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앙의 징검다리인 수요 말씀 ◈
핵심 주제: 빌라도와 갈리오(2월 15일)
본문: 사도행전 18:12-23 주관/기도- 김중만님가정/임낙성님
고린도에서 1년 6개월을 지내는 동안 ‘갈리오’라는 사람이 주 총독으로 부임했습니다. 성서에 갈리오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는 곳은 없습니다. 그러나 기록에 의하면 갈리오는 모두에게 친절한 사람으로 평가 받았습니다. 바클레이 주석서에 의하면 갈리오의 형제인 ‘세네카’가 갈리오에 관하여 한 말을 실어놓았습니다.
“내 형제 갈리오를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그의 사랑에는 미치지 못한다. 아무도 한 사람에게 친절한 것이 갈리오가 모든 사람에게 친절한 것만 같지 못하다.”
비록 형제가 한 말임을 감안 하더라도 갈리오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됩니다. 사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이런 평가를 받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바울을 해치려는 유대의 무리들도 갈리오의 성품을 잘 알기에 부임 초기에 바울의 문제를 매듭지으려고 재판정으로 끌고 갔습니다. 하지만 갈리오의 친절은 공평함에 기인하고 있다는 걸 그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유대인 무리들은 “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다.”(13절)는 죄목을 들이댑니다. 그러나 갈리오는 “범죄나 악행이면 송사를 들어줄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의 율법에 관한 것이라면 들어 줄 수 없소.”
갈리오의 지혜와 정확한 분석이 빛나는 부분입니다.
난 갈리오가 등장하는 이 부분에서 한 사람이 떠오릅니다. 그건 예수님의 법정에 등장하는 본디오 빌라도 로마 총독입니다. 그도 예수님의 무죄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사람들의 손에 넘겨주며 자신의 무고함만을 손을 씻는 행위로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갈리오는 무리들을 법정에서 몰아내었고, 빌라도는 자신만이 법정으로부터 도망쳤습니다.
갈리오와 빌라도, 빌라도와 갈리오는 우리 안에 늘 존재합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 안에서 말입니다. 그러니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오늘 우리는 갈리오냐, 빌라도냐를 선택해야 합니다.
갈리오는 우리에게 오늘 이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건 논쟁의 부분이 아니다. 재판이나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사느냐 못 사느냐, 잘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당연히 살아야 하는 문제이다.”라는 겁니다.
바울은 이 사건이 있고 나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로 갔습니다.
에베소에서도 잠깐 머문 바울은 예루살렘을 거쳐 안디옥으로 갔다가 얼마간 머문 후에 갈라디아 지방과 부르기아 지방을 돌아보며 신도들의 심령을 굳건히 세우는 일을 했습니다.
여기까지가 바울 사도의 2차 전도 여행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만 깨닫고 갑시다. 그건 갈리오와 빌라도, 빌라도 갈리오 사이에 서 있는 우리들의 인생, 신앙, 삶의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건 논쟁이나 판단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느냐 못사느냐의 문제일 뿐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인이니 그냥 그리스도인으로 살면 됩니다. 어떤 게 잘 사느냐의 판단은 그리스도인으로 살려는 나에게 족쇄가 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