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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이 함께’ 하면, 길은 뒤에 생겨난다(2)(신영복 교수)
지난 11월 23일 이화여대 언어교육관에서 열린 ‘정재승, 신영복 교수 특별대담 - 여럿이 함께 숲으로 가는 길’ 현장. 3백여 명의 관객이 자리를 메웠다. 매서운 추위가 닥친 저녁이었지만, 빈자리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스승’을 기다렸다. 신영복 교수가 등장하자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혼란과 좌절의 시기를 건너고 있는 젊은이들은 진지하게 듣고, 물었다. 스승의 답은 따스했다. 강의 말미, 사람들은 저마다의 가슴에 ‘숲으로 가는 길’을 새긴 듯했다. 이날 대담은 페이스북으로 생중계 되었다. 사회는 유정아 아나운서가 맡았다.
유정아 : 안녕하세요. 사회를 맡은 아나운서 유정아입니다. ‘희망의 인문학 -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라는 주제로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가 10분의 인문학자를 만나셨는데요. 인류학자 조한혜정 교수, 강신주 철학박사, 건축가 황두진, 사회학자 송호근, 물리학자 장회익, 그리고 10번째로 신영복 교수님을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큰 자리다 보니 저는 도우미로 초대를 받았네요.먼저 정재승 교수님을 소개해드릴께요. 책 『과학콘서트』로 큰 열풍을 몰고 오셨죠. 과학서적의 이전, 이후를 나눴다는 평을 받았는데요. 어려운 과학이라는 주제를 쉽고 재미있게 보여주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애매하고,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막무가내식 주장이 만연하는 가운데 제대로 된 정보를 던져 준 과학자이기에 젊은이들의 멘토로 자리잡으신 게 아닌가 합니다. 정재승 교수 뜨거운 박수로 맞아주시기 바랍니다.
관계 맺음, 그 사람만이 아니라 살아갈 환경과 처지까지 봐야…
대전교도소에만 15년을 있었어요. 참 많은 사람들이 만기 출소하는 걸 봤어요. 만기인사라는 걸해요. ‘신세 많이 졌습니다. 몸 건강히 계시다 나오시기 바랍니다.’ 판에 박힌 교도소 인사법이 있어요. 그러면 우리 같은 국가보안법 무기수는 ‘국가의 은총으로 사회에 나오세요’라는 말도 덧붙입니다. 그리고 또 다시 들어와요. (웃음) 다시 출소해서, 또 같은 인사를 해요. 가장 많이 만기인사를 나눈 횟수가 무려 7번입니다. 나와 나이도 비슷해요. 나중엔 자기도 민망했던지 악수하면서 이런 말을 해요 ‘그런데 왜 다른 사람들처럼 새출발 하게’라는 인사를 안하세요. 생각해보니, 전 한 번도 그 말을 안했더라고요. 그 사람이 나가서 살아갈 상황을 대강은 알아요. 사람만 보지 않는 거죠. 집도 절도 없이, 그런 사람이 마음잡고 어떻게 살아요? 자리라도 잡아야 할텐데, 그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나가면 잘해봐라.’ 그 이상을 못했어요. 인간관계란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태도가 필요해요. 그 사람의 장점에 대해서 고래가 춤출 정도로 칭찬이 필요해요. 학교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교육학과도 관계되는데요. 지금 교육은 모난 부분을 깎아서 원만하게 해요. 결함을 교정시키죠. 그러면 안 됩니다. 그걸 포용할 수 있는 더 큰 원을 만들어, 그 안에 모를 넣어야죠. 큰 품성을 만드는 게 진정한 인간에 대한 애정이니까요. 그 사람의 처지를 아울러 생각하고, 장점은 고래가 춤출 정도로 칭찬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고 해도, 자기를 이해하는 것만큼은 못해요.재미있는 일화를 하나 더 소개할께요. 변소를 다녀오며 한 밤에 문을 쾅 닫는 친구가 있었어요. 자전거 튜브를 가운데 끼워 꽉 닫히게 해놨는데도요. 시끄럽다고 아침마다 핀잔을 받았죠. 제가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데 왜 그래?’라고 물었더니, 답이 이래요. ‘제가 야간 주거침입을 하고 달아나다 축대위에서 떨어졌어요. 그래서 다리를 다쳤어요. 쪼그렸다 일어나면 완전히 마비가 돼요. 추운데 마비 풀릴 때까지 있을 수가 없어서, 늘 문을 놓치는거예요’ 얼마나 놀랬는지 몰라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양해를 구하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하는 말이 ‘어떻게 그렇게 세세한 것까지 이해를 받고 사나요. 그냥 욕먹고 살아야죠.’ 그러는 거에요. 대단히 훌륭한 사람이었죠.
