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우리나라 한민족과는 뗄래야 떨쳐버릴 수 없는 뼈아픈 역사가 생각됩니다. 한반도의 선사시대부터 고구려 신라 백제 삼국시대를 거쳐서 고려 조선 대한제국 현재의 대한민국을 이루기 까지의 민족의 수난사입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국민의 한 사람인 노객(老客)으로서 전쟁역사교육관을 찾았습니다. 15일(일) 01월 2017년 09시 59분에 7호선 고속버스터미널역에서 백년지기 일곱명이 출발합니다. 방한복 방한모 방한장갑으로 무장한 노객들이지만 영하 10℃ 이하의 강바람 앞에는 어쩔 수 없이 움츠러들게 하고 있습니다. 강변에 자리한 세빛둥둥섬을 배경으로 한컷을 잡는 순간에도 손끝이 얼어붙는 느낌입니다. 반포대교 밑의 잠수교를 통과하여 용산구 이태원로에 있는 삼각지역 근처의 전쟁기념관으로 들어섭니다. 이 전쟁기념관은 국방부의 기념관에 뿌리에서 시작되어 1994년도에 개관한 것입니다. 전쟁기념관이라는 이름보다는 전쟁역사교육관(戰爭歷史敎育館)으로 개칭하면 어떨까 하는 이 노객의 소견입니다. 무슨 좋은 일이라고 기념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후손들에게 이 나라의 전쟁역사를 보고 듣고 체험하게끔 하는 실습장으로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민족의 비극이며 전쟁의 참혹한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어리석음은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광장 앞에는 1950년 6.25 전쟁 당시에 유엔 깃발 아래 전투부대를 파병한 16개국과 의료부대를 파견한 5개국 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습니다. 육해공(陸海空) 해병대(海兵隊)등의 우리군 부대를 상징하는 부대기(部隊旗)도 함께 게양되어 있습니다. 본관으로 들어서면 안내데스크와 추모헌금함이 눈에 들어옵니다. 몇천원을 보탠다고 얼마나의 도움이 되겠느냐마는 스스럼없이 대바기와 지갑을 열었습니다. 삼촌도 여기에 함께한 전사자의 일원이라는 대바기의 한 마디를 들으며 호국추모실(護國追慕室)로 들어갑니다. 호국추모실 전쟁역사실 6.25 전쟁실 해외파병실 국군발전실 방산장비실 대형장비실 옥외전시장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고구려의 을지문덕장군의 수나라 30만 대군을 물리친 살수대첩과 강감찬장군의 거란족 10만을 괴멸시킨 귀주대첩 그리고 이순장군의 거북선의 디오라마(diorama)도 섬세하게 마련되어 있습니다. 3만5천여평 부지에 3층으로 구성된 전쟁교육장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차분하면서도 엄숙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관람객들의 말소리도 발걸음 소리도 들리지 않는 진심으로 조국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護國英靈)들을 추모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광장으로 다시 발걸음을 하면 제일 커다랗게 눈에 뜨이는 것이 전쟁을 상징하는 청동검의 조각상입니다. 한견에는 두명의 군인이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의 상(像)도 있습니다. 형제의 상이라는 조각작품입니다. 강원도 원주 치악고개 전투에서 맞닥드린 형과 아우의 기막힌 상봉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형은 남한의 장교로 동생은 북한의 하전사로서 총뿌리를 거두고 얼싸안고 울부짖고 있습니다. 반드시 서로를 죽여야지만 내가 살 수 있으며 아니면 자신의 목숨을 뺏길 수 밖에 없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순간입니다. 내 목숨보다 동생의 생명이 더 귀한 것이었고 나보다 형을 먼저 구해야겠다는 형제지간의 끈끈한 사랑의 표상입니다. 전시관에 모셔진 영령들의 숨소리와 전쟁역사를 한 눈에 읽을 수 있는 소중한 자료들입니다. 