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513) 모험가들에게 - ⑥ 백 번 불고 백한 번 멈추는 바람처럼/ 시인 김복희
모험가들에게
네이버블로그/ [2년 전 오늘] :: 초고보다 더 힘든 퇴고와 탈고
⑥ 백 번 불고 백한 번 멈추는 바람처럼
“한 편의 시를 쓸 때 보통 어느 정도 퇴고를 하시나요?
얼마나 퇴고를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퇴고’는 ‘밀 퇴(推:옮길 추)’와 ‘두드릴 고(鼓)’로 이루어져 있는 단어로,
그 뜻은 글을 쓸 때 문장을 가다듬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나라의 시인 가도가 시를 짓던 도중,
마지막 구절에서 ‘스님이 문을 두드리다’로 할 것인지,
‘스님이 문을 밀다’로 할 것인지 고민을 하느라 길에서 시인 한유의 행차를 미처 피하지 못했다고 하지요.
두 사람 덕분에 그 시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들이 잘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퇴고’라는 말은 남았습니다.
‘퇴고’라는 말은 시뿐 아니라, 다른 많은 장르의 글의 수정에도 사용되곤 합니다.
문을 미는 것과 두드리는 게 뭐 그리 차이가 나느냐고 피식 웃을 수도 있겠지만요.
문을 꽝 닫는 것(“그렇게 해서 문 부서지겠냐!”)과 문을 살짝 닫는 게(“왔으면 기척을 하지!”) 아주 다른 것처럼,
문이 열리는 장면도 미느냐 두드리느냐에 따라 분명히 다를 것입니다.
사람이 전혀 없을 줄 알고 있기에 별다른 기척을 먼저 내지 않고 문을 밀고 들어가는 사람의 내면과
사람이 전혀 없는 줄 알지만 기척을 만들어 괜스레 문을 두드려보는 사람의 내면은 조금 다르지 않겠습니까?
결국 사소해 보이는 하나의 문장―혹은 단어―이 시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에,
시에서 ‘퇴고’는 그저 아름다운 문장을 나열하고자 하는 욕망과는 조금 그 결이 다릅니다.
소재주의와도 다르고요.
모험가님,
초고와 완고 사이에 퇴고가 있습니다.
초고는 말 그대로 처음 완성된 상태의 글을 말합니다.
완고는 마지막으로 완성된 글을 말하고요.
사람에 따라 초고가 곧 완고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초고든 완고든 한 번은 완성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독자를 만날 수 있는 글입니다.
그러나 퇴고는 오로지 쓰는 사람만 볼 수 있는 무수한 잔상에 가깝습니다.
퇴고는 독자를 만날 수 없는 글입니다.
퇴고는 완고나 초고와 달리 과정이고 이행이기 때문입니다.
완성된 시에 고민하던 단어들을 모두 집어넣을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쓰는 사람만 퇴고와 대면할 수 있습니다.
예, 퇴고는 쓰는 사람만 누릴 수 있는 모종의 ‘기회’에 가깝습니다.
별로 탐내는 사람이 없다는 점에서 ‘기회’라는 단어를 써도 되는가 잠시 고민했지만,
저는 퇴고를 무척 좋아하고, 퇴고를 하기 위해서 초고를 쓰는 사람이므로,
이 ‘기회’를 무엇보다 반기는 사람이므로, 이 단어를 선택했습니다.
눈앞에 저더러 누리라고 버젓이 놓여 있는 이 기회를 놓칠 수야 있겠습니까.
저는 눈앞의 기회를 놓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오는 퇴고 안 막고, 가는 퇴고도 붙잡는 그런 사람입니다.
이만하면 눈치 채셨겠지요.
저는 퇴고를 많이 합니다. 몇 번이라고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합니다.
무한정의 목숨을 사용하듯, 저는 시를 몇 번이고 죽였다가 되살립니다.
초고 상태 그대로 발표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제게 주어진 기회를 전부 소진합니다.
시의 길이와 쓰인 단어의 양을 떠나서 송고 직전까지 퇴고를 합니다.
가끔은 오스카 와일드식―오스카 와일드가 남긴 짤막한 일화인데,
그는 오전에 한 단어를 삭제했다가,
그 삭제했던 단어를 오후에 다시 원래 자리에 되돌려놓았답니다-으로
초고에서 거의 달라지지 않는 원고도 있기는 합니다만,
저는 그것도 퇴고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 쓰고 있는 시에는 “다른 사람 같았다”라는 구절이 있었는데요.
그걸 몇 달째 넣었다 뺐다 하고 있습니다.
제 시들을 퇴고 때마다 새로 저장했더라면, 아마도 그 파일명이
“김복희 시 어쩌고저쩌고_최종_최종_최종_최종_최최종_……최최최최(…)최종.hwp”이지 않을까요.
이렇듯 퇴고를 많이 하는 이유는 첫째로는 제 초고가 어디 내놓기 낯부끄럽도록 엉망이기에 그렇고,
둘째로는 쓰는 사람으로서 기회를 충분히 소진하고자 하는 쓰기에 대한 제 원칙과 맞닿아 있기에 그렇습니다.
마지막으로 시쓰기에 대한 제 원칙 중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그것은 “치사하게 굴지 말자”입니다.
쓰다보면 가끔, 왠지 모르게 이 정도면 그만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기회입니다. 놓치지 마십시오.
가차없이 시의 목숨을 끊어야 합니다.
“치사하게 굴지 마, 아까워하지 마” 하면서요.
물론 시가 완전히 죽어버리는 경우도 상정해야 합니다.
너무 많이 고쳐서 엉망이 된 시를 보신 적이 있나요. 저는 아주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 시는 신선이 와도 살리지 못합니다.
애석하지만 할 수 없습니다.
죽지 않을 때까지 죽여보는 것이, 어쩌면 제가 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결국 저처럼 퇴고를 많이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입니다.
저는 사치스럽게 시간을 쓰죠.
그래서 저는 시쓰기를 위해 늘 시간을 아낍니다.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요―청소나 빨래 등을 좀 미룬다거나, 술을 마시지 않거나,
돈을 덜 벌거나. 치사하게 굴지 않으려고요.
그래서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충분히 시간을 벌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식으로 시쓰기에 시간을 내는지 제 방법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겠습니다.
출력을 합니다.
들고 다니면서 아무데서나(주로 지하철이나 도서관에서) 꺼내봅니다.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들고 다닙니다. 고칩니다.
핸드폰 메모장에 옮겨두고 아무데서나(주로 산책할 때) 켜봅니다.
고칩니다.
소리 내어 아무데서나(주로 방에서) 읽어봅니다. 고칩니다.
며칠 혹은 두어 달 두었다가
아무 때나(주로 오전중) 다시 파일을 열어봅니다. 고칩니다.
별 것 없지요. 틈틈이 시간을 낸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언제고 시의 목숨을 끊을 마음가짐이 중요하고요.
모험가님, 백 번 불고 백한 번 멈추는 바람처럼 퇴고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제가 이 글을 한번 더 퇴고할 수 있다면,
마침내 모험가님이 읽도록 내놓고 싶은 말은 저 한 문장뿐입니다.
< ‘시를 쓰고 싶으시다고요? 김복희 산문집(김복희, 달 출판사, 2023.)’에서 옮겨 적음. (2024. 2. 1. 화룡이)
[출처] 시창작강의 - (513) 모험가들에게 - ⑥ 백 번 불고 백한 번 멈추는 바람처럼/ 시인 김복희|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