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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으로 돌아갑시다 (2590) ///////
영주신문 2024년신춘문예 극빈 <김도은(본명 : 김정미)>
<신춘문예 시 부문>
극빈
<김도은(본명 : 김정미)>
그 많은 소란과
발걸음과 악다구니들을 겪고도
골목은 여전히 휑하다
그늘이 묻은 소매 끝에
삶은 돼지머리 냄새가 가득하다.
이마를 풀어헤친 나무의 복선사이로
저기, 좁은 골목 끝으로
환한 끝이 보인다.
그 끝으로 얼마나 많은 이쪽을
저쪽으로 끌어들였나.
기울어진 지붕 끝으로 끌어 내린
저 어둑한 그늘들은 누구의 뒤끝들인가
더는 새것이 찾아오지 않는
양쪽을 둔 사이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제
아무도 이쪽 또는 저쪽에 속지 않는다
한때 유일한 재산이었던 포물선들은
조금만 펴거나 휘어도 뚝 부러지고 말 것 같은데
군데군데 구멍 난 혁명가를 입은 노인은
질긴 옛날 노래를 잇몸으로 부른다
극빈은 출렁이는 극한의 자세
팔꿈치에 휘감은 불안은 바짝 마른 저수지보다 컷다.
여전히 붙잡아두고 싶은 것들은 아름답지만
이 극빈도 조만간 헐릴 것이라는 말들
그래, 함께 헐리면 편하지
지탱이 지탱을 업고 하는 말들은 그마저도
죄다 빌려 온 말들이라는 것
돌려줄 곳도 없는 말들이라는 것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는
어둑한 한 평의 미궁들엔 다행히도
무더위가 웅크리고 있다는 것
들어올 것도 없이 여미는 겨울보다는 낫다는 것
홀로, 깊은 안쪽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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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ilot
웹사용
보낸 사람 Copilot:
이 시는 김도은 시인의 작품인 "극빈"입니다.
시의 내용은 골목의 풍경과 그 속에서 느껴지는 빈곤과 불안, 그리고 그 속에서의 삶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골목의 소란과 발걸음, 악다구니 속에서도 여전히 휑한 골목을 그리고 있으며,
삶의 냄새와 그늘 속에서의 고독과 불안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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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주요 테마는 무엇인가요?
Copilot
웹사용
보낸 사람 Copilot:
김도은 시인의 "극빈"은 여러 가지 테마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요 테마는 다음과 같습니다:
빈곤과 불안: 시인은 골목의 풍경을 통해 빈곤과 그로 인한 불안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삶의 냄새와 그늘 속에서 느껴지는 고독과 불안이 주요 요소로 등장합니다.
삶의 고단함: 시 속의 인물들은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살아가고 있으며, 그들의 고단한 삶이 시의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변화와 무상함: 시인은 골목의 변화를 통해 삶의 무상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때 유일한 재산이었던 것들이 이제는 쉽게 부러질 것 같은 상태로 변해버린 모습을 통해, 모든 것이 변하고 사라지는 무상함을 강조합니다.
희망과 절망의 공존: 좁은 골목 끝에 보이는 환한 빛은 희망을 상징하지만, 그 빛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의 어려움과 절망도 함께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 시는 이러한 테마들을 통해 독자에게 깊은 감동과 생각할 거리를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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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은 소란과 발걸음과 악다구니들을 겪고도 골목은 여전히 휑하다
Copilot
웹사용
보낸 사람 Copilot:
이 구절은 시의 분위기와 테마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 많은 소란과 발걸음과 악다구니들을 겪고도 골목은 여전히 휑하다"는 표현은 많은 일들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골목이 여전히 텅 비어 있는 상태를 묘사합니다.
이는 삶의 소란과 혼란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빈곤과 고독을 상징합니다.
