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506) 무엇을 써야 하나요 - ② “야! 이거다” 하는 순간에 생각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시 창작 지도자 하린
무엇을 써야 하나요
네이버블로그/ [하린의 시클] "야! 이거다" 하는 순간에 생각해야 할 것들이 있다
② “야! 이거다” 하는 순간에 생각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기가 막힌 시적 모티브를 발견하게 되면 우리는 “야 이거다” 하는 탄성과 함께 무릎을 치게 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미 누군가 쓴 소재는 아닐까?’하고 되돌아보게 된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시를 많이 공부한 사람일수록 되돌아봄은 필수가 되는데,
되돌아봄의 상황에서 창작자는쉽게 절망하게 된다.
시를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쓰려는 모티브가 누군가가 이미 쓴 것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대 실망할 필요가 없다.
그 제재를 누군가 썼다고 해도 무조건 버려서는 안 된다.
오직 버려야 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같은 제재에서 파생된 같은 형상(장면이나 상황)이고, 또 하나는 그 형상을 바라보는 같은 태도이다.
‘절망’에 대해 시를 쓴다고 했을 때 누군가가 쓴 ‘절망’에 대한 같은 장면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 굳이 같은 그림을 그릴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권혁웅처럼 술 취한 자의 생에 나타난 고단함을 그리려 했을 때, 꼭 천변 벤치의 노숙자의 상황으로 그릴 필요가 없다. 다른 그림을 그리면 되는 것이다.
만취한 상태인데도 꼭 자기 집 앞에서 쓰러지는 아버지가 있다고 치자. 그 아버지의 본능은 얼마나 특별한가. 집이라는 공간에 도달했을 때에만 정신줄을 놓는 것을 통해 가장의 고단함과 본능의 특별함을 동시에 표출할 수도 있다. 아침에 벤치 위에서 얼어 죽은 한 마리의 비둘기를 발견했다고 치자. 그 비둘기의 형상을 내밀하게 그려내는 것을 통해, 도시 생태계에서 낙오한 존재를 비유적으로 그려낼 수도 있다.
이처럼 생의 고단함을 표출할 수 있는 그림은 너무나도 많다.
그러니 간절한 개별 화자의 입장을 선택한 후 같은 그림에서 자꾸 벗어나 새로운 그림을 창출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한 태도나 인식이 습관화되었을 때 비로소 다 쓴 것 같은 제재가 주는 식상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나의 현상에 대한 같은 정서적 태도도 버려야 한다.
현상은 늘 고정되어 있다.
누군가의 감각이나 인식이 닿기 전에 현상은 그 자체로 객관성을 띠며 사실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객관화된 현상도 누군가의 시선과 인식이 닿게 되면 바로 주관적으로 바뀐다.
그럴 때 그런 주관적인 인식이 관습화되어 있었다면,
그 현상은 독자성을 잃고 식상한 상태로 우리 앞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대상과 현상을 살아있는 상태로 특별하게 존재하게 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 방법은 위에서 언급한 대로 자기만의 색다른 태도로 개별화된 화자의 입장에서 현상을 대하는 것이다.
여기 늦가을 노을이 깔리는 강이 하나 있다고 치자.
그것을 암 선고를 받은 어떤 화자가 바라보았다고 치자.
그렇게 되면 그 강엔 고름이 흐를 것이다.
이번엔 이별을 맞이한 화자가 그 노을을 보았다고 치자.
그렇게 되면 그 강 한 가운데엔 철조망이 쳐져 있을 것이다. 그
것처럼 고정된 형상을 다르게 인식하는 것은 개별 화자의 태도로 현상에 접근했기 때문이다.
개별 화자는 간절한 개별 경험과 개별 정서를 가진 존재다.
대상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정서적 태도가 자신의 간절한 경험 맥락에 의해 개별화되어 있기에
노을이 낀 강에 대한 시가 수만 가지 탄생할 수 있다.
개별화가 되는 방법은 앞에서 강조한 대로 구체적인 경험 맥락을 가진 간절한 상태에 놓인 화자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어떤 화자가 어떤 절실한 경험 맥락을 가지느냐에 따라 그 존재가 개별자가 되기도 하고,
일반화된 화자가 되기도 한다.
시인의 눈을 우선 버려야 한다.
자신이 쓰려는 대상이나 현상을 시인의 눈으로 보면 개별적으로 다가오는 것들을 잡아낼 수 없다.
시인의 눈이 아니라 철저하게 화자의 눈으로 대상과 현상을 바라보고 경험해야 한다.
시인의 의지를 삭제하고 오직 화자의 입장에서 상황에 푹 젖어 철저하게 시적 정황을 그려내야 한다.
그래야 화자가 가진 간절함이 온전히 시에 드러나고 진정성이 묻어난다.
‘아마 이런 기분일 거야’ 하고 시인의 가치관이나 태도로 경험하다가는 절대 개별화된 화자를 발견할 수 없다.