춘풍추상(春風秋霜), 나에겐 엄격하게 다른 사람에겐 부드럽게‘
춘풍추상(春風秋霜)’이라는 말이 있죠.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춘풍처럼 부드럽게 하라는 말입니다.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겠지 이렇게 생각하고요. 대신 나를 생각할 때는 추상같이 엄격하게 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요. 반대로 하죠. 다른 사람에겐 엄격하고 자기는 춘풍처럼 대하잖아요. 그 사람은 자기처럼 없이 살고, 부족한 사람은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을 갖고 있었던 거죠. 제가 그런 걸 보며 굉장히 많은 걸 배웠어요. 관계를 가질 땐, 내가 모르는 수많은 사연이 있겠다는 태도를 반드시 가져야 합니다.
정재승 : 마지막으로 감옥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만 여쭤보고, 질문을 받을께요. 선생님, 감옥에서 부르던 18번 노래가 있으셨다고요.
신영복 : 사실은 노래보다는 글을 썼어요. 같은 층 연구실 김창남 교수가 노찾사 창단 멤버였는데요. 노찾사 재기하며 책을 썼죠. 거기다 노래에 대한 얘기를 쓰래요. ‘노래가 없는 세월을 산 사람에게 무슨…’ 그랬는데 그래도 쓰래요. 생각해보니, 이런 이야기거리가 있어요. 만기 출소 전에 영치금이 좀 남아 건빵 한 봉지씩 나누는 조촐한 만기파티, 가난한 만기파티가 있어요. 건빵 한 봉지씩 나눠받으면 훈훈해져요. 누군가가 노래 하나씩 하자고 해요. 내 차례가 오면 한사코 안하죠. 어쩔 수 없이 20년간 부른 노래가 ‘시냇물’이에요. 여러분도 다 아시죠. ‘냇물아 흘러서 어디로 가니, 강물 따라 가고 싶어 강으로 간다. 강물아 어디로 가니.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
정재승 : 음이... 어떻게 되죠?(웃음)
신영복 : 음은 안 해도 돼요. 우리세대는 노래에 대한 생각이 달라요. 우리는 가사 중심의 서사양식에 충실하게 들었죠. 전달이 어려우면 곡을 붙이고 그래도 안 되면 춤을 추고요. 그런데 요즘 ‘나가수’ 보면 조금 이상해요. 그렇게까지 온 몸을 던져서 부를 필요가 있나, 오버하는 게 아닌가 해요. 그러다 지금은 동작 하나하나가 작품이구나. 이게 퓨전이구나 해요. 당시엔 ‘시냇물’ 부를 때 마다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부분만 되면 숙연해졌어요. 처한 상황이 그렇다보니, 와 닿는 부분이었나봐요.
우리 시대 청년들도 감옥 밖의 재소자
인문학적 얘기를 하나 더 할까요. 출소하자마자 성공회대에서 강의를 했어요. 종강파티를 했는데, 또 노래를 부르라고 해, 아는 게 시냇물 밖에 없어서 하면, 아이들 표정이 ‘넓은 세상’에서 재소자와 비슷하게 되요. 그때, 이 사람들도 갇혀 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미셸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그런 말을 했죠. “감옥이란 밖에 있는 사람이 갇히지 않았다는 착각을 하게 하는 정치적 공간이다” 참으로 역설적인 말이죠. 우리 시대 청년들도 보이지 않는 감옥에 있는 게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보면 ‘시냇물’은 참 인문학적 노래 같아요.
유정아 : 다 같이 시냇물을 부르면 어떨까요.
신영복 : 그래요.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강물따라 가고 싶어 강으로 간다. 강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 (박수) 같이 넓은 세상을 보기도 하고,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정재승 : 숙연해집니다.
유정아 : 정말 소리도 맑으시네요. 질문을 받겠습니다.
독자 1 : 만나 뵈어서 너무 반갑습니다. 감옥이나 귀향을 다녀오면 가장 큰 대학, 배움의 자리였다고 많은 분들이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20살 때부터 제 나이가 되는 마흔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모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어요. 저희는 어떻게 하면 그런 큰 배움의 자리를 만날 수 있을까요.