이 구절에서 느껴지는 감정이나 이미지에 대해 더 이야기해보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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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이 묻은 소매 끝에 삶은 돼지머리 냄새가 가득하다. 이마를 풀어헤친 나무의 복선사이로 저기, 좁은 골목 끝으로 환한 끝이 보인다. 그 끝으로 얼마나 많은 이쪽을 저쪽으로 끌어들였나. 기울어진 지붕 끝으로 끌어 내린 저 어둑한 그늘들은 누구의 뒤끝들인가 더는 새것이 찾아오지 않는 양쪽을 둔 사이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제 아무도 이쪽 또는 저쪽에 속지 않는다 한때 유일한 재산이었던 포물선들은 조금만 펴거나 휘어도 뚝 부러지고 말 것 같은데 군데군데 구멍 난 혁명가를 입은 노인은 질긴 옛날 노래를 잇몸으로 부른다
Copilot
웹사용
보낸 사람 Copilot:
이 구절은 시의 분위기와 주제를 더욱 깊이 있게 전달합니다. 몇 가지 주요 포인트를 살펴보면:
냄새와 이미지: "그늘이 묻은 소매 끝에 삶은 돼지머리 냄새가 가득하다"는 표현은 강렬한 시각적, 후각적 이미지를 통해 빈곤과 고단함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희망과 절망: "좁은 골목 끝으로 환한 끝이 보인다"는 구절은 희망의 빛을 암시하지만, 그 빛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의 어려움과 절망도 함께 묘사됩니다.
변화와 무상함: "기울어진 지붕 끝으로 끌어 내린 저 어둑한 그늘들은 누구의 뒤끝들인가"와 같은 표현은 삶의 무상함과 변화를 상징합니다. 한때 소중했던 것들이 이제는 쉽게 부러질 것 같은 상태로 변해버린 모습을 통해, 모든 것이 변하고 사라지는 무상함을 강조합니다.
과거와 현재: "군데군데 구멍 난 혁명가를 입은 노인은 질긴 옛날 노래를 잇몸으로 부른다"는 구절은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고단함을 대조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구절을 통해 시인은 빈곤과 고단함 속에서도 희망을 찾으려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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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빈은 출렁이는 극한의 자세 팔꿈치에 휘감은 불안은 바짝 마른 저수지보다 컷다. 여전히 붙잡아두고 싶은 것들은 아름답지만 이 극빈도 조만간 헐릴 것이라는 말들 그래, 함께 헐리면 편하지 지탱이 지탱을 업고 하는 말들은 그마저도 죄다 빌려 온 말들이라는 것 돌려줄 곳도 없는 말들이라는 것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는 어둑한 한 평의 미궁들엔 다행히도 무더위가 웅크리고 있다는 것 들어올 것도 없이 여미는 겨울보다는 낫다는 것 홀로, 깊은 안쪽이 되는 것이다
이 구절은 시의 핵심 주제를 더욱 깊이 있게 전달합니다. 몇 가지 주요 포인트를 살펴보면:
극한의 자세와 불안: "극빈은 출렁이는 극한의 자세 팔꿈치에 휘감은 불안은 바짝 마른 저수지보다 컷다"는 표현은 극빈 속에서 느껴지는 불안과 긴장감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변화와 무상함: "여전히 붙잡아두고 싶은 것들은 아름답지만 이 극빈도 조만간 헐릴 것이라는 말들"은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들이 결국 사라질 것이라는 무상함을 나타냅니다.
빌려 온 말들: "지탱이 지탱을 업고 하는 말들은 그마저도 죄다 빌려 온 말들이라는 것 돌려줄 곳도 없는 말들이라는 것"은 삶의 불확실성과 무의미함을 상징합니다.
희망과 절망의 공존: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는 어둑한 한 평의 미궁들엔 다행히도 무더위가 웅크리고 있다는 것 들어올 것도 없이 여미는 겨울보다는 낫다는 것"은 절망 속에서도 작은 희망을 찾으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구절을 통해 시인은 극빈 속에서도 희망을 찾으려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당선 소감 : 김정미>
당선자 김도은(본명 김정미)
쓸쓸하거나 따뜻하게
절실해질 때마다 망설인 것들을 생각했다. 망설이는 일들만으로 분명해지는 답이 있다면 또 얼마나 좋을까도 생각했었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갖고 있는, 있을 결정들을 사랑하기로 했다.
결정한 일로 이렇게 행복해졌다.
파동이 잘 느껴진다는 것은 내 안에 수만 겹의 파동이 여유분으로 있다는 증거다.
그러니 세상에 풀 죽은 채 돌아오는 날이 많아질수록 시를 써야 할 이유도 늘어났다.
