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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 한나 아렌트가 자신이 태어난 독일에서 히틀러 정권 하에서 유대인 학살을 겪고, 유대인으로 살아온 자신의 삶에 기초한 인간에 대한 성찰을 다루고 있다. 히틀러 정권에서 나치 친위대 대장으로 수많은 학살을 자행했던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지켜보며,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으로 정리했다. 당시 그에게서 '악마'의 모습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재판 과정 내내 지극히 평범한 아이히만의 모습을 접했고, 단지 아무 생각 없이 명령에 따라 행동했다는 그의 대답을 통해서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란 용어를 떠올렸던 것이다. 또한 기독교의 '원죄'를 대체하여, 아렌트는 '근본악'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하기도 했다.
문득 최근 유대인들이 건설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정치 상황을 생각하면서, '악의 평범성'과 '근본악'을 성찰하게 했던 유대인에 대한 폭력이 지금은 역설적인 상황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지금 유대인들이 건설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이 오히려 아렌트가 지켜봤던 '근본악'과 악의 평범성' 이론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상황에 처해진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단지 지금의 이스라엘의 정책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폭력은 절대로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는 이해될 수 없을 것이다.
아렌트는 이 책을 통해서 인간의 조건의 기본적인 개념으로 '활동적 삶'과 '관조적 삶'의 문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특히 '공적 영역'이 아닌 '공론 영역'을 개인들의 '사적 영역'과 대비시키면서, 그리스 시대 이래 철학자들의 이론을 근거로 자신의 논거로 활용하고 있다. 마르크스가 중시한 '노동'의 개념을 보다 명확히 규정하면서, '노동'과 '작업' 그리고 '행위'의 성격과 특성을 구분하여 논하고 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이러한 인간의 삶의 기초가 되는 것은 바로 '활동적 삶'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서구의 기독교적 세계관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통해 '근본악'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도 근대의 표지를 데카르트의 '회의'에서 찾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와 함께 흔히 도구적 인간으로 번역되는 '호모 파베르'의 개념을 깊이 있는 분석을 통해 설명하고 있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근대적 세계관을 합리적으로 해석하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철학자의 이론이 등장하여 그것들의 관계를 고려하여야 한다는 점이 다소 힘들었지만, 아렌트의 사상적 특징을 엿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되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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