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에 한마디 / 윤영대 (포항대 교수)
어느 일간지 1면, '경북북부 3군(郡) 슬로우관광 메카 만든다.'는 제하에 '도(道), B.Y.C벨트 구상 봉화', '파라다이스 빌리지' 특구 조성, 영양 '슬로우 푸드 밸리' 개발 사업, 청송 '솔누리 느림보 프로젝트' 추진 등의 계획이 보도되었다.
여기서 B.Y.C는 뭔고 하여 읽어 보니 '봉화, 영양, 청송'의 3군(郡)을 칭하는 영어의 첫 글자였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낙후된 북부지역을 뉴트랜드 관광의 중심지로 탈바꿈시키는 관광 인프라구축과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방침이다. 그 내용 중에 봉화 파라다이스 빌리지에는 코리아 산타빌리지, 웰빙형 전원타운 등이 들어선다고 되어있고 영양군에는 체험타운, 연꽃 테마관 등과 음식미디방 푸드스쿨, 분재야생화 테마파크가 만들어 진단다. 알쏭달쏭 외국어 일색이다. 여기에 청송의 솔누리와 느림보라는 순수 우리말이 뒤의 프로젝트에 눌려, 외래어 같이 느껴지는 것이 나 혼자만의 착각일까?
이 뿐만이 아니다. 자치단체 홈페이지 첫 머리에 있는 구호, 아니 이것도 영어로 슬로건이라 하고 한번 살펴보면, 좀 과하지 않나싶다. 하이 서울, 컬러풀 대구, 프라이드 경북, 파워풀 포항, 뷰티풀 경주, 스타 영천, 다이나믹 부산, 필 경남, 라이블리 강원, 플라이 인천 등등 영어 아니면 안 되는 모양이다. 그래야만 좀 잘하는 것 같고 고급스러운 목표로 보인다면 언어 사대주의다.
언제부턴가 동사무소가 주민센터로 바뀌면서 대전시 유성구는 '구즉동'에서 '관평테크노동'으로 영어판 창씨개명을 가결했다고 했다. 구즉동이 발음이 안 좋았는지 모르지만 '한밭'이 '대전'으로 바뀐 일을 까맣게 잊은 모양이다.
20평형 아파트가 맨션, 빌라로 승격되어 한참 주가를 올리더니 이제는 '~팰리스' '~케슬' '~파크' '~빌' 등 궁전이나 성곽을 뜻하는 고급스런(?) 외국어가 판을 치고 있다. 예식장이 웨딩홀로 바뀐 지는 오래다. 바야흐로 중국 문화권에서 빠져나와 미국, 즉 서구 영향권으로의 진입인가. 요즈음 소위 잘 나가는 10대의 그룹 이름들은 그야말로 외래어로 범벅이다. 핑클, 쥬얼리에 이어 원드걸스, 브아걸스, 카라, 애프터스쿨, 포미닛 등이 우후죽순 격으로 등장하는 무대에서 '소녀시대'는 참 신선한 이름으로 들린다. 빅뱅, 젝스키스, 인피니트, 샤이니, 비스트, 슈퍼주니어, 엠블렉, 유키스 등의 틈바구니에서 '동방신기' '제국의 아이들'이 싹튼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여기에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2AM, 2PM, SS501, f(x)은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분간이 잘 안 되는 이름들이다.
1년 전에 인도네시아 부톤 섬의 소수민족인 '찌아찌아족'이 한글 사용을 공식 승인하여 쉽게 잘 읽고 쓰고 있다니 세종대왕 이후 최대의 경사이리라. 언어는 살아있다. 융화되면서 변화를 거듭한다. 그래서 말과 글은 쓰지 않으면 퇴보한다. 우리의 훌륭한 문화유산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세계에 유래 없이 뛰어난 문자인 한글과 우리말을 잘 가꾸어야 하리라.
올해는 훈민정음 반포 564주년이 된다. 1926년 10월 9일 제1회 '가갸날'로 정해졌던 한글날이 1991년 '많이 논다'고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는데, 이제 다시 법정공휴일의 국경일로 부활시켜 하루 쉬면서 국보 제70호이자 세계문화유산인 훈민정음을 세계에 자랑해 보는 것은 어떨런지? <경북일보>
첫댓글 정부기관이 앞장서서 한글 파괴의 시범을 보이는 것 같지요?
한글의 우수성은 세계가 인정한다는데, 정작 한국인들은 한글을 부끄럽게 여기고 천대하는 이유가 뭘까요.
대다수 한국인들이 버젓이 제 아내를 와이푸라고 하는 것이 오늘 우리말의 실상입니다.
만신창이가 된 우리 말과 글이 곧 한국인의 정신상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서글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