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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에게 있어 스마트폰으로 상징되는 디지털 기기는 이미 불가결한 도구처럼 인식되고, 그로 인해 대부분의 생활이 꾸려질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다.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통신망은 각자가 소유한 디지털 기기의 스크린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거대한 방’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저자는 어느 틈엔가 스크린을 통해 서로의 소식을 주고받고,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뉴스를 검색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서술하는 것으로 내용을 시작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해 세상이 편리해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기술이 발전하면 그에 따라 인간의 생활은 편리해질 것이라는 고전적인 인식은 이미 깨어진 지 오래되었다. 새로운 기기가 개발되면,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기 위해서 더욱 바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 들어선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을까? 아마도 저자는 이러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이 책을 구상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새로운 정보에 재빨리 접속하는 ‘속도’가 요구되는 세상에서 오히려 자신의 삶의 문제를 보다 진지하게 숙고할 수 있는 ‘깊이’를 추구하자는 의도로, 책의 제목 역시 <속도에서 깊이로>라고 붙였을 것이라 이해된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 모두 일곱 사람의 ‘사상가’들을 예시로 하여, 깊이에 토대를 둔 ‘여유로운 삶’의 모습을 논의하고자 하였다.
‘철학자가 스마트폰을 버리고 월든 숲으로 간 까닭은’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대중들 속에서 휩쓸리기보다는 숲을 찾아 침잠했던 소로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만의 ‘월든 숲’을 마련하자는 저자의 의도가 담겨있다고 여겨진다. 자신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예시로 들면서, 스크린에 포섭된 바쁜 현대인들의 ‘평균적인’ 삶의 모습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 책의 서술은 시작되고 있다. 저자는 일곱 사람의 유명한 ‘사상가’들을 통하여 그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당위를 제시하고 있지만, 실은 사람들 모두 이미 그 방법을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된다. ‘서문’의 부제이기도 한 ‘깊이가 필요한 시대, 천천히 느끼고 제대로 생각하는 법’이 그 대안일 터인데, 실상 사람들은 그것을 알면서도 실천하기가 쉽지 않을 뿐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세상에서 ‘천천히 느끼고 제대로 생각’하며 사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저자는 그럼에도 스크린으로 상징되는 디지털 세상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 구체적인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그리스시대 철학자인 플라톤으로부터 20세기 문화학자인 매클루언까지 모두 일곱 사람의 사례를 들고 있다. 사람마다의 편차가 있지만, 결국 그들이 추구했던 방법의 핵심은 ‘천천히 느끼고 제대로 생각하는’ 것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예시로 든 사람들은 모두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갔지만, 자신만의 방법을 통해 때로는 대중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깊이 있는 사색에 도달할 수 있었기에 그들의 깊이 있는 사상이 전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저자는 현대인들 역시 의도적으로 디지털 세계로부터 거리를 두는 시간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프리랜서로 활동했던 저자는 배에 타기 전에 물에 빠져 사용할 수 없었던 전화기 때문에 디지털 기기로부터 해방되었던 우연한 경험을 겪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경험으로 인해서 스크린으로 상징되는 디지털 세상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장점과 단점을 분명히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휴대폰이 있었다면 배에 타서도 누군가와 끊임없이 통화하고 이메일을 확인하는 등 세상과 소통하느라 바빴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나 스크린과 절연되어 있었기 때문에 주변의 풍광을 음미할 수 있었으며, 그 시간 동안 저자는 오히려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터넷에 접속된 상태에서는 습관적인 동작에 의해 정보의 흐름에 휩쓸리게 되고, 오히려 불필요한 정보에까지 접근하는 경향이 발생한다. 그래서 휴식 시간이 주어져 있음에도, 스크린을 통해 몸도 마음도 바쁘게 지내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인터넷으로 접속된 환경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자신의 삶을 여유롭게 살 수 있는 방안을 탐색하도록 조언을 던진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인터넷과 전혀 접속하지 않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가족들과 함께, 주말만이라도 가급적 스크린과의 접속을 최소화하는 삶을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결코 쉽지 않았지만 점차 그러한 방식에 익숙해짐으로써, 가족들 사이의 대화가 많아지고 그 시간만큼은 보다 여유로운 마음을 지니게 되었음을 절감했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방법이 너무도 간단하지만, 중요한 것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그러한 생활을 실천할 용기를 갖을 수 있는가 여부라 할 것이다. 독자들로 하여금 저자와 같은 실천에 한 걸음 내디딜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 소로의 <월든>에 나오는 다음의 구절을 생각해 보기를 권유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각자의 ‘고독’과 ‘우정’ 그리고 ‘세상과의 소통’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내 오두막에는 3개의 의자가 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해, 다른 하나는 우정을 위해, 또 다른 하나는 새상을 위해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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