간절한 것을 만들지 말자고 수없이 다짐했었지만,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이 꿈만큼은 쉽게 내려놓아지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시 앞에서 도망치려고 했던 순간마다 내겐 운명처럼 여러 일이 일어났다.
무병을 앓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해될 때도 있었다.
이제, 좋은 글을 쓰는 일만 남았다. 빈 가방을 들고 불룩하게 길을 나서야겠다.
그렇게 좋은 글을 쓰다 보면 한 발자국씩 괜찮은 나와 만나지지 않겠는가.
당선 소식을 그 누구보다 기뻐할 플라타너스 잎들이 휘날리는 교실 창가에서
가파른 세상의 언덕을 오르는 트럭이 삶의 메타포임을 눈 뜨게 해준 시의 첫걸음인
은사님 이영춘 선생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우선순위에 둘 수 있게 해준 든든한 울타리인 남편 이두호씨 존경하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멋진 두 아들 윤범, 윤수에게 부끄럽지 않을 수 있어 고맙고 다행이다.
긍정적이고 이쁜 우리 지은. 늘 응원해준 학순 언니.
언제나 내 편이 되어준 내 동생 정혜. 먼 곳에 계신 아버지 엄마.
그리고 친구들과 문우들.
용기 잃지 말고 앞으로 더 나아가보라고 선물처럼 꿈을 허락해주신 박영교 선생님
이서빈 선생님 이옥 선생님 이진진 선생님 네 분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영주일보 관계자분들께 두 손 모아 감사드린다. 누가 되지 않도록 정진하겠다.
쓸쓸한 길이지만 따뜻하게 따뜻하게 걸어가 볼 수 있을 것 같다.
(2024년) 영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주옥을 골라낸 다양한 심사평
경상북도 영주시 소재 영주신문(대표‧권오섭)은 32년째 계속 발행되는 전국에서 드문 지령 1337호를 맞이 하는 알찬 지역신문이다.
선비의 고장인 영주의 맥을 잇기 위해 2024년 제1회 신춘문예를 개최한 영주신문에 깊이 감사드린다.
총 1756편의 응모된 작품을 심사위원들이 심사하였다.
지역별 응모 편수는 서울 28%, 경기 32%, 강원 7%, 경북 23%, 전남 3%, 전북 2%, 경남 5%를 비롯해 제주 등에서 응모하였다.
처음 실시하는 행사인데도 많은 사람이 응모해 왔다.
응모한 전체적인 작품들을 읽어보면 작품 수준의 편차가 좀 크게 나타나고 있었다.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서는 금방 본 사물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바로 작품으로 승화시킬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마음속에서 삭힌 뒤에
그 엑기스를 뽑아서 작품화해야 좋은 작품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은 새로운 언어를 가져다 쓴다고 해서 좋은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언어가 그 작품 속에서 한 문장에 들어앉아 적확한 언어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작품들이 많았다.
또 다른 하나는 시적인 사회성이나 정치적 이슈 등을 작품 속에 끌어와 쓸 때는
완성도 있게 설정하거나 표출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점을 들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는 한 작품에 대한 이미지의 형상화이다.
작품을 읽어보면 시인이 그 작품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필요한 요소가 두뇌 속에 떠올려져야 하는데
이 작품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분간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대체로 확고한 이미지를 만들지 못한 작품이 많았다.
예심에서 올라온 여러 작품 중 마지막까지 심사위원들 손에 남은 작품은
「대숲과 새」, 「검은 고양이」, 「극빈」 세 편이었다.
그 뒷받침을 해주는 각 4편의 작품이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가가 매우 중요하게 평가되었다.
세 작품은 신선한 이미지를 창출해 내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잠깐잠깐 보고 떠오르는 이미지나 어휘를 적어놓은 것은
그 진한 맛을 독자들에게 제공해 주지 못한다.
이미지의 형상화가 어렵지만,
독자에게 주는 무게는 있어야 작품의 값어치가 나타나는 것이다.
작품 「대숲과 새」는
이미지가 선명하다. ‘대숲이 항문을 조이면/ 새들이 침묵의 그네를 탄다’
‘대나무가 허리를 펴면/ 새들이 알사탕처럼 쏟아진다’ 등의 문장들,
결국은 대숲, 바람, 새들 이 세 명제 속에서 이루어지는 작품이었다.
작품 「검은 고양이」는 좀 다르다.
