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rZqpyjxHGN4?si=eMlpIdxF8mAzJTwy
자신을 지키는 일 잠언 4장 23절
우리 나라에는 법적으로 안락사 즉 조력사망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조력사망이 없는 건 아닙니다. 가족들의 도움으로 조력사망이 허용되는 나라(네델란드, 벨기에, 스위스, 캐나다)에 가서 조력사망의 시간을 보내고 오는 한국인들도 있습니다. 조력사망은 주로 임종기에 들어선 분들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의학적으로 회복불가능한 상태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환자의 삶의 질이 극단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인데 실제 도와준다기 보다는 본인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식입니다.
최근에 조력사망을 하시게 된 한 가정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암 말기로 의사로부터 의학적으로 임종기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호주에서 스위스로 넘어가 조력사망을 준비하십니다. 암으로 인한 통증이 너무 힘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까운 지인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몇 분을 초대하십니다. 10여년에 아내와의 이혼으로 홀로된 아들은 차마 초대를 하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아내의 도움으로 아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고 스위스로 건너가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줍니다. 그분은 그분이 초대했던 사랑하는 지인들과 마지막 고별 인사를 나눕니다. 그리고 “인생의 남은 시간을 소중하게 쓰라”는 의미로 그 곳에 함께 했던 사람들 한사람 한사람에게 시계도 선물합니다. 그리고 그토록 사랑했던 아들, 이혼 이후 단한순간도 잊지 못했던 그래서 지갑에 곱게 곱게 모셔두면서 하루도 빼놓지 않고 보았던 사진을 아들에게 보여줍니다. “난 단 한순간도 너를 잊은 적이 없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마지막 말을 건넵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본인스스로 링거에 채워져있는 약물의 밸브를 조금씩 돌리기 시작하고 편안하게 잠자듯이 마지막 여행을 떠나십니다.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지켰던 아들이 그때를 회상하면서 그런 말을 하더라구요.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삶을 정리하시고 선택하시는 아버님의 삶을 존중해 드릴 수밖에 없었고 앞으로도 제가 아는 그 누군가가 아버지와 같은 상황에서 동행을 요청한다면 자신은 먼 길을 떠나는 사랑하는 친구를 배웅하는 마음으로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그런 고백을 합니다.
살면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선택 앞에 놓여있고 누군가는 사는 길을 선택하고 누군가는 죽음의 길을 선택합니다. 누군가는 사는 길을 선택한다고 선택하는데 그 사는 길이 곧 죽음의 길이고 누군가는 죽음의 길을 선택한다고 선택하는데 그 선택하는 죽음 마저도 아름다운 삶이 되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삶의 마지막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도 마치 우리가 돈을 쓸 때 직장을 선택하고 삶을 선택할 때 제대로 사는 것을 선택하듯이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서 조차도 제대로 사는 길을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잠언의 말씀을 보면 삶의 어느 순간에서도 조차도 자신의 마음을 잘 지킬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 속에서 자신의 마음 결을 자신이 평소에 원했던 데로 살아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난 주간에 딸이 어디가 아파서 뭔가의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병원 의사가 세브란스에 가면 어떤 의사가 있는데 그분을 만나보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제가 세브란스에 아는 분이 없잖아요. 그리고 전화를 해봤더니 올해는 예약을 잡을 수가 없다는 거예요. 순간 어 세브란스 병원에 아는 분이 계시는 분이 있나 그분을 통해 좀 일찍 보는 방법은 없을까하고 교우분 누구에게 전화를 드렸어요. 그리고는 그 부탁을 건네는 순간 아차 싶었습니다. 제가 그런식으로 지인 찬스를 쓰면 억울하게 힘없고 빽없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 새치기를 하는 거잖아요. 평소에 매우 싫어했던 일인데 어느 순간 내 딸의 일이다 보니까 판단력이 흐려졌던 겁니다. 이 병원이 안되면 다른 병원에 가면 되는 거고 병원치료가 여건이 안되면 가능한 방식으로 길을 순리적으로 열어가면 되지 순리를 거슬러가면서 어거지로 일을 만들어가는 것 때문에 우리 사회가 이렇게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인데 그래서 제가 바로 전화해서 없던 일로 해달라고 다시 부탁했어요. 사람이 살다보면 급하고 당황되고 뭔가의 감정이 올라오고 그러면 이성과 판단력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특히 하느님께로 가는 인생의 여정은 누구나에게 처음가보는 길이라 생각보다 마음을 다잡고 다잡고 다잡아도 쉬운 길이 아닙니다.
