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으니 갈수록 기억력이 떨어진다. 전화번호 기억은 핸드폰에 맡긴 지 오래고, 매일 입력하던 집 비밀번호도 어느 날 문득 까맣게 기억나지 않아 아내에게 전화해 물어본 적도 있다. 특히 상대가 반갑게 악수를 건네는데, 누군지 기억나지 않아 어색하게 손 내미는 상황은 늘 피하고 싶은 순간이다. 경험적으로 보나, 여러 연구에서 보나 노화가 진행되면서 기억력이 떨어짐은 우리 모두가 겪은, 불가피한 현상이다.
물리적으로 보아도 뇌를 촬영한 MRI 영상들은, 노인의 뇌가 젊은이에 비해 확실히 위축되어 있고, 알츠하이머에 걸린 사람의 뇌는 더 많이 줄어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노화와 함께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단위에서도 노화가 진행되고, 피부에 주름이 늘고, 심폐기능이 떨어지는 것처럼 뇌 역시 노화가 진행된다.
그러더라도, 기억력 감퇴나, 뇌의 물리적 위축을 바로 뇌기능(전체)의 감퇴라고 연결 시킬 수 있을까? 최소한, 50대 초반에 느끼는 바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은 듯 하다. 물론 나의 기억력은 많이 떨어지고 있는 중이고, 뇌의 표면적 역시 20대에 비해 줄어들었을 지 모른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2-30대에 비해 많이, 아니 훨씬 좋아진 것도 많다. 예를 들어, 아내가 결혼 초기에 시집와서 이러 저렇게 힘들었다는 얘기를 간혹 하는데, 실은 나는 그런 상황이나 심리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치과에 처음 오는 환자를 만날 때도 30대때는 그 사람이 나에게 오기 전에 힘들었을 상황에 대해서도 거의 짐작이나 공감하지 못했고, 함께 일하는 직원들의 표정이나 기분이 매일 다를 수 있음도 지금보다 훨씬 덜 예민했다. 대부분 그냥 반복적인 상황으로 인지했던 듯 하다.
지금 내가 더 좋아졌다고 느끼는 면은 당연히 그간 쌓아온 경험의 덕일 것이다. 그런데 '경험'이란, 지금 눈에 보이는 상황과 유사한 과거의 상황이 가져왔던 결과들을 지금 끄집어 내어 지금 내 앞의 상황이 가져올 잠시 후의 결과를 예측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경험이란 과거와 현재가 서로간 대화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고, 그것이 반복될 수 록 지금의 촉수는 발달하고, 그만큼 경험의 힘은 강화된다. 책이나 논문을 볼 때도 비슷한 느낌이 있다. 지금 보이는 문자의 의미는 과거에 내가 보아 두었던 의미와 연결되어야만 하나의 기억과 지식이 될 것이고, 그런 과거와 현재의 대화가 지식과 의미의 축적과정일 것이다.
말하자면, 현재의 정보는 뇌 안에서 과거와 대화하며 일정한 가공(information processing)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뇌 세포인 연결인 시냅스는 이런 정보의 가공이 반복되는 곳에서는 유지되거나 강화될 것이고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감퇴되거나 없어진다. 늘 떠올리는 어렸을 적 기억만이 지금도 생생하게 유지되고, 늘 반복되는 동작만이 숙련도를 유지하고, 늘 산행과 골프장을 가는 사람만이 다리 근육과 루틴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다. 그런 면에서, 해마가 기억을 관장하고, 대뇌피질은 이성적이고, 우뇌는 감성적이라는 뇌 각 부분부분에 하나의 역할을 규정짓는 것은 반쪽의 진실일 뿐이다. 우리 몸이 모두 연결되어 하나의 유기체로서의 정체성과 항상성이 유지되는 것처럼, 뇌의 모든 영역과 기능들도 서로 연결되어 정보를 가공하며 뇌의 기능을 유지시켜 준다.
그런 면에서 배움이 중요하다. 배움은 지금 밖에서 오는 느낌이 내 안의 어떤 것과 만나 나와 주위를 개선시킬 수 있는 어떤 영감, 깨달음이다. 구체적으로 배움은, 현재의 정보가 과거의 정보와 만나 가공되어 미래의 정보를 연상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실은 학교 다닐 때 시험이나 학점이나 학위를 따기 위해 했던 공부, 특히 지식을 일방적으로 외우는 과정은 진정한 의미의 배움과는 거리가 멀다.그런 시간은 배움을 위한 기초 소양을 쌓는 과정이고, 내 안의 정보를 쌓아가는 과정이다. 모두 과거의 정보에 머무를 뿐, 현재와 만나지 않을 때는 재생되지 않고 소멸되거나, 미래의 연상과정으로 쓰이지 못한다.
배움은 과거의 정보와 현재의 정보와 만나 같음과 다름을 느끼고, 그 같음과 다름이 서로 비교되면서도 융합되며 어떤 상을 만들고, 그런 상으로 미래의 상을 만드는 과정이다. 나는 이것을 ‘생소함’이라 표현하고 싶다. 현재의 의미를 과거의 경험에 기반해 파악하면서도, 또 다르게 느끼고 보는 것, 그것이 생소함이다. 바로 그 생소함때문에, 배움은, 나이 먹으며 불가피한 뇌의 물리적 기능적 퇴화를 방어할 수 있는 강력한, 혹은 유일한 길이다.
