夢悲賦
李奎報
有美王孫이 蟬聯茂族으로
邈風流之可愛兮요 顔又澤腴兮 如玉이로다
出擁高盖요 入處華屋이라
舞如意兮 碎珊瑚라도 曾何蔕乎心曲까
한 아름다운 왕손이 대대의 華族으로,
멋들어진 풍류 사랑할만 하고, 얼굴 또한 번질번질 옥 같아.
나갈 땐 높은 수레 타고, 들어오면 화려한 집에 거처하네.
여의주를 들어 산호를 부수고도, 마음속에 조금도 거리낌 없네.
* 쇄산호(碎珊瑚): 진(晉)나라 부호(富豪)왕개(王愷)와 석숭(石崇)이 서로 호화(豪華)를 다투어 자랑하는데, 왕개는 무제(武帝)의 외삼촌이므로 무제가 왕개를 자주 도와주었다. 한 번은 무제가 왕개에게 한 자 높이가 넘는 산호수(珊瑚樹)를 내려 주었다. 왕개가 석숭에게 보이며 자랑하였더니 석숭은 쇠방망이로 그 산호수를 때려 부셨다. 왕개가 깜짝 놀라니 석숭이 자기 집에 있는 석 자 높이가 넘는 산호수 수십 개를 가져다 보여 왕개의 입이 딱 벌어지게 하였다.
後房蛾眉는 簪翠曳縠하며
爛盈盈兮更侍하니 琤然珠佩之相觸이라
目倦乎華靡하고 耳慣乎絲竹하며
冬而至於凉하되 不知其凝嚴하고
夏而至於溫하되 不知其暑溽하니
又安知아 人生有覊窮困躓憂愁하여 哀怨之屬哉를
뒷방의 미인들은 푸른 비녀에 비단 옷 끌며
아장아장 줄지어 번갈아 모시니,
쨍그랑 구슬 패물 맞부딪는 소리 나네.
화사한 차림에 눈이 지치고, 갖은 음악에 귀가 물리며,
겨울에 서늘해 추운 줄을 모르고,
여름엔 따스해 더운 줄 모르니,
또한 어찌 알 것인가!
인생에 궁곤에 얽매이고 우수에 부딪쳐서 슬픔 원망 따위가 따르는 줄을.
* 영영(盈盈): 물이 가득 차서 찰랑찰랑하는 모양(模樣).
當春陽之旣舒兮여 感芳華之蕩意로다
召賓友於華堂兮여 玉爲簪兮 珠爲履로다
酌芳醑兮 行金鍾하니 莫不濡首而霑醉로다
焚綠桂兮 繼頹光하니 尙歡樂之未已로되
倐春宵之易闌兮여 落月窺䆫兮 嫵媚로다
忽體倦以神疲하여 遂頹然兮就寐하니
봄철 좋은 때를 당하니 香花의 방탕한 뜻 느끼네.
친구들을 화려한 집에 초대하니, 옥비녀 구슬 신 미인들
향긋한 술을 금잔에 부어 모두 곤드레 취했는데.
푸른 계수를 불살라 밤을 밝혀, 아직도 환락이 안 끝났겠다.
봄밤이 어느덧 깊어지어, 달이 창을 정답게 엿보는데.
문득 몸이 나른하고 정신이 피곤하여, 깜빡 잠이 깊이 들었네.
* 주위리(珠爲履): 구슬로 장식한 신을 말하는데, 춘신군(春申君)의 객(客)이 3천여 명인데, 그 상객(上客)은 다 구슬신을 신었다 한다. 《史記》
博山熏兮 噴香炷요 斗帳垂兮 掩綺被라
赤羽奮迅登扶桑兮여 尙雷鳴而酣睡로다
於是 怳然惚然하여 夢遊乎 廣漠之墟無人之地로다
박산 향로는 향연을 뿜고, 비단 장막 속에 기라 이불.
해가 불끈 솟아 부상에 올랐는데,
아직도 깊은 잠에 뇌성 같은 코고는 소리 나네.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꿈에 이른 곳은
휑하니 넓은 사람 없는 땅이로다.
