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으로 돌아갑시다 (2610) ///////
2023 전라매일 신춘문예 시 당선작- 조이경 <숲을 켜다>
숲을 켜다
조이경 / 2023 전라매일 신춘문예 시 당선작
가위바위보를 할 때도 주먹을 내야겠어요 오늘이 새나가지 않도록
블랙 미러 속 환삼덩굴이 투명한 손을 뻗어오네요 엄지와 검지의 잔뿌리를 싹둑 자르고 포레스트 어플*을 켭니다
여기는 역설의 숲, 숲지기는 가위로 가위를 잘라야 해요
비탈진 모래 언덕에 곰발바닥선인장을 심어볼까요 보송보송한 솜털에는 지문이 닳지 않겠죠
천천히 흘러내리는 모래시계를 샀지요 시간의 나무는 백색소음을 먹고 자란대요
건조한 수요일이 명상을 클릭합니다 함께 심기에 당신을 초대할게요 다달이 선물로 주던 데이터, 이젠 꽃과 나무로 주세요 코인이 쌓이면 낙타의 무릎에도 종려나무를 심어요. 우리
눈을 감고 날숨을 길게 내쉽니다 마른 흙이 빗방울에 놀라 소스라치네요 불모의 한때가 비늘처럼 떨어져 내립니다 코끝을 스치는 흙내음
내일은 집을 지을 거야수목 한계선 밖에서 울고 있던 야명조夜鳴鳥 한 마리,
가문비나무숲으로 날아듭니다 가문비나무에선 사철 물소리가 들려요 극지의 바람에는 비의 씨앗이 들어 있나 봐요
바람의 숨결에 집중하며 주먹을 풀지 않는 나무 고요히 겨울을 완성한 가문비나무는 악기의 맑은 공명共鳴이 되죠
새에게서 저녁을 삭제하자 발톱이 새로 돋아났어요 여문 실핏줄을 뽑아 시간의 나이테를 그려요 파랗게 녹명鹿鳴을 풀어놓아요
*스마트폰을 보지 않고 계획한 일에 몰두한 시간만큼 숲에 나무가 자람.
조이경 시인
경북 문경 출생. 서울 거주. 문경 여고.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수료
<심사평>
미래지향적 사유 속에 잔잔한 울림
2023년 전라매일 신춘문예 시 부문에 1514편(372명)이 응모하였다.
예년에 비해 많은 응모작들이다. 국내는 물론 미국,독일, 필리핀 등 해외동포들까지 폭 넓게 응모한 결과다.
총 327명의 응모자 중 김태익, 양수민, 오솔길, 장윤덕, 김소영, 조이경,
이 6명의 작품 20여편을 본심에 올려 심도 있게 살펴보았다.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상상력 그리고 그에 따른 새로운 문법과 탄탄한 구성, 밀도 있는 표현 등에 초점을 맞추어 선정한 작품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세 분의 작품이 또 다시 최종심에 올랐다.
장윤덕 「방」은
소통 부재의 방에 갇혀있는 화자의 우울한 심사를 특유의 상상력으로 엮어낸
구성이 돋보였으나 다소 산만하였고,
김소영은 「나는 별빛의 일부」에서
'나'라고 하는 양면적 존재를 양자역학적 관점에서 접근,
인식의 깊이를 보여주고 있었으나 결구가 허술하였다.
이에 비해 조이경은 「숲을 켜다」 외 3편에서
작품의 완성도가 일정 수준을 유지하였을 뿐 아니라 ,
불모의 현장에서 숲을 찾아가는 야생조 한마리의 지난한 열망이 안정된 구조와
신선한 문장, 미래 지향적 사유 속에서 잔잔한 울림을 주고 있어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김동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