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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 2년을 잿밥에만 관심두고 확수 고대하며 기다린 논어반 졸업여행이다.
'날라리' 학생으로 부끄러움을 숨기고 늘~책만 가슴에 품으며 공자님의 고향인 곡부에 하늘을 기다렸다.
여행가방은 일주일째 거실에서 입만 벌리고 있다. 셔츠하나 또 팬츠하나 던져주고 ''썬그라스는 필수!...'' 던져 넣는다.
여행 전 날, 사족에 힘이 풀리고 여행을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든다. 딱히 이유가 없이 울하였다.
석경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장경숙선생님과 함께 오셔요.'' 걱정이 되셨는지 나를 챙기시며 공항에서 만나잖다. 나는 남의 일처럼 감흥없는 대답을 했다.
내일 아침 7시40분까지 서정마을 버스정류장에서 보자는 장선생님전화가 또왔다.
도대체, 여행여비를 모으기 시작하던 때의 '졸업여행' 그 설레임은 어디에 숨었을까?
나는 깊은 밤을 낮처럼 2%부족한 사람이 되어 헤메고 있었다..
새벽 3시30분, 오밤중 아래윗집 층간소음도 아랑곳하지 않은채 에팃켓도 잃어버렸다. 눈에 띈 이테리때타올로 종아리를 몇번 쓱쓱 밀다 '' 가져가서 호텔에서 때를 밀까?'' 한 참은 족히 이러고 있었다.
이렇게 난리 부르스를 치고 있다가 아침을 왔다.
한숨도 못 잔 정신으로 준비를 다 하고 침대에 벌렁 다시 눕는다.
7시40분약속을 확인하고 3200번노선과 버스가 어디쯤 오는지 살펴본다.
장선생과 약속시간 40분전이다. 버스는 능곡초등학교앞에 있다. 그리고는 다음버스 안내가 뜨지 않고 ''다음버스정보없음'' 이라고 계속뜬다. 순간 정신이 허해진다. 머리는 안개속인데 몸이 뭔가 서둘러야 한다는 불안함을 알고 있는 듯 했다. 바로 전까지 감흥없는 느긋함은 뭐였던가.
내몸은 순식간에 여행가방 접어 바로 길로 뛰쳐 나왔다. 이번 버스를 타야 장선생님과 약속한 시간에 만날 수 있다는 생각 이외에는 다른 생각은 할 수 없다. 다음 버스는 없다고하니 놓치면 사후처리가 복잡할 듯하다. 번잡함은 싫다.
가방바퀴가 부셔져라 신호 무시하고 공원을 통과하여 사력을 다해 뛰고 또 뛰었다.
가슴은 아파 한거름도 못 걷겠다.
땀은 범벅이다. 그러나 쉴 수가 없었다.
뻘건 덩치 큰 공항버스는 나와 경주에서 이겼다는 듯 정류장를 지나 신호대기에 당당히 서 있다.
나는 순발력에 귀재답게(자칭) 사차선도로를 가로 질러 버스앞에서 여행가방을 번쩍 들었다.
기사님 왈, ''이 버스는 어디서나 손만 들면 언제나 태워줍니다.'' 한다. 버스는 어이없이다는 듯 나를 태웠다.
'다음버스정보없음' 이 호랑이처럼 무서웠나보
다. 비내리 듯 흐르는 땀은 공항가까와서야 그쳤다. 포기하려던 여행의 설레임도 회생되고 있었고 얼그러져 장선생님과는 공항에서 만날 수 있었다.
공항은 딸내미가 걱정하는 인산이내는 아니다. 연휴치곤 한적해 보인 공항이 여유롭다.
나는 실룩실룩 웃고 있다. 쎌카로 인증사진도 한장 남긴다. 송운선생님의 자부를 빼고는 모두 경전반으로 얼굴들은 알지만 아직은 서먹하다.
(낮가림)
''내가 공자님을 만나러 가는 줄 어찌 알았을까?''
공자님의 주옥같은 말씀이 비행기 안을 가득채우고 있다. 신기한 장면이다.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담아 행동으로 실천하려는 그동안 귀동냥한 글귀들이 비행기 벽면에 전시되어 있다. 마치 수업 시간처럼 편안해진다.
산동공항에 내려서 가이드가 인솔한 식당으로 간다.
아침도 거른지라 점심은 돼지고기 두르치기와 비슷한 볶음이 맛 있었다. 특히 중국의 중국소주였던가~향과 맛이 딱 달라 붙는다.
향이 좋아 엄마선물로 한병 사기로 결정 해둔다.
달달한 청오이가 맛있었다. 내 혼자 한접시는 먹어 치웠을것이다.
차창 밖은 내가 생각하는 중국이 아니였다. 우리나라 외각 신도시를 상기 시킨다. 붉은 글씨의 한문들만 아니면 꼭 우리나라를 닮았다.
첫 방문 한 곳은 황제들이 태산에 신에게
제를 지내는 대묘라는 곳이다. (중국의 삼대궁 중 하나) 여기도 붉은색의 등들이 신을 부르 듯 줄렁줄렁 달려있다. 성인에 가까울수록 동물신을 많이 불러 드린다 한다. 지붕 끝마다 온통 동물신으로 가득차 있다. 귀신이라고 하니 기분이 옺싹해지기도 해진다.