지난 주간에 에어컨을 설치했습니다. 돈이 좋기는 좋더라구요. 이 한 대만으로도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시원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니 에너지 효율면에서도 그렇고 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공사 과정에서 보니까 사실 제가 엄청난 은혜를 받았어요. 사장님과 일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꼼꼼하신지 대충대충이 없어요. 배관하나 설치하는 데도 거의 반나절이 걸려요. 지금까지 에어컨 업자들이 와서 수없이 배관설치하는 걸 봤는데 작은 고무 배관 안쓰시고 20-30년을 써도 끄덕 없을 플라스틱 배관을 직각으로 꺽어서 가장 배수가 잘 되는 형태로 만들어가시는데 같은 돈을 받으시면서도 하루에 하실 걸 거의 이틀에 걸쳐서 얼마나 꼼꼼히 하시는 줄 몰라요. 그래서 제가 일하시는 분에게 여쭤봤어요. 사장님 그거 대충 케이블 타이로 묶으면 되는데 그걸 어렵게 그렇게 다 하나씩 붕대로 묶어가세요? 시간도 그렇고 얼마나 힘들어요 글쎄“ 그랬더니 그 사장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저는 힘들죠. 그런데 소비자 분들은 좋아하세요. 그리고 튼튼하고 꼼꼼하게 하면 오래 쓸 수 있잖아요“ 자본주의적 관점에서보면 전혀 장사를 못하시는 분입니다. 요즘 에어컨도 그렇고 냉장고도 컴퓨터도 심지어는 자동차도 10-15년 지나면 부속품 없다고 하면서 거의 10년 주기로 시장에서 모든 상품을 다 갈아치우는 방식으로 소비하게 하는데 심지어는 핸드폰 같은 경우는 그 주기가 매우 짧잖아요. 자본주의 시장의 원리에 의하면 이사람은 쓸모의 가치가 전혀 없는 사람인 거지요. 자꾸 만들고 그걸 소비하게 하고 그래서 돈이 돌아가게 하고 그래야 돈도 벌고 그러는데 이런식으로 천년만년 쓸 수 있게 만들면 장사가 되겠습니까 옛날 일본의 어느 자동차 회사가 그래서 망했다는 거죠. 차를 만들어냈는데 너무 잘 만들어낸 거예요. 10년이 지나도 고장이 안나요. 제가 그랬어요. 심지어 자동차 배터리도 교환을 하지 않았어요. 10년을 썼는데 배터리 성능이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사장님이 자녀분들이 4명이나 된데요. 중간중간에 전화가 와요. 심지어 새벽에도 전화가 와요. 그분은 그렇게 정성들여 돈을 벌어 사랑하는 자녀들을 키우고 보살피고 미래를 열어갑니다. 따뜻한 차 한잔에 웃음꽃이 피는, 아빠 오늘은 쉬고 함께 물놀이 가자고 요청하는 자녀들과의 소박한 일상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세상이 어떤 식으로 나를 유혹하고 지배하고 세상적 가치로 흔들어대도 자신이 가야할 길들을 분명히 하면서 자신을 지켜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노동하고 일하고 밥먹고 살아가고 심지어 죽음을 맞이하는 마지막 순간에서 조차도 사는 것 같은 삶을 고민하면서 사람의 길을 열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휴가철입니다. 쉼과 안식의 시간들을 통해 마음을 지켜가고 삶을 지켜가고 생명다운 생명의 길을 열어가는 작은 다짐들을 다져가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