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찾아낸 친구 - 제76신
더위도 아직 물러가지 않고 게으름도 내 주위를 맴돌고 있지만, 아무래도 이 얘기는 안 할 수는 없습니다. 반세기 전에 군대생활을 같이했던 절친한 친구를 우연히 TV에서 찾아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아내가 거실에서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여보—! 여보—!”하고 큰 소리로 나를 불렀습니다. 닮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방에서 나와 보니 화면에는 머리칼이 희고 얼굴윤곽도 나와 비슷한 사람이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뜻이 같으면 닮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KBS1 TV에서 방영하는 ‘인간극장’이었습니다. 지난 6월 달에 방영된 ‘아버지의 뜰’이란 제목의 재방송 분이 어쩌다 아내의 리모컨에 걸려든 것입니다. “아, 남OO 씨다!”하고 내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때가 아마 7월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방송국에서 그의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아(본인의 허락을 받아야 하기 때문) 통화의뢰를 해놓고 기다렸습니다. 저녁식사 후에 그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군복을 입었을 때처럼 시끌하게 주고받은 얘기를 여기에 다 털어놓을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조금은 풀어놓아야겠습니다.
경기도 가평군 현리에 주둔했던 우리 6사단 ‘청성부대’는 철원으로 이동했습니다. 그곳에 있던 ‘백마부대’가 월남으로 파병되었기 때문에 그 자리를 메운 것입니다. 처음 사단사령부 부관부에 배치를 받고 일주일이 지나서는 군기를 잡는다는 선임들로부터 야전삽으로 엉덩이에 빳다를 맞아야 했습니다. 밤늦게 술을 마시고 들어온 고참들이 내무반 통로 쪽으로 나란히 자고 있는 졸병들의 머리통을 축구공을 차듯 구둣발로 걷어차 깨웠습니다. 이유도 모르고 거의 매일 기합을 받고서야 마음 놓고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오래도록 엉덩이의 멍 자국이 발뒤축까지 퍼렇게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제대 후 십년쯤 지나 두 번째로 부산일보사를 방문했을 때는 나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80년대 초 그때는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신학교에 들어간 뒤였습니다. 그리고는 소식이 두절되었습니다. 그와 헤어진지는 꼽아보니 48년쯤 되었습니다. 그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인 문경으로 내려와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틈틈이 꿈꾸던 농장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40여년 동안 농사를 하며 나무를 심고 꽃을 가꾼 그의 발자취가 인간극장 무대에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양봉으로 농장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습니다. 이농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던 시절에 농촌으로 들어와서 조용히 고향을 지킨 세월이 입소문으로 번졌던 것입니다.
제가 농촌을 사랑하기 때문인지 농촌에 몸을 담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나도 모르게 정이 갑니다.(도시에 사는 분들이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그의 거처를 알고 한 달쯤 지나 아내와 나는 지난 8월말 1박2일 일정으로 문경 그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군복무 시절에는 교회에도 함께 나갔는데 오래전 그는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니던 교회에서 ‘양들이 목자를 배척하는 것에 너무도 큰 환멸을 느꼈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2남1녀 가운데 독일로 유학까지 갔던 맏아들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일하고, 영화감독이 되려고 하던 막내아들은 신부가 되어 지금 로마에서 석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워하기만 하며 아득히 멀어졌던 친구를 반갑게 만나 밤늦게까지 군대생활을 추억하며 회포를 풀었습니다.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 이란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는 것처럼, 헤어지면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뜻이지요. 불교에서 유래한 말이지만 좋은 의미로 와 닿습니다. 성경은 약속하고 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사도행전1:11)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데살로니가전서 4:16-17)
K 목사님, 사모님, 무더위에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저는 아무리 늦더위가 남아있어도‘9월’이란 말만 들으면 기분이 새로워집니다. 이미 많이 시원해졌습니다. 뭉게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하늘이 가을하늘을 많이 닮았습니다. 내일 모레가 바로 추석이구요. 노사연이 부른 <바램>이란 노래에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란 가사가 있습니다. 가을은 영그는 계절! 가을들녘에 익어가는 오곡백과처럼 우리인생도 영글어가는 것이지요. 우리 주님의 크신 은총이 온 가정과 섬기시는 교회위에 늘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2016년 9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