‘밤의 너그러움을 껴입은 고양이’ 검은고양이를 밤이라는 어둠 즉
밤의 너그러움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나와 검은고양이가 함께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면서 검은고양이에게 자신의 감정을 이입시켜서 마지막으로 끝을 맺는 작품이었다.
작품 「극빈」은
그 첫 연은 어떤 참사를 겪고 난 후
그곳의 골목에 대한 이미지를 이어 나가는 느낌을 주었다.
이 어려운 가난의 끝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예고하기도 하면서
‘혁명가의 노래로 그 길을 벗어 날려는 생각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극빈은 출렁이는 극한의 자세로 변하여 헐리고 말 것이라는 마음을 갖는다.
가난의 삶은 겨울보다 여름이 살아가기가 낫다는 생각에 접어들면서 끝을 맺고 있다.
작품 「극빈」 외 4편의 작품도 고른 수준이었다.
오히려 뒤의 4편 중에서도 이미지의 선명함을 만날 수 있었다.
작품 「모두 저녁을 찾으러 간다」, 「사슴은 수신중」, 「수동식 낙타」, 「하잠夏蠶」을 읽으면서 새로운 이미지를 작품에 적확하게 심으려는 부단한 노력이 보였다.
새로운 어휘를 찾아내어 써서 좋은 작품을 만들려는 노력도 찾아볼 수 있었다.
작품 「하잠夏蠶」은
지하철 계단참에 누워있는 노인을 통해 하잠의 이미지를 얻어 왔으며
그가 돈 통(바구니)을 앞에 놓고 있을 때도 빈 바구니를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푸른 지폐를 한 장(남루도 견본이 필요하다)을 먼저 담아두어야지
지나가는 사람들도 돈을 넣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노인(걸인),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인심’을 이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작품 「수동식 낙타」에서는
‘사막을 달려온 낙타가 온몸을 접는다’로 첫 연을 시작하면서 사람들에게 길들여진
사막에서 살아가는 낙타의 슬픈 생활을 표현하고 있다.
작품 「사슴은 수신중」은
수사슴이 그 뿔을 통해 전파를 찾는다는 느낌을 받아서 그것으로
모든 어려움을 해결한다.
즉 뿔의 주파수에는 맹수를 먼저 찾아내고 고요를 걸러내고, 초록의 여름을 지탱한다.
‘모두 저녁을 찾으러 간다’는
그 첫 연을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날이 새면서부터 모두 저녁을 향해 간다’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가?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이면 일을 다 마치고 어둠이 오기 전 집으로 퇴근하는
일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것을 더 비약해서 본다면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세상을 살아가며 좋은 일을 많이 하고
궁극적으로 마지막에는 죽음을 향해 간다는 것을 낮은 비유로 표출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끝으로 수상자에게는 다시 한번 축하의 마음을 올리며
또한 응모한 모든 분들에게도 건강과 건필을 기원하면서 문운이 함께하기를 기대한다. ■
<심사위원 : 박영교 시인, 이서빈 시인, 이옥 시인, 이진진 시인>
좌로부터 이진진 시인, 이서빈 시인, 박영교 시인, 이 옥 시인, 정구민 시인
<백일장 부문 : 최우수>
선로
<김나현>
현수막이 펄력거렸다. 걸음마다 한기가 서린 바람이 거세게 불어닥치며 내 귀에 속살거렸다. 다만 갓 편의점에서 사온 꿀물 몇 병이 담긴 봉투, 반대 손에 든 휴대폰의 무게나, 그 속에서 튀어나온 전자 음성이 내게 너무도 무겁게 느껴졌던 탓일지 바람의 목소리는 의식의 저편으로 죄묻혀버렸다. 공일공으로 시작하는 모르는 번호와의 전화가 끊어졌다. 직후 나는 휴대폰을 든 손을 떨구고 고개를 드러 하늘 위 현수막을 바라본다. 낯이 익은 대학교의 수많은 동아리 모집 광고가 눈에 들어온다. 눈앞을 맴도는 미련을 차마 떨쳐내지 못하고 눈늘 꾹 감아버린다. 눈을 감아도 선한 환상은 갓 입학하여 무슨 동아리에 들지 설레는 고민을 하던 익숙한 여자 신입생의 모습이다. 전부 기차에 태워 멀리 보내버릴까. 돌아오지 못할 먼 곳으로 보내 내 안에서 모든 추억의 종말을 맞이하게끔 한다. 그 건조한 선로 위의 차창을 열면 다시금 가을바람이 내 뺨을 후려친다. 대학로 한가운데서 멍청하게 무슨 짓이야. 바람이 재차 내게 속삭이면 그제야 곁을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기척을 느끼며 퍼뜩 정신이 든다. 뒤늦게 나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직직 끌며 옮긴다. 지긋지긋하고 동시에 지독할 정도로 정다운 그곳을 향해 내 발로 걸어간다.
