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등학교 2학년인 작은아들에게서 기가 막힌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들이 "아이, 맛있다"하며 좋아하길래 뭐가 그렇게 맛있냐고 물으니, 3시간 전에 먹었던 컵라면의 트림이 올라왔다는 것입니다. 아들이 라면을 워낙 좋아해서, 너무 많이 먹지 못하게 일주일에 한 번 라면 먹는 날을 정해놓을 정도입니다. 반면에 싫어하는 음식을 권하면, 입에 대보지도 않고 최선을 다해 인상을 찌푸립니다. 매콤한 음식과 탄수화물을 좋아해서인지, 팔뚝과 배에 통통하게 살이 오른 작은아들은 온 가족이 주물럭대는 말랑이 장난감 신세입니다.
작은아들이 편식하는 게 크게 걱정되진 않습니다. 좋고 싫은 음식을 과장된 몸짓으로 표현하는 모습이 귀여울 따름이죠. 편식한다고 다그치기보다, 부모가 골고루 맛있게 먹는 모습을 꾸준히 보며 크다보면 알아서 건강한 식습관을 키우리라 생각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저도 나이를 먹어가며 어릴 땐 싫어했던 음식이 맛있어지는 걸 느낍니다. 어릴 땐 탕을 먹으면 매콤한 국물과 육류 건더기 위주로 좋아했는데, 이제는 탕에 얹은 미나리나 쑥갓의 향긋함에 매료되었지요. 갓김치의 알싸한 맛도 좋아졌고, 생고기의 쫄깃함도 좋아졌습니다. 맛의 세계에서 만큼은, 저는 나이들면서 성숙해졌습니다. 모르던 맛을 알게됐기 때문입니다. 편식하는 어린 아이보다 덜 분별하게 되었습니다. 싫어하는 맛이 적어졌고, 그만큼 행복할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맛의 세계를 벗어나, 인생의 폭넓은 세계에서 제가 얼마나 많은 분별심에 빠져있는지 바라봅니다. 20대엔 진보가 정치적인 정의(正義)인 줄 알았는데, 40대가 되니 보수가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0대엔 탄자니아의 가난한 아이를 돕는 게 선(善)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인 아내와 자녀에게 물려줄 자산을 한 푼이라도 더 모으는 게 옳지 않은가 싶습니다. 한때 깊은 불안함에 빠진 마음의 근원에 열등감이 있는 줄 알았는데, 더 깊은 근원에 우월감이 자리하고 있음을 깨닫기도 해보았습니다. 좋고 싫은 것, 옳고 그른 것, 우월하고 열등한 것... 단순히 나이 먹는 것이 이러한 온갖 분별함에 눈을 떠가는 과정이라면, 나이들며 '성숙함'은 갈수록 분별함이 줄어드는 과정,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아서 행복의 가능성이 충만해지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하루만큼 더 성숙해지고 싶습니다.
첫댓글 good!!!
충만님의 충만해지는 일상이 느껴지네요.
그런데 자녀에게 물려줄 자산보다는, 자녀에게 물려 줄 좋은 추억, 좋은 가르침 하나가 더 소중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