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 생명체는 언제까지 이어지려는가. 오늘 아침에도 한강변을 걷는다. 스쳐지나가면 그만인 일들이 주변에서는 끝없이 일어나고 있다. 인간들에게는 별로 상관이 없어 보이는 현상들이다. 생(生)과 사(死)는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생물체마다의 생존 기간이 종(種)마다 고유한 유전자에 따라 천차만별일 게다. 6년여를 땅속에 유충으로 있다가 세상으로 기어나온 매미는 어떤가. 고작 한 달여 전후의 삶을 위하여 그토록 많은 시간을 허송(虛送)한 것은 아닐까. 그 고통의 애닲음이 밤낮으로 울어제끼는 매미의 읍소(泣訴)이련가. 사람의 위치와 생각에 따라서 소음공해(搔音公害) 주범으로도 삶의 희열을 주는 시원한 찬가(讚歌)로 느끼기도 하리라. 책상머리에 앉아서 창밖을 내다본다. 남산과 북한산 인수봉도 시야에 들어오고 있다. 흰구름이 뭉게뭉게 천천히 이동을 하고 있지 않은가. 내려쬐는 땡볕의 폭염을 잠시나마 막아주는 모양새이다.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바람부는대로 고저기압(高低氣壓)의 흐름대로 흐를 것이다. 언젠가는 시커먼 비구름을 머금고 천둥번개를 동반키도 한다. 모든 하천이 홍수로 휩쓸린다. 산사태가 일어나고 축대가 붕괴되고 가옥도 물에 잠기기도 한다. 숱한 재해(災害)가 발생하고 사상자도 속출한다. 이처럼 지구 곳곳에서 자연재해는 계속되며 앞으로도 계속될 터이다. 국경이 사라져버린 지구라는 한 나라가 아닌가. 인종과 피부색이 다를뿐으로 77억 인구를 이루고 있는 지구인이다. 이웃과 이웃 나라와 서로의 의견충돌이나 다툼도 끝이 없다. 77억의 인간들은 자신의 위치와 입장이 다르고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 생각이 상반되면 폭언은 물론이며 폭력을 수반하는 죽음으로 치닫는 전쟁터가 되기도 한다. 촌음이라도 조용하고 편안한 순간은 사라진지 오래이다. 하찮은 동식물들도 생존을 위한 충돌은 불가피한 것이다.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지구 온난화로 야기되는 자연현상으로 돌리기도 한다. 과연 그런 현상으로만 치부하기엔 어리석음이 아닌가. 한 마디로 그런 이유만은 아닌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자. 저 머나 먼 곳 천체의 일부인 수성 금성 목성 토성등에는 이런 아귀다툼은 없을 것이다. 인간과 동식물들의 생존할 수 있는 자연 조건이 없으니 말이다. 다툼의 씨앗 자체가 없다. 그러면 근본적인 원인은 명약관화한 것이다. 바로 생명체인 나 와 너 존재의 본체인 자신에게 있다. 끝없이 다투고 잘잘못을 따지는 도토리 키재기의 연속이 아닌가. 이제 언젠가는 요즘 형태대로 출산율이 이어진다면 어떨까. 최근의 통계로 보아 대한민국의 출산율이 0.98로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이대로 지속된다면 300여년 후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명예(?)의 당사자일 것이다. 30년을 1세대로 환산하면 10대의 우리들의 후손의 존재는 없어진다는 해석이다. 한강가에 코를 박고 널브러져 죽은 갈매기 한 마리가 슬프게 하고 있다. 거둘떠 보지도 않는 존재이지만 노객에겐 아픔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 잔하고 서로가 잘났다고 핏대를 세우며 다투기도 한 녀석들이다. 거듭되는 술잔의 흐름으로 아침까지도 머리가 개운치 않다. 창밖에 떠가는 흰 구름을 보며 나를 본다. 저 구름처럼 흘러가 사라질 운명아다. 과음으로 의견 충돌이 계속되기를 바라고 있다. 존재의 이유만으로도 그 순간만은 살아있음의 행복이 아닐까. 주자십회(朱子十悔)와 삼강오륜(三綱五倫)을 닦달하며 가르치시던 어버이가 생각난다. 취중망언성후회(醉中妄言醒後悔) 술에 쩔어 씨잘 데 없는 언행은 깨면 후회한다는 글귀를 마음 속 깊이 다짐도 곁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