정재승 : 감옥과 같은 배움의 대학! 굉장히 와 닿는데요.
유정아 : 보통의 젊은이들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공간 말이죠.
신영복 : 모두 깨닫죠. 저처럼 책을 쓰지 않을 뿐이겠지요. 감옥이 특별한 공간은 아닙니다. 밀집된 공간이기에 인간관계가 더 풍부할 뿐이겠지요. 도시는 싫은 사람은 만나지 않으면 되죠. 감옥은 싫은 사람도 계속 만나야 하죠. 결국 사람과의 관계에서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6.3사태 때 제가 써줬던 원고가 압수되어 울산 해변가에 숨어 있었어요. 한 달간 너무 무료해서 바닷가에서 파도를 봤죠. 자갈들이 길게 펼쳐져있어요. 모두 동글동글 다듬어져있었죠. 오래 보고 있다, 다듬어지는 과정을 깨달았어요. 파도가 들었다 내려놓으면 서로 막 부딪혀요. 그걸 수천만 년 했겠죠. 서로 부딪히고, 마모되며 아름답게 만들어지는 거죠.저도 학생들에게 그런 말을 해요. 선생이 뭔가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여러분끼리 부딪혀 절차탁마하는 게 필요하다. 저는 감옥에서 책도 읽고 했지만, 가장 깨달음에 도움이 된 게 있다면 사람들에 대한 이해였던 것 같아요. 농밀한 인간적 관계에서 얻은 게 많습니다. 제 친구 후배 중 한 사람이 결혼 6개월 만에 감옥에 들어왔어요. 신부 같은 처를 두고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거에요. 그가 ‘이번 달엔 제 처가 몹시 아파 접견을 못 온대요.’ 그래서 제가 ‘편지를 받았나요?’ 했더니 ‘보내온 옷에 향수가 두 배 이상 짙게 뿌려져왔어요’ 해요. 아파서 접견가지 못하는 마음을 향수의 양의 증가로 표현했다고 해요.감옥살이에서 가장 큰 힘든 건, 개인의 고통이 아니에요. 그건 다 견딜 수 있어요. 자기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의 고통이 자기 아픔으로 건너와요. 짐을 질 수 없는 엄청난 고통이에요. 기쁨과 슬픔의 근원은 바로 ‘관계’에요. 책은 그저 관념적인 수준에 끝날 수 있어요. 적어도 가슴까지 내려오려면, 인간적인 만남을 통해 서로 부딪힘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사람과의 관계… 머리에서 가슴, 더 나아가 발까지 가야
독자 2 : 성신여대 4학년 학생입니다. 똘레랑스에 대한 부분, 인상 깊게 들었습니다. 저도 타인을 함부로 재단하지 말라는 걸 신념처럼 믿고 살아왔는데요. 최근 유럽에서 다문화주의로 인한 테러, 분쟁을 보며 너무 협소하게 생각한 게 아닌가 했어요. 절대 악 같은 게 존재하는 게 아닌가 하는 혼란을 느꼈거든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신영복 : 우리 시대에 없는 것들에 대한 고민이 있을 겁니다. 함께 하는 공감과 가치의 결핍을 느끼실 겁니다. 저는 함께 하지 못하는 이유가 참 많다고 생각해요. 제가 감옥에서 함께 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가슴에서 했던 공감을 기초로 해서, 자기 반성이 더해졌다는 의미에요. 그런 노력이 꼭 필요해요. 우리가 사는 서울만 해도, 천만이 넘는 사람들이 그야말로 인간관계를 이루지 못하죠. 숲의 공간을 만들지 못하고 있죠. 감옥 10년쯤 살고 나면 다른 사람을 잘 판단해요. 죄목과 형기를요. 다른 사람에 대한 민감한 감각을 출소 이후에 잘 사용하는 곳이 바로 지하철에서 자리잡을 때에요.저는 지하철을 탈 때, 누가 어느 역에서 내릴 때 거의 알아맞춰요. (웃음) 앉으려고 마음먹으면 언제든 앉을 수 있어요. 어느 날은 인천에 특강이 있어 가는데 영등포역에서 1호선을 탔어요. 자리가 없었어요. 신도림에서 내릴 사람을 찾는데, 바로 앞 사람이 일어나요. 바로 앉으려는데, 젊은 여자분이 내 앞에 빈자리로 옮기더니 자기 앉아 있던 자리에 친구를 앉히는 거예요. (웃음) 정말 예상 밖의 일이었죠. 누가 보더라도 그 자리에 대한 권리는 제게 있었는데 말이죠. 불법적으로 그 자리를 가져가더라고요.
