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진의 얼굴 덕적도 찾아가다
<전문>
여름이 끝나고 가을에 들어서기 시작한 8월의 마지막날 31일. 파랑기자단은 인천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인 덕적도를 찾았다. 선착장 왼편으로는 꽃게, 민물장어 등 수산물이 직거래되고 있었다. 빨간 앞치마를 두른 아주머니 곁으로 사람들 몇몇이 둘러서 있었다.
그들을 뒤로하고 덕적도의 과거와 현재를 볼 수 있는 장소를 찾았다. 한전쟁 당시 전장에 참여했던 학도병의 기억부터 오늘날 덕적도의 모습을 말해주는 이들을 만났다.
▲160명의 덕적도 학도병 한국전쟁에 참여하다
흰 참전용사 모자를 쓴 나이든 송은호(87)씨가 보였다. 그의 모습은 87세라는 나이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가 입을 연 순간 오랜 세월에서 느껴지는 묵직함이 전달됐다.
송 씨는 “6.25때 학도병으로 참전했었다. 그때 내 나이가 17살쯤 이었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동산중에서 레슬링선수로 활동하던 중이었다. 합숙훈련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싸이렌이 울렸다. 인민군 남침을 알리는 소리였다”고 말했다.
한국전쟁이 시작되고 난 후 송씨는 덕적도로 피신을 갔다가 학도병의 길을 걷게된다. 본격적인 전쟁의 시작이었다. 밤중에는 포탄소리로 잠을 못 이루고, 낮에는 피난민들이 줄을 이었다.
그는 “덕적도에 160명이 학도병으로 참여하게 됐다. 우린 훈련을 받기 위해 부산으로 향했는데 도착해서 학도의용군을 결성하고 대구보총대 소속으로 지리산 965고지에서 북한군과 끝까지 싸웠다”고 전했다.
▲옹진군의 명소 덕적도 자갈마당
시간이 흘러 한국전쟁의 풍파가 가시고 오늘날에 이르러 덕적도는 한국에서 제일 가고 싶은 섬 안에 들었다. 북2리 이장 김계철(69)씨를 만났다. 이장은 “덕적도 14개리는 다른 곳들과는 차별화되는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 그 중 하나인 자갈마당은 일반적인 백사장 해변에서는 물론 우리나라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예쁜 돌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 자갈마당의 돌들이 많이 훼손되고 심지어 관광객들이 돌을 담아가는 등 심각히 자갈들이 줄고 있다. 옹진군 덕적면사무소는 자갈을 보호하기위해 돌을 가져가면 벌금형에 쳐해진다며 관광객들에게 주의의 문구를 걸었다. 자갈마당 입구쪽에는 풍력발전기 위치해 있다.
▲덕적도의 숨겨진 일꾼 부녀회
덕적도의 살림을도맡아 하는 부녀회는 약 70명으로 구성돼 있다. 덕적면 부녀회 부회장 박혜숙(63)씨는 “덕적도의 부녀회에서는 김장철에 보조를 해주고, 어르신들의 집을 청소해주며, 한달에 다섯 번 정도 반찬을 만들어주고 그 종류는 네가지정도 된다”고 말했다.
부녀회는 단체로 난타를 4년째 하고 있고, 매주 목요일 연습한다. 올해 섬의 날이 제정되어서 목포에서 축제에 참여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으로는 어느 노부부가 거동이 불편해서, 육지의 가족들과 만나지 못했을 때, 말한마디 같이 해주면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거대한 크기의 무인도
자갈마당에 근처에는 큰 무인도가 있다. 마치 2개의 섬이 이어진 듯, 나눠진 듯 헷갈리게 보일때도 있지만, 뒤쪽으로 이어져있다. 이 섬의 명칭은 “선미도“ 전체크기가 60만평에 달하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섬으로 알려져있다. 이 섬에는 전국에 4손가락안에 드는 우뚝 서 있는 등대가 위치해있고, 산양,노루 등 야생에 방목해 키운다. 예전에는 2가구 정도 거주했지만 지금은 등대지기 2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는 무인도이다.
옹진의 얼굴 덕적도 찾아가다
<전문>
여름이 끝나고 가을에 들어서기 시작한 8월의 마지막날 31일. 파랑기자단은 인천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인 덕적도를 찾았다. 선착장 왼편으로는 꽃게, 민물장어 등 수산물이 직거래되고 있었다. 빨간 앞치마를 두른 아주머니 곁으로 사람들 몇몇이 둘러서 있었다.
