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521) 시쓰기 전략 체험기 - ③ 일상의 언어와 극성(劇性)/ 문학박사, 동아대 명예교수 신진
시쓰기 전략 체험기
티스토리/ 일상의 언어
③ 일상의 언어와 극성(劇性)
현재의 중심 권력은 자기중심적인 규칙과 금기를 대중화하고,
그에 따라 알게 모르게 대중을 검열하고 억압한다.
환상을 빙자한 유희라거나 카니발(carnival)적 해방이란 것도 중앙 권력에 봉사하고 추종하게 하는 공범일 수 있다.
애정과 연민과 협생(協生)의 아름다움을 잃은 난해와 해체의 명분,
그건 생명적 삶과는 무관하다. 현재의 비극을 방기하거나 동조하는 데 불과하다.
시의 힘이란 최소한 현재 짓밟히는 작은 생명들,
그 진실을 보는 작은 입구를 봉쇄하지는 않는, 용기와 성찰의 남다름에서 샘솟는 것이 아닐까.
힘없는 생명들이 협생 연대하는 모습을 찾는 길이야말로 시적 창의의 문을 여는 일이 되지 않을까?
시다운 시란 최소한 시 쓰기보다 소중한 삶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아야 하리라.
어느덧 경로석에도 앉는 나이가 되었다.
나는 내 시가 진정한 삶의 연대를 꿈꾸는 푸코의 작은 바둑돌 하나하나,
작지만 저마다 연동과 화해를 꿈꾸는 공동주제로서 아주 작은 걸음이라 할지라도
조금씩 그 지경을 확장해나가는 바둑돌 같은 것이 되기를 바란다.
마른기침 일어나
어둠의 자투리들을 갠다
쿨럭쿨럭 삽자루 일어나고
털복숭이 한 마리 눈곱재기 닦으며 뛰쳐나온다
몽당 털복숭이 논두렁길 앞장을 서면
밤새 물을 지고 기다렸던 풀들이
노인의 발등에 한 바가지씩 물을 부리고 간다
샛바람 불어 노인의 이마에서 새로 체온을 짚고
복숭아뼈를 타고 쇄골까지 물 기운 오르는 동안
노인은 물꼬 다지고 피 싹 몇 건진다
논바닥 흙의 숨소리 여기저기 모이고 흩어지고
찌르레기 소리 내며 재잘거린다
아침은 부신 개밥그릇 만지듯 살갑고 낯이 익다
들판 여기저기 바투 돛을 올리는
농투성이들의 목선들, 여어- 여어-
또 하루 함께 지냈구나
받는 이 없어도 저마다의 무사함을 알리고 있다
일평생 칭송 받은 일 없고
알레스카며 앙코르와트며 멀리 가 본 적 없으나
넘길 것 죄 넘기었으니
다시 밝는 날이 짐 되지 않다
툇마루 너머 산이며 들이며 한없이 몸을 푼다
강아지 새삼 다가와 노인의 발등에 몸을 비비고
볕살 알뜰히 날아다니며 젖은 삽날 말린다
털봉숭이와 둘이 맞는 툇마루의 아침 밥상
홰나무 가지 사이 샛별조차 기웃거리니
아직은 가지 말고 하루 더 쉬다 가자고
몽당 털복숭이 폴짝폴짝 뛰어오르며
노인의 입에 주둥이를 갖다 댄다
―졸시, 「노인의 아침」 전문
「노인의 아침」은 지금의 현실을 묘사한 시는 아니다.
하지만 시적 자아의 현실적 지향점이 극적(劇的)으로 형상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평생 농사를 돌보고 살아온 노인의 아침, 혼자 남았지만 혼자가 아니고 풍족하지는 않지만 부족하지 않다.
볕과 강아지와 풀과 논길과 이웃들과 함께,
아프도록 껴안지는 못하고 살아도 서로 서로 궁금한 이웃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극적으로 전개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30여 년 전 시골로 주거지를 옮겨 살아왔다.
하지만 현실 도피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귀촌생활이란 시쳇말로 다 비우고 가거나 다 비우러 가는 배부른 놀음이 아니다.
채울 수 없어서, 다시 채우기를 시도하는 좁은 문이라 할 수 있다.