한문이 가득새겨진 비석들로 곳곳에는 역사와 성인의 흔적을 보존하고 있었고 안내판에 화살표가 아니면 길을 잃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신성한 만큼 엄숙했고 세번의 절로 태산에 신들께 방문인사를 드렸다.
호텔은 오성급으로 룸과 화장실이 전면 유리로 연인들의 러브식 구조로 낮 뜨거웠다. 깨끗하였다.
침대에서 훤히 들어다 보이는 화장실이 나는 걱정이다.
가릴 수 있는 방법을 꽤를 내봐도 신문도 없고 이불은 무겁워 안돼고 옷이라도 가려보려해도 붙힐 테이프도 없구 여러가지 생각중인데 장선생님이 화장실에서 뭔가 찾은 듯 하더니 갑자기 투명한 유리앞으로 막이 스르르 쉽게도 내린다.걱정하고 복잡한 마음이 순식간에 해결되었다.
한숨 돌리고 본능에 의한 볼일을 보러 화장실에 들어가 에팃켓인 잠금을 하였다. 나오려는데 잠금이 계속 헛돈다. 끙끙데는 내게 장선생님은 ''천천히 잘 해 봐요. 호텔에 전화도 안 받아요.'' 하며 주문을 해보지만 안된다. ''속옷이라도 입었으니 망정이지!'' 짧은 순간 나쁜생각만 스친다. 겨우겨우 잠금 상태를 달래어 나왔다. 그 뒤 그 잠금은 완전히 무시했다.
티비에서나 본 자라탕과 귀한 요리로 저녁식사를 하고 호텔 뒤 호수가 있는 산책길에서 구심원장님과 석경선생님에 라이브야외특별공연은 멋진 음악회를 보는 듯 즐거웠다. 우리는 약간에 상기되어 우와하게 글래식한 시간을 가졌다.
다음날, 쾌적한 태산의 아침 공기를 마시고
황궁정에 오른다.
1008계단을 올라야 한다는 황궁 이곳을 우리는 케이블카로 오른다.
중국의 많은 황제중에 24명의 황제만이 올랐다는 황궁정이란다. 높기도 하지만 공덕과 황궁정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이 된 황제만이 올라 제를 지낼 수 있는 곳이라고 주역반장님께서 말씀해주신다. 이러한 대산을 무지랭이인 나는 너무도 쉽게 올랐다.(케이블)
감개무량하기 한이 없다. 험하고 높은 산을 걸어서 오르셨을 황제님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다.
우리에게 행운도 있었다. 아무데서나 보기드믄 해무리광경이다.
경전반의 방문을 환영한 태산의 신들이 주신거라고 믿고 싶었다.
몇 명 뒤쳐져 꼼꼼히 공자님에 채취를 향 내음으로 뵈었다. 공자님의 제단앞에서 경의를 표한다.
아무나 근접하는 곳이 아님을 한 눈에도 알 수 있는 황궁정이 신의 영험함이 흐르고 있었다.
사진으로 담을 수 있는 영광도 주워졌다.
깜직하신 병이님이 보시처럼 소중히 짐에 매달고 온 시원한 맥주 한 잔을 제단에 받치는 의식처럼 우리 몇 명은 살짝 마시는 짜릿한 시간도 가졌다.
내려오는 길에 석주님과 오징어구이 주문줄에 끼워 한입 탐내다 집합장소에 꼴찌로 도착한다 미안한 마음에 정작 그 구은 오징어는 온데 간데없이 사라졌다. 그 향기가 지금도 입맛을 다시게 한다.
오후에는 공자님의 고향인 곡부로 달렸다. 곡부는 삼공(공묘.공부,공림)은 공자님의 업적과채춰 제자후생관리와 거대한 가족묘는 공자님의 나라이다.
황제는 아니였지만 이미 황제의 버금가는 '지성문선왕至聖文宣王' 성인으로 공경과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공부에는 제자들을 좌우에 제자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 공자님에 부인은 위패로 모셔져있다. 여자들은 위패로만 모신다고한다.
공림은 77대손까지 후손들이 잠들고 있었고 그 후대부터는 대만에가 있다고 한다.
이 거대함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제되어 있어 세계의 유산이 되어있다.
공자님의 후손들에게도 왕이나 제후 대우를 받고 있었다. 탄압에 흔적 속에서도 고위 보존되어 있는 어마어마한 유물들을 보니 중국에 공산당도 위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공묘의 입구에 공자님의 흔적과 공덕의 글귀는 관광상품점에서도 끝없이 즐비하여 있다. 셀 수 없이 드나드는 발거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대대 손손 추왕의 거리, 시기와 질투 방해에도 벼락맞은 향나무가 되살아나 천년넘게 굳건한 자태가 증명하듯 서 있었다.
저녁식사는 화려한 색과 맛 향으로 호식을 하고 전통맛사지로 피로를 풀고 ''곡부자체가 공자님이시다.'' 주체 못할 흥분으로 공자님과 같은 하늘 아래서 흥분의 꿀잠에 들었다.
