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 읽기 (이동민)
나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백설공주 이야기를 이야기로(초등학교 여선생님으로부터), 동화로, 영화로 수없이 듣고, 읽었다. 이야기 줄거리가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 있을 정도이다. 안타까운 일이라면 어릴 때의 강렬한 감동이 여전히 이어지긴 하지만 감동의 질에서 여러번 굽이를 쳤다. 감동이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감동의 질에서는 달라졌다.
자신이 세계 제일의 미인이라 믿고 있는 계모와 다른 사람들이 더 예쁘다고 말하는 백설공주 사이의 대립 갈등이 이야기 구조이다. 심리발달의 관점에서 본다면 어머니와 딸은 잘 다툰다. 백설공주에서는 갈등의 원인이 미모이다. 여기에 성질이 고약한 계모와 순진무구하고 착하기만 한 어린 소녀 간의 갈등은 바로 선과 악의 대립이다. 이것이 내가 가장 먼저 만났던 백설공주이다.
대립 구도가 선과 악일 때는 이미 승패는 결정이 나있다. 왜냐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은 사람들이 이런 구도에서 선이 이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사람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우리가 만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어릴 때 만났던 백설공주는 바로 이런 이야기로 되어 있다.
이후로는 생업에 바빠서 백설공주같은 동화의 세계에서 멀찌감치 물러나 있었다. 그러면서 나도 성장하여 어른이 되었다.
문학공부 모임에서 백설공주를 공부했다. 백설공주는 서양의 여러나라에서 전래되어 오는 이야기로서 나라마다 조금씩 달랐다. 그러나 우리가 읽는 동화와는 엄청 다르게 잔인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다. 독일의 그림 형제가 어린이들도 읽을 수 있는 동화로 각색하면서, 오늘 우리가 읽는 백설공주가 되었다.
그러면 원전에는?
계모가 아닌 친어머니가 자기 딸이 너무 예쁜 것에 질투하여 버렸다. 공주는 자라서 이웃나라 왕자에게 시집을 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복수한다. 복수의 방법이 너무 잔인하다. 그러면서 확정도 되지 않는 프로이트 이론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들고 나왔다. 어머니와 딸은 여자로서 아버지라는 남자를 두고 갈등한다는 이론이지만, 딸과 어머니는 성장발달 과정에 갈등이 생기므로 서로 싸우는 것은 맞다. 그러나 복수를 하기보다는 애정의 감정도 함께 가지는 것이 모녀 사이의 심리적 관계이다. 그렇다고 하여 전래 동화처럼 잔인하게 복수하는 것은 아니다. 복수냐 용서냐 라는 대립되는 감정으로 보면 두 감정이 모두 나타나는 것은 맞다.
이제 나는 성인시기도 지나 노인이 되었다. ‘복수와 용서 라는 관점에서’ 백설공주를 바라보려고 한다. 우리의 머릿속에는 사악한 계모와 선한 백설공주가 대립하는 이야기가 각인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계모는 공주의 복수의 대상이 되어서 좋지 않게 최후를 맞는다.
이제 다른 시각으로 백설공주를 보자. 복수냐? 용서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현실적으로 나에게 상처를 준 상대가 나보다 아주 강한 자라면 복수하기가 쉽지 않다. 복수를 포기 하느냐, 아니면 물러나서 힘을 길러야 하느냐. 둘 중 하나의 방법을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대립상태를 해결하지 않고 시간이 흐른다면 그것만으로도 여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용서가 필요하다.
힘이 없어서 복수를 포기하는 것 하고, 힘이 있으면서도 용서하는 것은 다르다. 힘으로도 밀리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있을 때라야 용서가 가능하다. 당연히 용서는 더 빛을 발한다. 때문에 용서를 위해서는 나의 힘이 더욱 필요하다.
백설공주는 복수도, 용서도 할 수 있는 힘을 가졌지만 공주는 복수를 선택했다. 사실은 복수보다 용서가 더 어렵기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유목 문화를 배우면서, 복수를 그들의 생활이라고 공부했다. 서양인의 선조들이 유목민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전래 동화에서 복수를 선택한 것은 그들에게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