끼이익. 문의 경첩이 신음하며 공기의 앓는 소리에 화음을 더한다. 앙코르 요청이라도 보내줄까 싶다. 곰팡이 잔뜩 선 반지하 방의 한구석에는 한 늙은 남자가 등을 보이고 웅크린 채다. 등에 도드라진 척추뼈의 선이 기찻길보다 훨배 더 울퉁불퉁하다. 허리 아래쪽에는 움직이지 말라하여 찬 꼬질한 회색 복대가 단단히 동여매져 있다. 잠자리에 드신 아버지의 모습은 흡사 악몽을 꾸듯 병자의 기색으로 덕지덕지 칠해져 있었다. 윽윽대는 백색 소음 새로 나지막이 묻는다. 아침 진통제 드셨어요?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도 재차 통보한다. 약이 쓰다고 하셔서 꿀물 사 왔어요. 식탁 위에 올려둘 테니까 알아서 드셔. 손에 든 묵직한 봉지를 뽀시락거리며 반지하의 조그마한 앉은상 위에 올려둔다. 봉투의 요란스러운 경적이 정차와 함게 고요해진다. 나는 문득 구석의 잠든 노인을 다시금 눈에 담는다. 기댈 곳 하나 없이 홀로 남은 남자의 등. 뭇내 눅눅한 동정의 물결이 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기댈 곳이 없으니 홀로 생에 닥쳐오는 모든 무게를 감내했고. 그 결과가 지금 이 이 모양 이 꼴. 일찍이 갈라선 어미 대신 하나 남은 딸을 혼자 키워보려던 노력은 차마 당신께서 늘 짊어지는 차가운 공사판 철근들의 마음마저 감읍시키진 못한 모양이었다. 이렇게 된 지도 벌써 일 년이 조금 넘어갈 즈음이던가. 더는 일을 하지 못하는 몸이다. 더불어 병자가 되어 방 한구석에서 끙끙 앓는 병자를 두고 나는 차마 빚을 불려가며 멀쩡이 대학에 다닐 수가 없었다. 생계를 위해 나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오들오들 떠는 주름진 살갗을 응망하다 나는 봉투 속의 뜨듯한 꿀물을 한 병 챙겨 주머니에 찔러넣었다. 다시 현관으로 돌아가 운동화를 구겨 신고, 아버지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나는 그 꿀물을 손아귀에 꽈악 쥐고 있었다.
무거운 발걸음이 멈추어 선 시점은 내가 끝없는 철로 레일을 마주한 즈음이다. 벌써 동료 직원 몇은 기계에 달라붙어 분홍 행주를 들고 일을 시작한 와중이었다. 뽀득거리는 소리가 공기 중에 녹아든다. 음식이 타고 다니는 식품 제조 공장의 선로는 몹시 차가운 온도를 지니고 있다. 나는 익숙하게 작업복 비닐 가운으로 발을 쑥 집어넣어 단숨에 목 아래까지 지퍼를 올린다. 숨이 막히는 비닐 봉다리 속에 갇힌 채, 붉은색의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압축기의 위생 상태를 대충 점검한다. 곧이어 레일이 작동하는 압축기의 전원을 켠다. 우웅. 하는 쇠와 함께 눈앞의 레일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가만히 서서 끝없이 어디론가 흘러가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 무력학 눈동자 속에 담으며 멈추어 있어야만 했다.