그도 언제나 모색과 실천을 동반하는 엄연한 현실이다.
구성의 면에서 고려해 온 주요 사안의 하나가 극적 긴장감이다.
극성이란 물론 극을 보는 것 같은 긴장과 갈등,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는 전환과 해소 따위의 성질을 가리키는 말이다.
시적 체험이 이루어지는 순간은 극적이다.
철학적인 것이든 미학적인 것이든 그것은 현실의 규범 언어로는 닿을 수 없는 특수 상황,
사건적으로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노인의 아침」처럼 표면적 시간의 경과를 보이는 시적 이벤트를 통해 구현될 수도 있겠지만,
「맨 처음」과 같이 알레고리, 아이러니 등 차이성의 언어에 의해 압축적으로 개진될 수도 있다.
끝없는 탐욕으로 인한 위태(危殆)의 시대, 생태적 자연과 생태의 인간이 나누는 일,
여기에 현대시의 소명 내지 생태 복원의 꿈이 있지 않을까 한다.
노년기에는 특히, 어디에든 내놓기부터 할 줄 알아야 한다.
어디에든 누구에게든 내 분수에 넘는 것은 내줄 줄 아는 것이 생명과 생명들 간에서 안심을 얻는 일일 것이다.
비단 노년의 삶만 그런 것도 아닐 것이다.
시 쓰기에도 그렇다.
욕심 내려놓고, 가능한 일상의 평이한 말을 쓰되,
극적인 긴장과 반전이 있는 시적 체험은 원활한 소통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 경험에서 얻은 생각이다.
땅은 넓다
혼자 살지 않겠다면
먹을거리는 넘친다
혼자 먹지 않겠다면
얼마든지 잠 잘 집 있다
혼자 눕지 않겠다면
지구는 넉넉하다
혼자 사랑하지 않겠다면
―졸시, 「넉넉한 지구」 전문
세상에 자기 혼자 산다면 드넓은 땅을 차지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 혼자는 인간일 수도 실존의 존재일 수도 없다.
혼자 사랑한다는,
이따위 말도 안 되는 말이 오히려 그럴싸하게 울리고 있는 우리네 삶이란 얼마나 뒤틀려 있는 것일까?
이 끝없는 왜곡되고 불평등한 시대에 대중의 언어로 긍정의 역설, 부정의 역설로 대응할 수 있으면 한다.
원래적으로 인간은 개체인 동시에 공동체이며,
물질적 우주에 사는 동시에 관념적 상상적 우주에서도 살아간다.
시가 지향하는 참삶이란 자아 체험인 동시에 세계의 체험이 되는 삶일 것이다.
그곳에서는 자아와 세계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창조적 인식이란 개인인 동시에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생태적 삶의 지향에서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
순리적 행복 찾기라 할까,
원래적 인간성으로부터의 재앙을 모면하려면 무엇보다 ‘인간에 의한 인간 지배’의 구조와 책략들부터 해체해야 하리라.
예술이 삶 위에 존재하는 절대의 경전일 수는 없다.
삶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언어, 자연 생태와 인간의 생태를 무너뜨리려는 언어가 있다면
그건 현재라는 체제를 장악하고 있는 지배논리의 분장(扮裝) 또는 그에 대한 굴복에 다름 아니리라.
궁극의 순간은 현재의 언어와 현재적 격식을 넘어서는 데 있다.
첫 탄생의 해방감을 울음소리로 표현하는 아기의 첫울음이 그렇고(이때 울음은 슬픔의 표현이 아니다),
지극한 아픔과 슬픔 앞에서는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것도 그렇다.
(이때 웃음은 기쁨의 표현이 아니다.) 이 일탈들이야말로 시적 체험과 표현의 궁극점에 있지 않은가 한다.
비정상의 현재에서 차이나는 정상(正常)을 향한 꿈,
그것은 시라는 격식마저 떠나는 길인지 모른다.―
아기 때 운 해방의 웃음 같은 말,
시도 쓰지 말고 시라는 법도(法道)밖에 살아 있는 그런 소리로 혼잣말이나 하며 살았으면 한다.