현대인들, 깊은 만남 없으니 관계 맺지 못한다
제가 『강의』란 책을 썼습니다만. 맹자가 인자하기로 유명한 왕을 찾아가 이런 소문을 확인했다고 해요. 제사 지내려는 소를 불쌍하다 놔주라고 한 적이 있냐고요. 그때 왕이 이렇게 말해요. ‘양으로 바꿔 지내라’고 했다고. 맹자가 묻죠. ‘소가 불쌍해 보여서인가요? 그렇다면 양은요?’ 소와 양을 바꾼 이유를 맹자가 이야기해요. 소는 죽는 걸 봤고, 양은 못 봤다는 겁니다. 즉, 만남과 관계가 있다 없다는 것은 이처럼 중요합니다. 전철에서 내 자리를 가로챈 사람은 나와 아무 관계가 없죠. 본 적도 없고 볼 일도 없는 사람이죠. 대부분 서울시민들이 그런 관계로 살고 있어요.지하철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평균 탑승시간이 20분, 10정거장이에요. 그러니 자리를 불법점유를 하는 거죠. 3년간 함께 밥해먹고, 같이 산다면 그럴 수 없었겠죠. 그래서 관계가 중요한 거에요.모스크바에서 비싼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 거기 지하철이 유명하죠. 지하 150미터. 노인이 탑승하면 젊은이들이 모시고 자리에 앉혀요.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 이렇게 말을 해요. ‘저 노인들이 청춘의 혁명적 정열을 바쳐 건설한 전철이니 당연히 양보해야죠!’ 우리 학생들에게 비슷하게 물어봤죠. ‘너희들이 타는 지하철, 지금 노인들이 젊어서 만든 건데 왜 양보를 하지 않니?’ 그랬더니 학생들이 칼 같이 대답해요. ‘노인들이 만든 건 맞지만, 봉급 받으려고 한 거지 우리와 무슨 상관이에요?’ 똑 같은 상황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을 볼 수 있죠.우리 사회의 인간관계 실상이기도 하죠.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공동체, 인간적 관계를 만들어가겠어요. 대단히 어렵죠. 그래서 제가 ‘작은 숲’을 만들자고 제안을 하는 겁니다. 바로 여기도 작은 숲일 수 있죠. 오신 분들이 비슷한 고민을 갖고 계실테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서로 위로하고, 작은 약속을 했으면 좋겠어요. 꼭 물리적 공간이 아닐 수도 있고요. 작은 숲과 숲이 소통하는, 의식적인 노력들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걸 통해 우리 사회의 인식과 문화도 탈근대적인 것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싶어요.
관용으로 지속가능한 ‘숲’의 공간 만들자
정재승 : 저도 지금 질문한 학생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얼마 전 노르웨이에서 극우단체 한 사람이 다문화행사에서 어린이들을 무차별로 살해한 끔찍한 사건이 있었어요.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총을 겨누는 그런 사람들에게 우린 어떻게 대해야 할까. 그런 문제를 고민하게 되거든요. 결국 노르웨이 정부는 그 사건을 보듬고 더 큰 관용으로 보복하겠다고 했지요.
신영복 : 크게는 똘레랑스의 과정을 거쳐 공동체적인, 지속가능한 숲의 공간을 만들자는 게 합의되겠지만 그 과정에서는 여러 가지 선택적 정책 방향도 필요하겠죠. 한 가지 방법을 고집하긴 어렵겠죠. 다만 사회의 주류문화가 흔들리지 않는 방향성을 확보한다면 효과적인 결과를 거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재승 : 자연스럽게 요즘 이야기로 옮겨갈까 합니다.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가 겪은 일들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요. 예컨대, 의회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실망, 시민정치로 나아가려는 정치적 변화들이 있었고요. 최근 들어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조롱, 정부에 대한 풍자나 희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신영복 : 우리사회는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어요. 웹 2.0으로 가고 있는데, 우리사회 주류 계층의 사고는 웹 1.0사고에 머무는 게 문제죠. 자기 서버를 많이 키우고, 더 강력한 서버에 접속하려는 거죠.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창의적인 서버로 나가려고 하는데 말이에요. 이렇게 서로 다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