휴대폰을 켜자마자 모르는 번호의 안부 문자가 가장 먼저 나를 반겨주었다. 나는 조용히 문자의 내용을 확인했다. 오는 아침의 그 번호였다. 잘 생각해봐. 정혜야. 기차표 살 돈은 보내뒀다. 다시 엄마랑 같이 살지 않겠니? 거기서 더 이상 고생은 그만하자. 너도 네 인생을 살아야지. 우리 예쁜 딸. 건조한 전자 픽셀로 이루어진 글자. 그 안에 담긴 말은 퍽이나 다정하다. 해가 지면 늘 나뭇잎이나 흔들며 서툴게 인사하는 밤바람보단 조금 더 온기를 가지고 있는 몇 마디였다. 여전히 미지근한 온도에서 그칠지언정 마음도 목표도 식어버린 나를 어디론가 이끌기에는 충분한 온도였다. 휴대폰 상단의 알림 방에는 입금 내역이 찍혀 있었다. 십만 원. 만일 기차표를 사지 않는다면 이번 달 아버지의 진료비와 약값에 보탤 시 딱 맞을 액수였다. 문득 난 고개를 들어 저 앞의 반지하 빌라를 눈앞에 담았다. 굳게 닫힌 창문이 바람에 외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어둠에 먹혀 건너편을 비추지 않는 유리창을 지나온 뒷길도, 향하는 목적지조차 알 수 없도록 만들었다. 방향 없는 선로는 어디로 가는가. 정차하는 삶에 안주하는 이가 진정 살아감을 영위하고 있다 부를 수 있을까? 종착역을 앞두고 나는 짐칸을 들여다본다. 드르륵, 잠겨 있지 않은 반지하의 창문이 열리자 달빛은 주름진 초라한 노인의 얼굴 형태를 드러낸다. 밤바람이 나뭇잎을 흔들어대며 운전대를 잡는다. 갖고 내리실 거예요? 그런 속살거림에 나는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짐칸의 문이 다시금 천천히 닫힌다. 칙칙폭폭, 연료를 태우며 멈추는 기차의 모습에서 검게 번진 늙은 노인의 등에 난 검버섯들이 아른거린다. 아스팔트 플랫폼에 딛는 첫 발은, 돌아선 걸음은 짐을 실었을 적보다 무겁다. 그저 한기의 자취를 지우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다 식어버린 꿀물의 미지근한 온도를 손에 쥐어 가두어 버릴 뿐이다. 추적추적 얼룩진 사랑이 내 몸을 씻겨내려 간다.
<백일장 부문 : 우수>
세탁기와 오스트리아
<김주현>
엄마, 나는 오늘 세탁기를 돌렸어요
세제를 들이붓고 섬유유연제를 조금 넣고 문을 꼭 닫고
오후의 햇살이 쏟아지는 내내 세탁기는 돌아가고 나는 잠을 잤어요
꿈에 빨려 들어갔을 때 나는 오스트리아에 있었고
엄마는 베토벤의 묘 앞에서 가만히
울고 있었다
늙은 엄마가 베토벤에게 말하기를,
미안해, 당신을 듣고 싶었는데 나에게는 음반이 없었어
나의 오래된 꿈,
피아노 피아노 피아노
그 위에 손가락 한 번 놓아본 적 없어서 당신을 만나지 못했어
세월이 흐르고 손이 사막처럼 굳어버린 후에 이제야
내 당신의 묘 앞에서 새파랬던 시절을 속삭인다고
더 젊지 못해 미안하다고
엄마,
왜 당신이 베토벤에게 사과를
젊음을 잃어버리게 된 것은 엄마 잘못이 아니라
그저 시대와 아픔과 좌절이 있었을 뿐이라고
소리치려 했던 그 순간에 세탁기가 멈췄다
더 이상 탁탁 돌아가지 않는 세탁기가 마지막으로 도솔미도미솔 노래했고
이젠 축축한 옷가지들을 네가 널 차례라고 재촉하는
세탁기의 건조한 노랫소리를 뒤로 하고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머나먼 우주에 있을 당신과 베토벤과 오스트리아
어쩌면 우리는 언젠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나 조금 더 맑고
깨끗하고 아프지 않고 때 묻지 않은 채로 당신은 베토벤과 나란히 앉아
루체른 호수에서 달이 지는 게 그렇게 아름다웠나요
평생을 궁금해 왔던 것을 그리도 가뿐하게 물어보고
뽀얀 손으로 밤나무 피아노를 치겠지
그건 아마 월광이었을 것이다
저물어 가는 해를 등지고
빨래를 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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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ilot
웹사용
보낸 사람 Copilot:
이 시는 김주현 시인의 "세탁기와 오스트리아"입니다. 시의 주요 테마와 내용을 살펴보면:
일상과 꿈: 시인은 세탁기를 돌리는 일상적인 행위와 꿈속에서의 오스트리아 여행을 대조적으로 묘사합니다. 이는 현실과 이상, 일상과 꿈의 대비를 통해 삶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줍니다.
