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통일시집 민족작가연합)
소비자 외 1편
이민숙
사랑을 생산하는 오월 장미, 난 그녀의 소비자, 바람이 불면 사랑은 생산되고 바람이 미친 듯 불면 또한 사랑은 모조리 소비된다
불면을 생산하는 시간, 아인슈타인은 우주의 소비자, 시계 소리에 귀 기울이면 그가 던져준 인생론은 갑자기 쏟아지는 우박처럼 소비된다
가는 동아줄에 매달린 소문을 생산하는 TV, 끊임없는 오디션 광고에 주눅 든 청춘들, 여름 해수욕장 너른 무대 위에서 자존심은 절망처럼 소비된다
시장 수족관 속 유유히 헤엄치는 도미를 생산하는 파도, 날카로운 칼날로 쓰윽 목이 잘리면 심해의 전설은 애욕처럼 깡그리 소비된다, 소주 한 잔이 또 한 잔 끊임없이 비만을 부추기며 소비된다
문제는 '나'라는 생산품, '너'라는 생산품, 장롱이라는 생산품, 국가라는 생산품, 역사라는 생산품, 음모라는 생산품, 4월도 5월도 10월도, UN도 휴전선도 되돌이표처럼 생산된다 그 무한수열의 생산은 생산인가 허무맹랑함인가 내 기다림도 네 열정도 평화로 유토피아로 소비되지 못 한다면 그게 뭔가
빛은 결론의 생산자, 결론은 과정의 생산자, 과정은 처음의 생산자, 암컷은 수컷의 생산자 수컷은 욕망의 생산자, 생(生)은 고구마 뿌리의 생산자, 붉은 흙이 굵은 팔뚝을 생산하며 한 아이를 낳았다 오늘이 태어났다 희망이다, 남과 북의 희망이다 그렇게 생산하는 도보다리의 희망도 소비의 씨앗이 될 수 있다면,
띠
사람과사랑과강과바다와물과띠와물레와실과바늘과사과와배와어깨와띠와어깨동무와하늘과땅과고구마줄기와호박과들쭉술과띠와검은머리물새떼와두물머리와남한강과북한강과갈대와부들과띠와대동여지도와호랑이와백두산천지와한라산백록담과곰과하늘매발톱과흰그늘용담과띠와금강산과지리산과일만이천봉과노고단마고할미와비로봉과영랑봉과띠와그대와나와우리모두와시와평화와자비와띠와빛과청춘과슬픔과바람과나뭇잎과꽃잎과띠와추억과우주와지금인띠와그냥이라는띠와실꾸리풀듯풀어버릴띠와꿈,
노래와춤과띠와!
이민숙 약력 및 기타 정보
1998년 《사람의 깊이》에 ‘가족’외 5편의 시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나비 그리는 여자』『동그라미, 기어이 동그랗다』등이 있음. 여수 샘뿔인문학연구소에서 책읽기, 문학아카데미 운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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