마지막 날, 앞으로 공부할 맹묘로 향한다
이건 일정에 없었다한다. '맹모사천지교' 나의 얄팍히 들은 지식으로 내 새끼들 교육의 지침이 되었주었던 귀한 뜻을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한다는 건 크나큰 행운이다.
광장에는 붉은색과 노란휘장들이 입구에 가득찬 진풍경을 본다. 가이드도 모르고있던 맹자와맹모의 제사(5월6일) 날이라고 한다. '맹'씨 가문의 종친일가의 가장 큰 행사였던거다. 공자님에 대한 느낌은 '곧다' 는 느낌이였다면 맹자님은 온화함이 온몸에 스며드는 느낌이다. 여기도 맹모님은 위패로만 모셔져있다.
제사를 모시는 진귀한 풍경과 내가 얇게 품어 온 '맹모삼천지교'의 맹모님의 위패 앞에서 한참이나 머물게 했고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제남으로 출발해 천성광장과 흑호천은 보너스다.
제남은 천연물이 흔한 곳(샘물의도시)이라고 한다. 빛을 등진 그림으로 다가온 천성광장, 흑호천은 우리 청계천 같은 도심속에 안락한 도심천이다. 흐르는 물은 탁했지만 자연물이 뽀글뽀글 오르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정직한 가이드는 맹묘무료입장료로 남은 돈으로 울 일행에게 헤어짐에 아쉬움을 저녁으로 대접해준다.
아쉽지만 3일동안 꿈꾸 듯 빠진 시간을 가슴품고 집에 가는 산동공항으로 달린다.
2박3일은 훗딱 스크린으로 지났습니다.
제남에 여유로움과 태산에 성스러운 웅장함의 기를 받고 해무리 선물까지, 삼공의 숙연함에 가슴벅차 고개숙였습니다. 맹자ㆍ맹모님의 제사에 참여하는 행운을 받고 기쁜마음을 실려 삼배절로 표했습니다.
'짬짬노래방' 주인 구심원장님은 풍성한 입담과 진행으로 지치않은 웃음이 끊기지 않게 해 주셨습니다. 송운선생님의 심사평은 정곡을 찌르는 노련한 노장의 평에 모두들 꼼짝할 수 없었답니다.
이번여행을 주도 해주신 석경선생님은
그동안 학우들을 위해 헌신과봉사로 수고하신 과거ㆍ현직 반장님들께 공로로 마음을
전달하셨습니다. 여행기간 내내 웃음이 끊기지 않았고 기쁨의 감흥도 감추지 않았고 감동과 행복함의 울컥함도 보았습니다.
제게는 귓쫑에서의 세번째 특별한 선물을 받았 습니다.
''미정(未定): 아직 정해지지 않음.''
부족한 제게 석경선생님께서 '호'를 선물 주신겁니다.
첫째는 귓쫑에 머물 수 있는 행운이고, 둘째는 '도서관 아이들' 이라는 자원봉사,
셋째는 바로 석경선생님께서 주신
'미정未定' 입니다.
보고 느끼고 전달 받은 귀한 말씀들를 다 옴기지 못한 저에 짧이 안타까울뿐입니다. 이번 곡부여행에 저를 흥쾌이 동행하게 해주신 송운 선생님을 더브러 경전반 학우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다시 한번 석경선생님과 울 논어반장님 주역반장님 노고에 깊은 감사드립니다.
특히, 이번여행의 동침을 단번에 허락 해 주셨고 내 잠버릇에 설친 잠도 아무렇지 안다는 너그러움을 주신 장경숙선생님께 또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무지 행복했습니다.''
20190512
논어반김종임
첫댓글 논어반이 입에 붙었는데... 수학여행인가 싶었더니 6년공부 졸업여행이었군요. 우리 종임님, 이제 미정님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미정님의 풍부한 감성의 언어로 궁금했던 여행을 이렇게 펼쳐주시니 함께 하지는 않았지만 얼마나 알차고 귀하고 소중한 시간으로 채워 누리고 오셨는지 알겠습니다. 6년 논어반 한결같은 수업을 이끌어주신 석경샘, 제자는 아니지만 감사하구요. 추억 잔뜩 안고 돌아온 졸업여행 무사 귀국 축하드려요.!
11월경에 논어가 마무리 된다합니다.
여행은 내 딛으면 정리상자 하나를 가져오나봐.
마음이 같은생각이라는 상자를요..
곡부의 여행은 어느여행과는 분명 달랐지요.~♡♡
늘 관심주신 덕은님~감사합니다요♡♡
곡부기행 너무 좋아요 꽃은피고와는 완전 다른분위기입니다 이렇듯 유머있는줄 몰랐네요 사진과 함께하니 보는재미가 더하고...울반보다 논어반을 더좋아하는것 같아 서운할정도입니다ㅜㅜ
유머도 사진도 이제 라이벌될듯...ㅎ
설마요.ㅋ
유머는 미희님 버전이 최고지요 ㅋㅋ
이따뵈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