세대 간의 연결: 시 속에서 엄마는 베토벤의 묘 앞에서 울고 있으며, 이는 엄마의 젊은 시절과 꿈, 그리고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을 나타냅니다. 딸은 이러한 엄마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세대 간의 연결을 보여줍니다.
음악과 예술: 베토벤과 피아노는 시에서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엄마의 꿈이었던 피아노 연주와 베토벤의 음악은 이루지 못한 꿈과 예술에 대한 갈망을 상징합니다.
희망과 회한: 시인은 "어쩌면 우리는 언젠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나 조금 더 맑고 깨끗하고 아프지 않고 때 묻지 않은 채로"라는 구절을 통해, 언젠가 더 나은 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표현합니다. 동시에,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회한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이 시는 일상 속에서 느끼는 감정과 꿈, 그리고 세대 간의 연결을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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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장 부문 : 장려1>
뱃고동
<이혜령>
나는 뱃고동
짠 내 나는 바다의 입김이 금 새 온 몸에 젖어들었죠
물결 속을 가로지르는 고래의 우아한 춤을
바다에 실려 헤엄치는 고기의 파동을 느끼고요
무한한 신비함은 마치 자연이 그린 수채화같이
슬금 다가온 일출을 반기며 온 힘 가득 고동을 울립니다
얼어붙은 바다는 금빛 조각을 머금습니다
어느 순간 숨 쉬던 바다는 고요히 가라앉아요
쓰다듬던 손길은 희미해지고요
살아 숨 쉬는 만물이 사라져가면
어느새 나는 잠잠해져 갑니다
나는 뱃고동
숨 쉬던 바다는 마법에 감긴 채 평화로운 침묵에 잠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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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ilot
웹사용
보낸 사람 Copilot:
이혜령 시인의 "뱃고동"은 바다와 자연의 신비로움을 아름답게 묘사한 시입니다. 주요 테마와 내용을 살펴보면:
자연의 신비: 시인은 바다의 입김, 고래의 춤, 고기의 파동 등 자연의 신비로운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는 자연이 그린 수채화와 같은 아름다움을 느끼게 합니다.
변화와 고요: "얼어붙은 바다는 금빛 조각을 머금습니다"와 "숨 쉬던 바다는 고요히 가라앉아요"라는 구절은 자연의 변화와 그 속에서의 고요함을 표현합니다. 이는 자연의 순환과 평화를 상징합니다.
생명과 침묵: "살아 숨 쉬는 만물이 사라져가면 어느새 나는 잠잠해져 갑니다"는 구절은 생명의 존재와 그 사라짐을 통해 자연의 무상함과 침묵을 나타냅니다.
평화로운 침묵: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숨 쉬던 바다는 마법에 감긴 채 평화로운 침묵에 잠겨요"라는 표현은 자연의 평화로운 상태를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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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장 부문 : 장려2>
고정하세요
<김은성>
고정문씨는 열려 있다
다 닳아버린 척추를 벌린 채로
나는 그 사이에 손가락을
집어 넣는다
바람이 뼈를 만졌다
열린 모습으로 고정된 걸까
고정문씨는 뻐근한 소리로
닫혀 버린다
척추에도 기름칠을 하는지 모두의 척추가 열리나
옆에 있는 미시오 아저씨는 힘이 세고 당기시오 아가씨는 단호하다
그저 자리를 지킬 뿐 척추는 굳어있다
고정문씨, 이제 그만 고정하세요
척추를 계속 여닫으면 척추분리증이 올 것 같아 허리를 매만져본다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고
한동안 고정문씨의 척추가 열리지 않았다
아저씨 힘이 약히지고 아가씨는 유연해져
척추는 계속 닳고 있었다
그만
고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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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ilot
웹사용
보낸 사람 Copilot:
김은성 시인의 "고정하세요"는 독특한 비유와 상징을 통해 인간의 고정된 상태와 변화의 필요성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주요 테마와 내용을 살펴보면:
고정과 변화: 시인은 "고정문씨"라는 인물을 통해 고정된 상태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열린 모습으로 고정된 걸까"와 같은 구절은 변화의 필요성을 암시합니다.