< ‘차이 나는 시쓰기, 차유의 시론(신진, 시문학사, 2019.)’에서 옮겨 적음. (2024. 2.25.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521) 시쓰기 전략 체험기 - ③ 일상의 언어와 극성(劇性)/ 문학박사, 동아대 명예교수 신진|작성자 화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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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낸 사람 Copilot:
이 시는 "노인의 아침"이라는 제목의 시로,
노인의 일상적인 아침 풍경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시의 구체적인 내용을 분석해 보겠습니다:
- “마른기침 일어나 어둠의 자투리들을 갠다”: 노인이 아침에 일어나면서 마른기침을 하고, 어둠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 “쿨럭쿨럭 삽자루 일어나고 털복숭이 한 마리 눈곱재기 닦으며 뛰쳐나온다”: 노인의 일상적인 아침 풍경을 구체적으로 그려내며, 함께 사는 강아지의 모습을 묘사합니다.
- “몽당 털복숭이 논두렁길 앞장을 서면 밤새 물을 지고 기다렸던 풀들이 노인의 발등에 한 바가지씩 물을 부리고 간다”: 강아지가 논두렁길을 앞장서고, 밤새 기다렸던 풀들이 노인의 발등에 물을 부리는 모습은 자연과의 조화를 나타냅니다.
- “샛바람 불어 노인의 이마에서 새로 체온을 짚고 복숭아뼈를 타고 쇄골까지 물 기운 오르는 동안 노인은 물꼬 다지고 피 싹 몇 건진다”: 바람이 불어 노인의 체온을 느끼고, 노인은 논에서 물꼬를 다지며 피를 수확하는 모습을 그립니다.
- “논바닥 흙의 숨소리 여기저기 모이고 흩어지고 찌르레기 소리 내며 재잘거린다”: 논바닥의 흙과 새들의 소리가 어우러져 자연의 생동감을 표현합니다.
- “아침은 부신 개밥그릇 만지듯 살갑고 낯이 익다”: 아침의 따뜻하고 익숙한 느낌을 개밥그릇에 비유하여 표현합니다.
- “들판 여기저기 바투 돛을 올리는 농투성이들의 목선들, 여어- 여어- 또 하루 함께 지냈구나”: 들판에서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을 묘사하며, 하루를 함께 보낸다는 느낌을 전달합니다.
- “받는 이 없어도 저마다의 무사함을 알리고 있다”: 누구에게도 전달되지 않지만, 각자의 무사함을 알리는 모습은 일상의 평온함을 나타냅니다.
- “일평생 칭송 받은 일 없고 알레스카며 앙코르와트며 멀리 가 본 적 없으나 넘길 것 죄 넘기었으니 다시 밝는 날이 짐 되지 않다”: 노인의 평범한 삶을 묘사하며, 큰 업적이나 여행 없이도 만족스러운 삶을 살았음을 나타냅니다.
- “툇마루 너머 산이며 들이며 한없이 몸을 푼다”: 툇마루에서 바라보는 자연의 풍경을 묘사하며, 평온한 아침을 그립니다.
- “강아지 새삼 다가와 노인의 발등에 몸을 비비고 볕살 알뜰히 날아다니며 젖은 삽날 말린다”: 강아지가 노인의 발등에 몸을 비비며 애정을 표현하고, 햇살이 삽날을 말리는 모습을 그립니다.
- “털봉숭이와 둘이 맞는 툇마루의 아침 밥상 홰나무 가지 사이 샛별조차 기웃거리니 아직은 가지 말고 하루 더 쉬다 가자고 몽당 털복숭이 폴짝폴짝 뛰어오르며 노인의 입에 주둥이를 갖다 댄다”: 노인과 강아지가 함께 아침을 맞이하며, 하루를 더 쉬고 가자는 느낌을 전달합니다.
이 시는 노인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느끼는 평온함과 자연과의 조화를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시인의 섬세한 표현과 자연에 대한 애정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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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보낸 사람 당신:
이 시와 관련된 문학적 분석을 좀 더 해 주세요.
Copilot
웹사용
보낸 사람 Copilot:
"노인의 아침"은 노인의 일상적인 아침 풍경을 통해 삶의 평온함과 자연과의 조화를 섬세하게 그려낸 시입니다.
이 시의 문학적 분석을 좀 더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주제와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