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498) 아끼지 말고 꺼내세요 1 - ② 좋다, 신기하다 말고/ 시인 김복희
아끼지 말고 꺼내세요 1
Daum카페/ [좋은글귀] 삶은 언제나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그 의미를 얻는다 .
② 좋다, 신기하다 말고
“생은 언제나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그 의미를 갖는다.”
만화 『아르미안의 네 딸들』(신일숙)을 관통하는 문장이다.
기원전 5세기경 아르미안이라는 가상의 왕국을 무대로 마누아, 스와르다, 아스파샤, 샤르휘나라는
네 자매의 운명을 그린 이 만화는 1986년에 연재를 시작했다.
내가 『아르미안의 네 딸들』을 처음 본 건 이미 이 만화가 완결된 후였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글을 쓸 수 없는 사람이라고,
특히 시라는 것은 쓸 수 없는 사람이라고 오래 규정해 왔다.
나는 어려서부터 집중력이 부족해 진득하게 한자리에 앉아 몰두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시인에 대한 온갖 낭만적 신화를 들어왔던 통에 시는 태어날 때부터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
모종의 계시를 받아야만 쓸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시인을 도무지 상종 못할 족속이라고 은근히 기피했던 것도 한몫했다
(지금은 일정 비율로 어떤 직업군이나, 어떤 무리에나 상종 못할 족속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랬는데, 이렇게 됐다. 이러고 있다.
저 만화를 읽던 당시의 나는 삼십대의 내가 어떤 사람을 살고 있을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저 만화책을 만났던 시기,
스무 살의 나는 별로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좋아하는 영화를 보거나 만화책을 보거나 소설을 읽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삼십대 즈음엔 대충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주로 나의 여자 친척들―처럼 살겠거니 생각했다.
피를 나눈 사람들 중에서는 문학을 하는 사람이 단 하나도 없었다.
공부를 하는 사람도 없었고. 그러니까,
나는 나와 닮은 어른들의 삶을 보며, 미래의 내가 시를 쓰고 있을 것이라고는 일말의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만 막연히 글 가까이에 있는 어떤 사람,
문학 혹은 활자 근처의 어떤 일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생각했고,
그도 어렵다면 정시 출근과 정시 퇴근이 가능한 일을 하고 여가 시간엔 최대한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정도의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30대의 나는 문학을 하고 있다. 시를 공부해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심지어 시라는 걸 쓰고 있다.
벌써 시집도 세 권이나 냈다.
게다가 내 시를 좋아한다는 독자들도 있다.
제법 드라마틱하지 않는가.
독자라니.
내게 독자가 있다니. 다시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다.
2000년의 내게, 혹은 2010년의 내게 2020년 이후의 나에 대해 말해줄 마음은 없다.
어디 한번 실컷 모르다가 나중에 만나봐라 이런 마음이다.
어쩌면 지금, 시인이 되고 제일 신기한 점은 시를 씀으로 인해 생각보다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됐다는 점일 것이다.
출판관계자나 편집자, 다른 작가들도 만났지만 내가 정말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은 시를 쓰는 사람들,
시를 읽는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났다―
평소 내 인간관계의 협소함을 생각해보면 짧은 시간 내에 정말 놀라울 정도로 사람을 많이 만났다고 자평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를 쓰는 일을 하노라면 사람을 안 만날 것 같았는데,
시를 안 쓸 때보다 사람을 더 많이 만났다.
그들은 내가 시를 쓰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었다.
시를 쓰며 내가 지금껏 만난 그들은 멋진 독자들이기도 했지만, 창작자들이기도 했다.
나는 그들을 만난 것이 무엇보다 내가 시를 쓰며 마주한 가장 놀라운, 예측불허의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2030년 이후의 그들은 또 어떨까 이제 생각해본다.
종종 진행했던 시 창작 클래스에 왔던, 지금 고등학교에서 내게 시쓰기를 배우고 있는,
내 시를 읽고 나를 만났던 그들 모두―나를 포함하여― 2030년이 지나서도 계속 시를 쓰고 있을까?
그들도 나처럼 생에 예측불허한 일로 시를 어쩌다 쓰게 되었을 텐데.
그리고 어쩌다 나를 만났을 텐데,
나를 잊을 수는 있겠지만 시를 쓰던 본인을 잊을 수는 없을 테니 계속 시를 쓰지 않을까.
그런 생각, 그리고 우리가 살아 있어서, 게다가 그들이 쓰고 있을 때 나도 쓰고 있어서,
우리가 또 시 쓰는 사람으로 서로 만날 수 있을까.
그런 생각.
이것은
예상도 아니고, 소망도 아니다.
희망을 품을 일도 아니고, 지레 절망할 일도 아니다.
뭐라고 해야 하나. 예측 불가능하기에 그냥 상상해보는 것이다.
나는 시 쓰는 이들이 품고 있던 기묘한 에너지가 좋았다.
내가 모르던 그들의 지난 시간을 엿보는 게 좋았다.
그들이 스스로를 모르는 만큼 나 역시 그들을 다 알 순 없겠지만, 그들의 불안하게 떨리는 목소리라든가,
그들의 꾸민 말, 꾸미지 못한 말, 그들의 깨진 무릎, 까매진 팔꿈치,
없어진 표정, 새로 생긴 표정 등등을 보며 그들이 써온 시를 읽었다.
그들은 알까.
내가 당신들이 계속 쓰고 읽기를 은근히 바란다는 사실을.
대신 나의 격려나 나의 칭찬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당신들 예측불허한 생으로 인해 그러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그들이 계속 쓰기를 바란다.
오늘 쓴 것이 아주 별로일 수 있고, 영 마음에 안 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2030년이 지나도 그들이 계속 쓰고 있다면 나로서는 그들의 시를 읽고 싶어질 게 분명하다.
내가 그러했듯이 그들도 그들의 독자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게 어떤 기분인지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좋다, 신기하다’ 외의 다른 이야기를.
생은 언제나 예측불허하다. 그들 생의 의미로,
그들처럼 읽고 쓰는 사람이 있어서 2030년의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2030년에도 다들 쓰기를.
< ‘시를 쓰고 싶으시다고요, 김복희 산문집(김복희, 달 출판사, 2023.)’에서 옮겨 적음. (2023.12.17.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498) 아끼지 말고 꺼내세요 1 - ② 좋다, 신기하다 말고/ 시인 김복희|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