四顧茫茫하여 不見阡里하니
深江自波하고 灌木叢倚하고
野草少色한데 危石如墮라
日掩掩兮 沉紅하고 煙冥冥兮 疊翠한데
사면을 돌아보니 망망하여 마을은 안 보이고,
강은 절로 물결치고 나무숲이 우중충하네.
들의 풀은 시들었는데, 위태로운 바위는 떨어질 듯.
해는 뉘엿뉘엿 붉은 빛 잠겨지고
연기가 어둑어둑 푸른 빛을 겹쳤는데,
猿哀哭兮 相弔하고 衆鳥啾啾兮 不止로다
慘然思家欲亟還兮여 迷不知兮路何自로다
잔나비들 슬피 울며 조상하고,
뭇 새들 구슬픈 울음을 그치지 않네.
몸서리치며 집 생각에 어서 돌아오려 하지만
아지못하겠네! 어느 길로 왔는가?
念嬪御兮 安在오 掩翠衫而拭淚로다
登崇阿以延佇兮여 欝千峯之邐迤로다
披蒙茸兮 尋崎嶇하니 慮髬髵之攸庇로다
𢥠奔還以降隴兮여 墳纍纍兮 錯峙로다
上有蹲狐與伏兔兮여 紛侶集兮 族戱로다
시첩들은 어디 있는가! 푸른 소매로 눈물 씻네.
언덕에 올라 기대어 서니, 千峯이 죽죽 펼쳐졌네.
덤불을 헤치고 험한 길을 찾노라니, 금방 범이 나올 듯 해.
깜짝 놀라 언덕으로 내려오니, 무덤이 옹기종기 놓여 있는데,
그 위에 웅크린 여우 엎드린 토끼들
어지럽게 짝지어 모여 노네.
* 빈어(嬪御): 임금의 첩(妾).
* 이이(邐迤. 邐迆): ①잇따라 나아감. ②산기슭이나 길이 길게 둘리어 뻗어 나감.
* 몽용(蒙茸): ①풀이 어지럽게 난 모양(模樣). 덤불. ②물건(物件)이 어지러운 모양(模樣). 또는 어지럽게 뛰는 모양(模樣).
拂頹碑以俯窺兮여 伊昔綺紈之公子로다
歌堂舞舘屬何人兮하고 爲此一丘兮山之趾아
富貴兮 如浮요 瓊華兮 易悴로다
弔斯人以彷徨兮여 益淒切以酸鼻로다
足累繭兮 無攸歸하고 飢與渴兮 交至로다
넘어진 비석을 굽어살펴보니, 옛날 한때 부귀하던 공자로다.
가당 무관을 누구에게 맡기고, 이러한 산 밑에 있나?
부귀는 뜬구름과 같고, 榮華는 쉽게 시드는구나!
이 사람을 조상하며 방황하노라니,
더욱 더 처량해서 코가 시어지네.
발은 부르터 돌아올 수는 없는데, 飢渴은 번갈아 찾아 드네.
* 기환(綺紈): 고운 비단(緋緞). 또는 곱고 값진 옷.
俄欠伸以忽寤兮여 喜窓櫳之猶是로다
顧尙卧於一床이온 夫何爲此遐遊아
以須臾之一夢으로 悟榮辱之相酬로다
王孫兮 可以銘肌하여 永不忘貧賤羇離者之憂하소서 <東文選 卷之1>
하품하고 기지개 켜며 꿈을 깨니,
시원해라! 창문 난간이 여전히 그대로 있네.
몸은 침상에 그대로 누워있는데,
어떻게 한바탕 멀리 놀았을까?
暫時의 한 꿈으로, 인생의 영욕을 깨달았구나!
王孫아 부디 명심하여서
빈천하여 떠다니는 사람들의 시름을 길이 잊지 마소서.
* 흠신(欠伸): 하품과 기지개.
* 명기누골(銘肌鏤骨): 「살갗에 새기고 뼈에 새긴다.」는 뜻으로, 마음에 깊이 새겨 잊지 않음을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