하지만 형제의 상을 접하며 피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간본능의 축소판을 보았습니다. 항상 옆에서 볼 수 있는 부모형제 가족들에게는 평소에 고마움이나 소중함과 사랑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며 살고 있는 오늘입니다. 멀리 떠나고 볼 수 없음에 그 때가 되어서야 가슴을 치며 후회를 하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북한이든 남한사람이든지 따지고 보면 다 같은 민족이요 피를 나눈 부모형제 친척들입니다. 정치적인 사상과 삶의 철학만이 다른 단지 관점의 차이뿐이라는 것을 서로가 인정해 주고 배려하며 받아주어야겠습니다. 지금은 양쪽 모두 서로를 불신(不信)하며 대화마저 단절된 상태입니다. 북한 김정은의 정권은 한 마디로 예측이 불가한 막가파식의 집단입니다. 핵무기를 휘두르며 한반도 전체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고가는 세계의 무법자(無法者)이며 망나니이기도 합니다. 그럴수록 현명한 판단과 아량으로 설득하여야만 합니다. 순간적인 오판(誤判)은 절대로 금물입니다. 현재의 상황은 온 세상을 잿더미로 황폐화(荒廢化)시킬 수 있는 가공할 핵무기(核武器)의 먹구름이 바로 우리들 머리 위에 어른거리는 급박(急迫)한 현실입니다. 미국이나 일본 중국 세계의 어떤 나라들도 믿을 수 없는 냉혹한 현실을 직시(直視)해야 합니다. 내가 먼저 있고 이웃이 있으며 내가 없는 세상은 무의미한 신기루입니다. 북한과 남한 대한민국이 서로를 믿을 수 있게 분위기를 조성하여 양자(兩者)가 해결해야 할 한민족의 염원이며 숙제입니다. 내가 풀지 않는 숙제를 남에게 의지하거나 부탁해서는 되지도 않을 뿐더러 불가능한 철칙입니다. 북한도 한국도 정신 똑 바로 차려야 합니다. 주변의 중국 일본 러시아등은 언제든지 한반도를 넘보며 삼켜 버릴 수 있는 적국(敵國)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도 명심해야겠습니다. 허울 좋은 6자 회담이니 4자 회담이니 하는 것은 자국들의 이익만을 우선시 하는 대화로서의 그냥 외교적 형식(形式)에 불과합니다. 한반도는 지금 살고 있는 북한과 남한의 생존(生存)이냐 파멸(破滅)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는 엄중한 현실입니다. 위정자들을 비롯하여 온 국민이 이 나라를 위하여 우리만의 안보(安保)와 방위력(防衛力)을 강화해야 합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통일된 한반도 국기를 휘날릴 수 있는 그 날이 오기를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낙원동 맛집인 마산 아구와 해물집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탑공공원에 들려서 3.1 운동의 발자취도 또 다시 음미하면서 군침도는 아구찜에 짜릿한 쐬주가 마음을 급하게 하고 있습니다. 치빠흐와 합류하여 조단스 패노우 위짜츠 씨모우 서류바 대바기 까토나 모두 여덟명이 푸짐하고 입에 땡기는 맛있는 아구찜이 쐬주와 어우러져 살살 녹습니다. 낙원동에 맛집도 많지만 언제나 한잔 할 때면 생각나는 맛집입니다. 끝없는 권주가 완샷을 마무리하며 2차로 끝맺음을 합니다. 형제(兄第)의 상(像)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한반도의 비극적인 오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내가 형님이고 네가 동생이며 내가 동생이며 네가 형님이든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따지고 올라가 보면 결론은 하나의 조상(祖上) 아래 형제들이라는 사실입니다. 형제의 상에서 보듯이 서로 가까이 마주하면 네가 내 아우이요 네가 나의 형님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단절된 대화의 끈을 다시 잇고 얼굴을 맞대고 몇몇달이든 몇몇해든지 반드시 대화로 풀어야겠습니다. 통일이여 어서 오너라가 아니라 통일(統一) 해법(解法)을 우리 모두가 찾아보자고 노력하자고 마음속에 다짐을 하면서 집으로 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