하나 더 이야기하자면 자신 안에 내재된 수많은 화자들을,
다양한 특수성을 가진 화자들을 상상적 체험을 통해 경험하고 끄집어내어 자신과 분리할 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시를 쓰는 사람은 간절한 상황에 놓인 수많은 화자들을 풍부하게 보유할 필요가 있고,
‘분리’를 능수능란하게 할 필요가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아파트엔 싸움이 많다
건너뛰면 가닿을 것 같은 집집마다
형광등 눈밑이 검고 핼쑥하다
누군가는 죽여달라고 외치고 또 누군가는 실제로 칼로 목을 긋기도 한다
밤이면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
유체이탈한 영혼들처럼 기다란 복도에 나와
열대야 속에 멍하니 앉아 있다
여자들은 남자처럼 힘이 세어지고 눈빛에선 쇳소리가 울린다
대개는 이유도 없는 적개심으로 술을 마시고
까닭도 없이 제 마누라와 애들을 팬다
아침에는 십팔평 칸칸의 집들이 밤새 욕설처럼 뱉어낸
악몽을 열고 아이들이 학교에 간다
운명도 팔자도 모르는 화단의 꽃들도 표정이 없다
동네를 떠나는 이들은 정해져 있다
전보다 조금 더 살림을 말아먹은 아내와
그들을 자식으로 두고 죽은 노인들이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교과서를 족보책처럼 싸짊어지고 아이들이 돌아오면
아파트는 서서히 눈에 불을 켠다
이빨이 가려운 잡견처럼 무언가를 갉아먹고 싶은 아이들을 곁에 세워놓고
잘사는 법과 싸움의 엉성한 방어자세를 가르치는 젊은 부부는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
―최금진, 「아파트가 운다」 부분, 『새들의 역사』, 창비, 2007.
개별 화자를 제대로 만들려면 화자 입장에서 시적 상황과 시적 대상에 한발 더 가까이 가서
타자와 시적 대상을 읽어나가야 한다고 위에서 지적했다.
최금진 시인의 「아파트가 운다」는 개별 화자가 잘 정립된 상태의 좋은 시다.
이 시에는 어떤 발화와 구체적 맥락을 가진 어떤 개별 화자가 존재하는가?
진짜 18평 서민아파트에 살았을 것 같은 개별 화자가 이 시엔 등장한다.
서민들 개개인의 상황에 푹 젖어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처한 상황을 진지하게 읽어내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려낼 수 있는 화자가 시를 주도한다.
이렇게 개별 경험 맥락을 가진 개별자가 시적 정황에 푹 젖어서 그들과 함께 호흡한 후 자신만의 표현 기법을 가질 때
개별자적인 시선과 이전에 보지 못했던 신선한 시가 탄생하게 된다.
시에서 시인이 전달하고 싶은 것은 서민들의 삶이 갖는 속성과 애잔함이다.
시인은 총체적으로 계급사회의 불합리나 삶의 지표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저 묘사와 시적 진술만으로 상관물인 ‘18평 서민아파트’의 제 요소들을 활용해 서민의 속성과 정서를 이야기하고
그려내고 있다.
이미 20~30년대의 ‘카프 문학’, 70~80년대의 ‘참여문학’이나 ‘민중문학’에서 가난한 자에 대한 이야기는 수도 없이 창작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서민의 삶과 관련된 시는 쓰지 말아야 할까? 그렇지 않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서민은 존재하고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이다.
21세기적으로 서민의 삶을 개별화시켜 그려내면 된다.
서민의 삶을 그려낼 때 현장성이 느껴지도록 21세기적 상황에 처한 서민의 모습을 밀도 있게
세부적으로 그려 넣으면 되는 것이다.
최금진이 너무나 시를 잘 썼기 때문에 서민아파트를 제재로 한 시는 더 이상 쓸 수 없을까? 아니다.
위의 시를 다시 세부적으로 접근하여 또 다른 자신만의 시를 쓸 수 있다.
‘자기 소외’의 이미지만 가지고 집요하게 ‘나’와 ‘나’의 갈등과 대립을 하나의 구체적인 사물과
상황을 통해 집요하게 그려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서민아파트에 칩거한 존재를 빈방과 동거하는 존재로 생각하여
“나는 지금 나와 동거중이다/ 나를 관찰한 형광등이 그것을 증명한다”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시를 창작할 수 있다.
또한 서민적인 여성을 개별화시켜 그 여성이 가진 이탈심리를 집요하게 그려낼 수도 있는데.
“나는 이미 여자가 아니다/ 아줌마라는 종족으로 진화했다/ 반상회 때, 신발 고를 때 속옷을 살 때 나의 진화는 계속된다/
진화의 끝이 궁금한가?/ 뛰어내림이 아니라 오름이다”라는 구절이 들어간 시로 창작할 수도 있다.
서민아파트에 사는 노인도 개별화시켜 그려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자식에게 버림받은 자신의 모습을 숨기려고 허풍을 떠는 노인을 개별화시켜,
「백색 노인」이란 제목으로 시를 쓸 수 있다.
화려하게 꾸미는 백색 바지, 백색 구두, 백색 정장 등을 강조하면서 의식마저 백색으로 바뀐,
건망증 많은 노인을 풍자화하여 그려낼 수도 있다.
< ‘슬럼프에 빠진 당신에게 찾아온 21가지 질문, 시클(하린, 고요아침, 2016)’에서 옮겨 적음. (2024. 1.10.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506) 무엇을 써야 하나요 - ② “야! 이거다” 하는 순간에 생각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시 창작 지도자 하린|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