신체와 기계의 비유: "척추"를 기름칠이 필요한 기계처럼 묘사하며, 인간의 신체와 기계의 유사성을 강조합니다. 이는 인간의 고정된 상태가 결국에는 닳고 마모될 수 있음을 나타냅니다.
사회적 역할: "미시오 아저씨"와 "당기시오 아가씨"는 사회적 역할과 고정된 위치를 상징합니다. 이들은 각각의 역할을 지키고 있지만, 결국에는 변화가 필요함을 시사합니다.
피로와 소진: "척추를 계속 여닫으면 척추분리증이 올 것 같아"와 같은 구절은 고정된 상태가 지속되면 피로와 소진을 초래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이 시는 고정된 상태와 변화의 필요성을 통해 독자에게 깊은 생각을 불러일으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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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신문 신춘문예 ‘백일장 부문’ 심사 총평
21세기 지역을 대표하는 영주신문이 ‘제1회 신춘문예 및 학생백일장’을 공모한 것은
지방 자치 시대를 끌고 가는 주역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선비의 고장답게 뒤로 밀린 문학에 중요성을 각인시켜 미래를 이끌 주역들을 발굴한다는 일은 대단히 값진 일이라 생각한다.
첫 회라 응모가 적을까 걱정했는데 많이 응모하였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작품이 많아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수상자가 한정되어 아깝게 떨어진 작품이 많았다.
상을 받은 학생들에게는 축하를 보내고 상을 받지 못한 학생들에게는
격려와 위로를 보낸다.
저마다의 장점을 가지고 있고 공들여 쓴 모든 작품 중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김나현 학생의 수필 ‘선로’를 보면
밤바람이 운전대를 잡고 정차하는 삶에서 살아가는 날들을 선로로 표현하였다.
이혼한 엄마한테 가면 고생을 덜 할 것 같은데 아픈 아버지를 버리고 갈 수 없어
돌아선 걸음은 짐을 실었을 적보다 무겁다.라는 표현에서 일찍 철들어버린 것 같아
가슴 아팠다.
문체나 묘사력에서 보이는 노련미는 평소 글쓰기 연습을 얼마나 꾸준히 해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우수상 김주현 학생의 ‘세탁기와 오스트리아’에서는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꿈을 꾸는 것으로 시를 끌어가며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다.
세탁이 끝나면 들리는 도미솔도미솔 알람 소리와 연관하여 풀어낸 솜씨가 좋았다.
순수함으로 글의 뼈대를 짜고 생각을 충분히 한 관찰력으로 엮어내는 통찰력,
기발한 상상력이 합쳐진 시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장려상인 김은성 학생의 ‘고정하세요’는
고정문을 의인화하여 쓴 시로 언어 유희하기 좋은 우리말이기에
‘고정문씨’‘고정하다’‘고정하세요’등 동음이의어로 표현하였다.
처음에는 어떻게 시작하고 중간 부분에서 어떻게 이야기를 끌어갈 것이며
마무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 문장을 구사하는 솜씨가 좋았다.
복숭아를 안 씻고 껍질째 먹으며 즙과 솜털을 한 편의 시로 녹여낸 ‘알레르기’도
상상력이 풍부한 시이다.
또한 장려상 이혜령 학생의 ‘뱃고동’도
‘바다의 입김’이라든가 바다에 실려 헤엄치는 고기의 파동 같은 것을
얼어붙은 바다가 금빛 조각을 머금고 바다가 조용히 잠기듯
자신도 마법에 잠긴 뱃고동이 된다는 표현은 아주 대단한 상상력을 발휘한 대목이다.
당선자들은 더욱 정진하길 바라고 당선에 들지 못한 분들은 용기를 가지고
내년에 꼭 도전해서 자신의 기량을 견주어 보라는 말을 하고 싶다.
당선자들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심사위원: 이서빈(시인) 이옥(시인) 이진진(시인) 정구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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