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리발렌테인 그리스 가다 / 손현숙 시창고
셜리발렌테인 그리스 가다 / 손현숙
셜리발렌테인은 뚱뚱한 중년, 나 닮은 아줌마다. 벽보고 웃고 벽보고 화내고. 나처럼 벽보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사이즈66레이스 달린 청자켓 몰래 사들고 들어와 울퉁불퉁 숨막히게 끼어 입는다. 모델처럼 빙빙 돌며, 괜찮지? 벽보고 싱겁게 교태도 부린다. 그녀의 꿈은 부엌 찻장 뒷면에 한장으로 붙어있다. 그리스. 12일 동안 날아갔다 돌아오기. 돌아올 수 있을까?
믿어줄까, 받아줄까,
내 자리는 비어 있을까,
곱씹고 씹는 사이
나는 몽쉘뚱뚱 아줌마가 되었다
맛도 없는 불량과자
쓸데없는 포장지만 뻔덕거린다.
새떼처럼 까맣게 흩어지는 내일
포스터 한 장 찻장 뒷면에 붙여 놓고 셜리발렌테인은 오늘도 망설인다. 돌아올 수 있을까?
그러나 나는 가면 돌아오지 않는다
옷 홀랑 벗고 지구 위의 한 점 어디
에메랄드빛의 깊은 바다에 뛰어들어
수면 위로는 절대 떠오르지 않을 거다
그냥 한 사흘쯤
지는 해를 바라보며 놀거다.
셜리발렌테인은 드디어 그리스로 떠났다. 이후로 그녀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까 그녀는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밥 짓고 설거지한다.
고실고실 밥물에 뜸들 때까지
벽보고 희죽희죽 벽치기 한다.
숨소리도 행여 새나가지 못하게
문이란 문 쾅쾅 때려 잠근다.
집안의 틈이란 틈, 물샐 틈 없이
닦고 문지르고 털고 조이고.
뜻밖의 내일 얼씬도 못하게
내가 나를 철통 같이 지킨다
<시안> 2004년 봄호
사진출처- 네이버
손현숙시인
1959년 5월 16일 서울에서 출생하여, 신구대학 사진과와 한국예술 신학대학 문창과를 졸업했다. 1999년 '현대시학'에 시「꽃들은 죽으려고 피어난다」외 4편으로 등단했다. '국풍'사진공모 수상, 토지문학제 '평사리문학상'을 수상했다.
[출처] 셜리발렌테인 그리스 가다 / 손현숙 |작성자 마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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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손현숙 작가의 "셜리발렌테인 그리스 가다"라는 작품입니다. 이 시는 중년 여성의 일상과 꿈, 그리고 현실의 갈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주요 상징적 요소와 그 의미를 살펴보면:
셜리발렌테인: 셜리발렌테인은 주인공 자신을 투영한 인물로, 중년 여성의 일상적인 모습과 내면의 갈등을 상징합니다. 벽을 보고 말하는 모습은 외로움과 소통의 부재를 나타냅니다.
그리스 여행: 그리스는 주인공의 꿈과 자유를 상징합니다. 부엌 찻장 뒷면에 붙어 있는 그리스 여행 포스터는 주인공이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소망을 나타냅니다.
몽쉘뚱뚱 아줌마: 주인공이 자신을 "몽쉘뚱뚱 아줌마"라고 표현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자조와 현실에 대한 불만을 나타냅니다. 맛도 없는 불량과자는 주인공이 느끼는 삶의 무의미함을 상징합니다.
에메랄드빛 바다: 에메랄드빛 바다는 주인공이 꿈꾸는 이상향을 상징합니다.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겠다는 표현은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강한 소망을 나타냅니다.
집안의 틈: 집안의 틈을 닦고 문지르고 조이는 모습은 주인공이 자신의 삶을 철저히 관리하고 통제하려는 모습을 상징합니다. 이는 뜻밖의 내일을 막기 위한 주인공의 방어적인 태도를 나타냅니다.
이 시를 통해 작가는 중년 여성의 내면 갈등과 꿈, 그리고 현실의 무게를 깊이 있게 탐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