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512) 모험가들에게 - ⑤ 방과 가방을 털어 소재를 얻기/ 시인 김복희
모험가들에게
네이버블로그/ 글쓰기 아이디어 얻기 너무 쉽다
⑤ 방과 가방을 털어 소재를 얻기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시인님은 어디서 소재를 얻으세요?”
소재를 어디서 얻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보고 듣는 모든 것, 모든 일상에서 소재를 얻는다고 말합니다.
다른 많은 시인들도 저와 비슷하게 말할 것입니다.
시인들은 종종 책상 위에 있는 물건만으로도 시를 쓸 수 있고
오늘 먹은 밥으로도 시를 쓸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시인의 ‘일상’은 글을 쓰고 싶지만 소재를 찾기 어려워하는 다른 사람의 ‘일상’과 많이 다른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남다른 것, 기이한 것을 부러 찾아다니기에 우리의 수명은 너무 짧습니다.
이미 ‘나’에게 일상이 주어져 있다는 사실부터 너무나도 기이한걸요.
수수께끼 같나요? 어쩌면 너무나 평범한 이야기여서 오해받을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
내가 보고 듣는다는 것이 저는 늘 신기하고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재미있는 건,
시를 쓰기 전의 저는 이렇게까지 기묘함에 대해 많이 느끼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모험가님,
저는 시인들이 일상을 더 많이 누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일상을 덜 누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장난 같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제 생각에 모든 사람의 일상에는 그 사람이 의식하고 있는 시공간과 의식하지 못하는 시공간이
동시에 펼쳐져 있습니다.
시인은 대부분의 일상을 이루는,
그의 인지되지 않는 시공간을 인지의 영역처럼 파악하고 잡아채는 훈련이 좀 더 되어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시는 언어로 쓰이는 것이고, 언어는 인지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니까요.
쓰여 있는 활자가 인지 가능한 일상이고 행간이 인지 불분명한 일상이라고 할까요.
저는 책을 읽듯이, 정보를 처리하듯이 일상을 살아갑니다.
가끔 너무 많은 자극이 밀려들기 때문에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를 써야 할 정도로요.
아주 간략한 비유를 해보겠습니다.
시인은 횡단보도를 건널 때, 그것이 보행자를 위한 표시이면서
동시에 자동차를 위한 표시임을 파악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어서 횡단보도란 공간에 무엇도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를 알면서도―
사고 방지를 위해―횡단보도에서 머무를 수는 없을까
돌연 솟구쳐오는 다른 시공간의 가능성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 생각이 상식적인지 상식적이지 않은지는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일단 언어화해두고 보는 겁니다.
이렇게 사는 것―예를 들어 횡단보도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일상을 두 배로 누리는 것인지,
일상을 반도 못 누리는 것인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겠네요.
삶을 구성하는 일상의 모든 것을 언어화한다는 것은 즐겁지만 피곤한 일이거든요.
시인들의 머릿속에는 저런 일상에서 얻은 언어들이 굴러다닙니다.
모험가님도 시를 쓰고 싶다고 하셨으니까,
본인들의 일상을 조금 더 즐겁고 번거로운 방향으로, 언어로 만들어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시인처럼 생각해보세요.
이제 실전입니다.
지금부터 아주 익숙한 곳에서 소재를 찾아보겠습니다.
지금 당장 모험가님의 방문을 열어보세요.
그다음 가장 손이 자주 닿는 물건들을 눈앞에 새로 배치해보세요.
그 물건들이 모험가님 당신을 전부 말해주는 것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모험가님의 일상을 말해줄 것입니다.
더 나아가 모험가님이 남에게 말한 적 없는, 스스로도 생각해본 적 없는 내면에 대해 말해줄 것입니다.
사람들이 남의 방, 남의 물건에 대해 호기심을 품는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잖아요.
도대체 어떤 사람이 어떤 방에서 지내나,
어떤 물건을 사용하나 궁금해하는 이유는,
방이나 물건 자체에 대한 호기심보다 그 사람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니까요.
그러니까 자신의 방부터 한번 털어보는 방법을 통해,
‘나’도 몰랐던 ‘시인’인 ‘나’에 대해 쓰기를 시작해보는 겁니다.
각자의 물건에 대해 언제 그 물건이 내 손으로 들어왔는지 짧은 문장으로 적어보세요.
생각만으로는 안 됩니다.
컴퓨터를 사용해도 좋고 핸드폰 메모장을 사용해도 좋아요.
내 물건들을 다 언어화해보세요.
한 사람의 소지품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시의 초고가 될 거예요.
그 초고의 제목은 ‘나’가 되겠네요.
너무 시간을 많이 들이지 마세요.
한 시간 안에 빠르게 쓰는 게 좋습니다.
은유니 비유니 하는 것들은 일단 생각하지 마세요.
대신 상세하게 적어보세요.
뭘 이런 것까지 적어야 하나 할 정도로 상세하게요.
자, 초고가 완성되었나요?
초고를 살펴보면 빌린 것, 얻은 것, 버릴 것, 버린 줄 알았던 것,
산 것 등등 모험가님의 일상이 모험가님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고,
많은 시공간과 연동되어 있다는 게 보일 거예요.
그 행간에서 시를 길어내시면 됩니다.
최근 제 일상에서 찾은 소지품은 브람스의 〈헝거리 무곡〉입니다.
이게 뭐가 될지는 아직 모르겠네요.
아, 소지품이 꼭 실체가 있는 물건이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
< ‘시를 쓰고 싶으시다고요, 김복희 산문집(김복희, 달 출판사, 2023.)’에서 옮겨 적음. (2024. 1.29.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512) 모험가들에게 - ⑤ 방과 가방을 털어 소재를 얻기/ 시인 김복희|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