그들을 뒤로하고 덕적도의 과거와 현재를 볼 수 있는 장소를 찾았다. 한전쟁 당시 전장에 참여했던 학도병의 기억부터 오늘날 덕적도의 모습을 말해주는 이들을 만났다.
▲160명의 덕적도 학도병 한국전쟁에 참여하다
흰 참전용사 모자를 쓴 나이든 송은호(87)씨가 보였다. 그의 모습은 87세라는 나이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가 입을 연 순간 오랜 세월에서 느껴지는 묵직함이 전달됐다.
송 씨는 “6.25때 학도병으로 참전했었다. 그때 내 나이가 17살쯤 이었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동산중에서 레슬링선수로 활동하던 중이었다. 합숙훈련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싸이렌이 울렸다. 인민군 남침을 알리는 소리였다”고 말했다.
한국전쟁이 시작되고 난 후 송씨는 덕적도로 피신을 갔다가 학도병의 길을 걷게된다. 본격적인 전쟁의 시작이었다. 밤중에는 포탄소리로 잠을 못 이루고, 낮에는 피난민들이 줄을 이었다.
그는 “덕적도에 160명이 학도병으로 참여하게 됐다. 우린 훈련을 받기 위해 부산으로 향했는데 도착해서 학도의용군을 결성하고 대구보총대 소속으로 지리산 965고지에서 북한군과 끝까지 싸웠다”고 전했다.
▲옹진군의 명소 덕적도 자갈마당
시간이 흘러 한국전쟁의 풍파가 가시고 오늘날에 이르러 덕적도는 한국에서 제일 가고 싶은 섬 안에 들었다. 북2리 이장 김계철(69)씨를 만났다. 이장은 “덕적도 14개리는 다른 곳들과는 차별화되는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 그 중 하나인 자갈마당은 일반적인 백사장 해변에서는 물론 우리나라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예쁜 돌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 자갈마당의 돌들이 많이 훼손되고 심지어 관광객들이 돌을 담아가는 등 심각히 자갈들이 줄고 있다. 옹진군 덕적면사무소는 자갈을 보호하기위해 돌을 가져가면 벌금형에 쳐해진다며 관광객들에게 주의의 문구를 걸었다. 자갈마당 입구쪽에는 풍력발전기 위치해 있다.
▲덕적도의 숨겨진 일꾼 부녀회
덕적도의 살림을도맡아 하는 부녀회는 약 70명으로 구성돼 있다. 덕적면 부녀회 부회장 박혜숙(63)씨는 “덕적도의 부녀회에서는 김장철에 보조를 해주고, 어르신들의 집을 청소해주며, 한달에 다섯 번 정도 반찬을 만들어주고 그 종류는 네가지정도 된다”고 말했다.
부녀회는 단체로 난타를 4년째 하고 있고, 매주 목요일 연습한다. 올해 섬의 날이 제정되어서 목포에서 축제에 참여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으로는 어느 노부부가 거동이 불편해서, 육지의 가족들과 만나지 못했을 때, 말한마디 같이 해주면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거대한 크기의 무인도
자갈마당에 근처에는 큰 무인도가 있다. 마치 2개의 섬이 이어진 듯, 나눠진 듯 헷갈리게 보일때도 있지만, 뒤쪽으로 이어져있다. 이 섬의 명칭은 “선미도“ 전체크기가 60만평에 달하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섬으로 알려져있다. 이 섬에는 전국에 4손가락안에 드는 우뚝 서 있는 등대가 위치해있고, 산양,노루 등 야생에 방목해 키운다. 예전에는 2가구 정도 거주했지만 지금은 등대지기 2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는 무인도이다.
▲서포리해변
서포리해변은 잔디가 흰 모래밭을 대신하는 사파리같은 곳이다. 이곳은 울창한 소나무 숲이 사이에 위치한다. 전체나무비중의 90%가 넘는 수준을 차지하는 덕적의 소나무 중에는 300년이 넘는 적송도 존재한다. 솔향기가 나는 서포리해변과 덕적을 거쳐 다시 우리의 숙소로 돌아간다.
제물포고 1 최영재/정석항공고 1 문승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