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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승려 일연에 의해 편찬된 <삼국유사>는 역사서이자, 향가와 설화를 비롯한 당시의 문학작품들을 다수 수록한 귀중한 문학 유산이기도 하다. 정사(正史)인 <삼국사기>가 역사학을 전공하는 이들에게 소중하게 여겨지듯이, 야사(野史)이자 설화집이라고 평가되는 <삼국유사>는 국문학 연구에서 소중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고려시대까지는 불교가 주류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승려인 일연이 저술한 이 책은 당연히 불교적 색태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도 특징이라고 하겠다.
향가를 전공하고 있는 저자가 <삼국유사>를 강독하면서, 각각의 기사에 드러난 ‘시공(時空)과 세상’의 의미를 탐구하고자 한 것이 바로 이 책의 내용이라고 하겠다. 주지하듯이 <삼국유사>에는 단군신화를 비롯하여 삼국의 건국신화가 수록되어 있고, 삼국의 역사가 편찬자의 관점에 의해 채탁되어 기록되어 있다. 물론 편찬 당시 다양한 저작들을 참고했겠지만, 세간에 떠도는 이야기들을 받아들여 기록으로 남겨놓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삼국유사>의 기록은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는 귀신이나 요괴 등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역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시간’과 다양한 인물들이 존재하는 ‘공간’에 주목하여, 그 의미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먼저 ‘삼국유사의 시간 속 만남’이라는 첫 번째 항목에서는 ‘사라진 건국신화 속 여신’들과 ‘한 왕국 속 서로 다른 시조들’의 존재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되고 있다. 예컨대 ‘단군신화’에서는 단군을 낳고 난 이후 ‘웅녀’의 존재는 더 이상 언급되지 않으며, ‘동명왕신화’에서도 주몽의 어머니 ‘유화’의 이후 행적은 불명확하게 표현되고 있다. 분명 건국시조들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했던 ‘여신’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왜 역사에서는 그들의 존재가 더이상 언급되지 않았을까? 나아가 박혁거세와 석탈해 그리고 김알지로 이어지는 신라의 왕실은 전혀 다른 건국시조들의 존재를 상정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밖에도 동아시아의 여러 사상들이 어떻게 당대 사회에 수용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서술하고 있다.
‘삼국유사의 현장 속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두 번째 항목에서는 ‘바다 저편을 오고 가며 소통했던 사람들’과 ‘다른 세상에 속한 존재들’에 관한 내용들에 대한 분석이 이뤄지고 있다. 저자는 특히 <삼국유사>가 지닌 문화적 가치에 주목하여 ‘번역과 대중화’를 통해, 현대인들이 쉽게 활용할 수 있는 ‘또 다른 <삼국유사>를 만들자’는 제안을 하고 있다. 세 번째 항목은 ‘삼국유사의 세상 속 체험’이라는 제목으로, 각각의 기사에 등장하는 현실세계가 아닌 공간의 특성과 의미를 추적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들을 검토함으로써 저자는 ‘만나다, 사람들을, 체험을 통해’라는 마지막 항목에서, <삼국유사>에 수록된 내용들이 ‘만남’과 ‘사람’ 그리고 ‘체험’이라는 주제로 집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저자가 연구해온 ‘고대시가와 향가의 이해’라는 제목의 부록을 제시하고 있어, 소중한 고전시가 자료로서의 향가의 성격과 의미를 개괄하고 있다. 이미 여러 차례 원문을 강독하기도 하고 다양한 번역서를 통해서 <삼국유사>를 접해왔기에, ‘시간과 공간’에 초점을 맞춰 논의한 이 책의 내용은 충분히 익숙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하나의 고전을 다양한 시각에서 읽어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러한 과정을 통해 고전의 대중화를 실천하려고 하는 저자의 시도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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