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500) 아끼지 말고 꺼내세요 1 - ④ 가장 아픈 곳이 몸의 중심이 되듯이/ 시인 김복희
아끼지 말고 꺼내세요 1
네이버블로그/ 김복희, 가장 아픈 곳이 몸의 중심이 되듯이
④ 가장 아픈 곳이 몸의 중심이 되듯이
커튼으로 사위를 가린 한의원 침대 위에 누워 있으면 온갖 통증에 대한 다양한 묘사를 들을 수 있다.
“명치 위를 누가 밟는 것처럼 묵직하게 아려요.”
“누가 망치로 무릎을 계속 찍는 거 같아요.”
“꼭 흙 퍼먹은 것처럼 미식거려요.”
“꼬쟁이로 쉬지 않고 뒷목을 콕콕 쑤신다니까.”
“어린애가 허리에 매달려서 따라다니는 것 같이 허리 아래가 무거워.”
그리고 “아이고 아이고.” “으아아으아아아” 이런 것들.
벽에 통증을 나타내는 정도를 나타내는 종이(“1~10 중에 아픈 세기를 골라 주세요.”)가 붙어 있지만,
그것은 그것이고.
아픈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의 언어로 고통을 묘사하려고 한다.
젊은 사람들은 대강 ‘쑤신다’ ‘아린다’ 이렇게 표현하는 정도지만
나이든 사람들의 고통에 대한 묘사는 정말로 생생하고 다채롭다.
내가 다니는 한의원 의사는 굉장히 프로페셔널해서,
환자들이 어떤 말로 자신의 통증을 설명하든지 다 받아주신다.
“명치? 식사하실 때랑 식사 다 하시고 나서랑 언제가 더 갑갑해요?”
“아아, 찬물에 막 담근 것처럼 간지러우면서 아파요?”
“누워 있을 때 메슥거려요, 아니면 서 있을 때도 메슥거려요?”
“어린애? 몇 킬로나 되는 애 같아요? 걸을 때 그래요? 아니면 막 일어서려고 할 때? 둘 다?”
그리고 “자, 침 놓을게요.” 하면서 어르고 달래듯이 “아이코 아이코” 소리를 내시며 환자들의 몸에 침을 놓는다.
적게는 다섯 방, 많게는 한 스무 방 정도?
그러면 환자들은 “아야, 아야” 하면서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나는 환자와 의사의 대화 듣는 것이 좋아서 한의원 가는 길을 은근히 기꺼워하는지도 모른다.
온열 침대에 누워서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이들의 통증에 대한 묘사와 대처를 들으며,
그들의 몸이 어떻게 생활을 이어가는지, 어쩌다가 아프게 되었는지, 얼마나 아플 것인지, 얻어듣는 것이다.
“아니 그래서 내가 팥주머니를 데워서 아랫배에 대고 있었는데,
그거 식고 나니까 아랫배가 쏟아질 것같이 아프더라니까.”
이런 말을 듣고 있으면, 배는 윗배와 아랫배로 나눌 수 있구나.
배는 아래로 쏟아질 것처럼 몸에 매달려 흔들릴 수 있구나.
그런 것을 알게 된다.
물론,
다 적당히 아플 때 이야기다.
내가 심하게 아프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다 무엇이냐 이거다.
오직 나의 통증과 몸에만 온 신경이 곤두선다. 아무것도 안 들린다.
그리고 한동안 아픈 게 누그러질 때까지 통증에게 온몸과 생활과 정신과 감정을 바친다.
죽음은 멀고, 통증은 가깝다.
아픔은 마치 오래전부터 이런 순간만을 기다려왔다는 듯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 몸을 재정비한다.
독재도 이런 독재는 없다. 그리고 속삭인다.
다른 사람들과 너의 몸은 불연속적이며,
너만 너의 통증을 중심으로 움직일 거라고.
세계는 너의 통증을 보지 못하며 이해하지도 못할 거라고.
너 역시 통증에 갇혀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가장 아픈 곳이 몸의 중심이 되듯이”라는 구절로 쓴 시가 한 편 있다.
그 시는 육체적으로 많이 아프고 나서 쓴 시였는데,
이제는 폐기해버려서 저 구절 외에 다른 부분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폐기한 가장 큰 이유는 그 시가 너무나도 ‘중심’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어서였다.
‘가장 아픈 곳’이란 게 경합을 벌여 ‘몸의 중심’을 새로이 정비한다는 것 외에 더 나아가지 못한 시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시는 나에게 통증에 대해, 몸에 대해, 아픔에 대해,
나 스스로 갖고 있는 금제에 대해서 돌이켜 보게 해준 시이기도 했다.
통증과 몸과 아픔을 낱알처럼 흩어놓고 생각할 수도 있게 해주었고,
그것들을 전부 끓이고 뭉쳐서 반죽처럼 치댈 수 있게도 해주었다.
직유법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해주었고,
고통에 대한 가치 판단 상황 자체를 재고하게 해주었다.
윤동주의 「병원」이라는 시가 얼마나 오묘한지 떠올리게 해주었다.
내가 써놓고, 내가 배웠다.
저 구절이 들어 있는 시는 결국 내 안에서 형해 없이 녹아서 다른 시들의 다른 구절로 등장했다―
어떤 시인지는 밝히고 싶지 않다.
그런 수도 있는 것이다.
녹아버린 시는 더 이상 한 편의 시로 기능하지 않는다.
몸처럼, 내가 쓰는 글은 계속 달라진다.
보일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통증과 언어가,
보일 수 있고 설명 가능한 방식의 외형을 갖기 위해 변형된다는 것.
그리고 읽는 사람은 그것을 전혀 모를 수도 있다는 것.
이것은 얼마나 신체와 유사한 사고일까? < ‘시를 쓰고 싶으시다고요, 김복희 산문집(김복희, 달 출판사, 2023.)’에서 옮겨 적음. (2023.12.23.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500) 아끼지 말고 꺼내세요 1 - ④ 가장 아픈 곳이 몸의 중심이 되듯이/ 시인 김복희|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