가 키 큰 아이에게 손가락질을 한다. 키 큰 아이는 눈을 내리깔며 가소롭다는 듯 바라보다가 주먹을 날린다. 머리 큰 아이가 맞받아친다. 처음엔 비슷한 듯했지만, 머리 큰 아이는 맞아도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나가며 빠르고 정확한 주먹을 계속 날려댔고, 키 큰 아이는 주먹이 무뎌지며 뒤로 밀리다 비틀거렸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머리 큰 아이를 둘러싸고 “댓방! 댓방!”을 외쳐댔다.
운동장 가운데 아이들이 구름처럼 몰려 있다. 댓방이라 불리던 머리 큰 아이와 덩치 좋은 아이가 말다툼하더니 댓방이 먼저 주먹을 날렸다. 댓방의 주먹이 빠르게 덩치 좋은 아이에게 날아갔지만 갈수록 댓방의 주먹은 약해지고, 뒤로 밀리며 비틀거린다. 쓰러지기 일보 직전 갑자기 옆에서 발이 날아오며 덩치의 가슴을 찬다. 기습공격에 밀린 덩치의 등을 다른 발이 날아오며 찬다. 비틀거리는 덩치를 또 다른 발이 날아와 차며 덩치는 쓰러졌다.
<시작노트>
국민학교 시절
같은 반이었던 댓방은
어른이 되면 천하무적의 싸움꾼으로
세계 복싱 챔피언의 되리라 믿었다.
그러나, 어느 날
같은 고아원 아이들의 도움으로 쓰러지진 않았지만
분명히 싸움에서 패했다고 한다.
<합평노트>
시를 읽는 동안 영화 ‘장군의 아들’이 연상되며 흥미진진했습니다.
한글도 깨우치지 못했지만 전설적인 주먹으로 군림한 김두한을 부각시킨 영화였지요?
남성의 세계에서는 주먹이 센 것이 대단히 자랑스럽고 부러운 일이기도 한가봅니다.
어린아이들의 시각에서는 얼마나 커보였을까요?
시작 노트를 보면, ‘머리 큰 아이’ 댓방은 주먹의 왕이 될 것이라 믿었지만, 어느 날 싸움에서 패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작품에서는 불굴의 투지로 일어선 싸움꾼으로 묘사되었을 뿐 패했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바로 이 부분이 이 작품의 진가를 높여줍니다.
사건을 형상화하되 처음부터 끝까지 사실대로 형상화하지 않고 일부분만 택해 주제를 생성했다는 것입니다.
시는 어디까지나 허구이기 때문에 사실에 충실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제2연의
“한 무리의 아이들이 신이 나서 머리 큰 아이를 둘러싸고 “댓방! 댓방!”을 외치며 급식실로 들어가 양호교사에게서 배식판에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노란 강냉이죽을 받아 맛있게 먹는다.”라는 형상화는 “한 무리의 아이들이 머리 큰 아이를 둘러싸고 “댓방! 댓방”을 외쳐댔다.”라고 함축합니다.
머리 큰 아이가 이긴 후 아이들의 환호가 중요할 뿐,
삭제한 부분은 주제를 구체화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시인은 싸움을 잘 했는지요?
< ‘안현심의 시창작 강의노트(안현심, 도서출판 지혜, 2021)’에서 옮겨 적음. (2023.12. 5.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494) 시 합평의 실제 5 - ⑪ 이세진의 ‘댓방’/ 한남대 평생교육원 교수 안현심|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