달리 표현하면, 배움은 뇌의 탄력성(brain plasticity, resilience) 을 유지하는 길이다. 뇌가 동일한 물리적 상태라도, 다른 기능을 유지 확대하거나, 뇌가 물리적으로는 감퇴하더라도 정신적으로는 그 능력을 유지 확대하는 것이다. 수녀들의 노화를 따라가며 뇌의 물리적 감퇴와 정신의 일체성 유지를 추적하는 연구는 놀랍다. 신의 섭리에 대한 의식과 그것을 따라하고 배우려는 일상에 노출되어 있는 수녀들은 뇌이 현저한 감퇴에도 불구하고 정신의 명정함을 유지한다. 배움, 혹은 배우려는 의지의 힘이 아니고서는 설명될 수 없다.
배움은 내 존재나 지식이 전체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작은 것임을 승인하는 태도에서 기인하고,또 배움은 그런 태도를 유지하게 한다. 과거의 정보가 절대적이 아님을 인정하고 강화하는 것이다. 역으로 현재의 정보와 과거의 정보가 비교되지 않을 때는, 과거 지식과 정보의 상대성은 발견되고 유지될 수 없고, 또 과거와 현재가 만든 생소함 역시 미래의 배움이 없으면 그 생소함이 유지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배움이란, 인간의 존재방식 그 자체일 수 있다. (lifelong learning) (Narushima, Liu et al. 2018) 나아가 신영복 샘이 말하듯이, 생명 자체의 존재방식이 배움일 수 있다.
그런 식으로 배움은 내 존재의 의미, 삶의 의미를 찾아가게 해준다. 모든 인간이 동의하고 공감하는 삶의 최종 의미, 혹은 한사람이 평생 유지할 수 있는 삶의 의미, 그런 건 없다. 삶의 의미란, 사피엔스 각자가 각자의 과거와 현재의 정보의 비교 속에 생소함을 유지하며 각자의 의미와 길을 찾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생소함이 유지되지 않으면 의미를 추적하는 삶이란 불가능하다. 배워가지 않으면, 그런 과정의 삶이 아니면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로지 과거의 정보와 습성과 사고 패턴의 반복일 뿐이고, 외부로부터 집단적으로 박제화되어, 실은 자기로부터는 소외된 개념만이 있을 뿐이다.
또 진정한 배움은 ‘함께’ 해야 한다. 배움이란 생소함의 발견이다. 그런데, 그 과거의 습성화된 경험이나 정보가 아닌 생소함은 원래 왜소하다. 그것이 내 미래의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으려면, 내 생소함이 또한 보편적임을 발견해야 한다. 나의 생소함이 더불어 보편적임이 확인될때에야 생소함의 오솔길은 대로가 된다. 이것은 각자가 느끼는 생소함을 다른 사람의 생소함과 나누고 비교하고 합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100세 시대의 개막은, 배움의 측면에서 보자면 절대적으로 축복이다. 또 지천명이라는 50과 맥이 닿는다. 지천명은, 과거로부터 집단화되어 현재까지 연장되고, 또 그의연장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로워 지는 것이다. 신영복의 말 대로, 모든 외부의 환상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내 길이 보인다. 그런 면에서, 배우는 일상과 욕망과 실천은, 지천명에 닿는 유일한 길이다. 50년동안 일정한 경험과 정보가 쌓여있는 지천명의 나이가 진정한 배움을 시작하고 인생의 의미를 추적해 가는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Narushima, M., et al. (2018). "I Learn, Therefore I am: A Phenomenological Analysis of Meanings of Lifelong Learning for Vulnerable Older Adults." The Gerontologist 58(4): 696-705.
첫댓글 생명자체의 존재방식이 배움~~~개인이 느끼는 생소함을 다른사람과 나누는 일~
머물지 않고 새로움을 받아들이고 변화할 수 있다면 100세도 두렵지 않네요.
우리 함께 배워나가요~~~
ㅋㅋ~ 좀 전에 써 두었던 건데, 올리고 다시 읽어보니 좀 쌩뚱맞은 대목도 있네요~ 또 너무 뚝뚝 부러진 듯한 표현도 걸리지만, 이것도 제가 느끼는 감정과 기록이라 그냥 두렵니다.. 알어서 읽어 주시길~~^^ 주말 산행, 장총무님 덕분에 재미있었습니다요~~^^
너무 딱딱하지도, 너무 감성적이지도 않아서 오랜만에 깊이 읽혔어요.
고맙습니다.
생각 좀 해 봐야겠어요.ㅎ
허이고~ 오랫만..~^^
@김혜성 긁적긁적!
배움의 본질은 개념과 체험이 합일을 이룰때 생생하게 살아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늘 배우고 삶에 적용하면서 의식의 스펙트럼 단계를 위로 성장시켜요 그러나 레알 끝이 없어요~ 더 많이 아는 것이 필요 할까? 본성이 혹시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끝없는 배움의 길에서 현존은 그냥 스쳐가기만 해요 배움은 현재로부터 달아남의 다른 말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