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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소개를 위한 각종 서식을 작성하다 보면, 반드시 마주치는 난이 바로 ‘취미’라는 항목이다. 최근에는 그런 서류를 작성할 기회가 없다 보니 까마득하게 잊었지만, 내 경우에는 보통 ‘독서’라고 적었던 것 같다. 그동안 간혹 일시적으로 즐겼던 활동들이 적지 않지만, 그것들은 내 취미로 굳어지지 못하고 잠시 동안의 자족적인 활동으로 그쳤다. 한동안 열심히 산행을 했던 적이 있었으며, 캐나다 밴쿠버에서 1년 동안 머물렀을 때는 자전거를 열심히 탔던 기억이 있다. 그밖에도 다양한 활동에 빠져들기도 했고, 그 가운데 일부는 지금도 간혹 즐기기는 하지만 대부분 나의 취미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언제부터 취미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문득 궁금함을 느낄 즈음에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최미의 일상 개념사와 한국의 근대’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취미라는 용어가 도입된 배경과 그 정착 과정을 다루고 있다. 전근대 시기에도 취미와 비슷한 용어가 있었지만, 그것이 사람들의 일상에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서양문화의 도입과 때를 같이할 것이라는 예상을 했다. 저자는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취미라는 용어의 등장이 ‘근대적 개인의 탄생과 정체성의 표상’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근대 이전에도 이와 유사한 의미를 지닌 단어들이 있었지만, 그것이 대중들에게 각인되어 활용된 것은 분명 근대 이후의 일이라 하겠다.
이 책은 모두 3부에 걸쳐, ‘취미’라는 용어의 등장과 그것이 일제 강점기 동안 각종 문헌을 통해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를 살피고 있다. 1부에서는 근대에 접어들면서 ‘취미’라는 용어가 일본을 통하여 수입되었고, 초기에는 주로 계몽적인 역할을 했던 사정들을 서술하고 한다. 즉 ‘취미’를 근대적 지표로 사용하여, 마치 모든 사람들이 취미를 가져야만 하는 것처럼 인식이 확산되는 과정을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이와 함께 2부에서는 그것이 어떻게 한국 사회에서 정착되었는가를 살피면서, 특히 일제의 통치 수단으로 활용되었던 사례들에 대해서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학교 교육을 통해서 최미를 교육 내용의 일부로 정착시켰으며, 신문과 잡지 등의 대중매체를 통해 그것들이 확산되는 과정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3부에서는 그것이 하나의 제도로 굳어지면서, 근대 이후 문화상품으로 활용되는 측면을 살피고 있다. 그리고 일제가 패망을 향해가던 1940년대에는 그것을 ‘국가의 통제와 전시체제를 강요’하던 수단으로 활용했다고 한다. 이처럼 이 책에서는 근대 이후 해방 이전까지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취미’가 어떻게 도입되고 정착되었는지를 다양한 문헌을 통해서 서술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예컨대 학생들에게 ‘농사 취미’를 강조하면서, 일제의 전시체제에서 그릇되게 활용되었던 사례들도 있었다. 이처럼 개인이 아닌 ‘공공 취미’를 강조하면서 생긴 폐단도 적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저자의 작업이 주로 문헌 작업에 의존하다 보니, 취미가 구체적인 개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다루지 못한 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매체를 포함한 다양한 문헌을 통해서, 그것이 우리의 일상에 어떻게 정착되었는지를 논하고 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의를 지닌다고 여겨진다. 흥미로운 작업이 이 단계에서 멈추지 말고, 해방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것을 추적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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