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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유난히 학연과 지연이 강하게 작용하고, 특정 직업군에서의 조직문화도 매우 엄격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간호업계라 할 것인데, 얼마 전에도 새로운 간호사를 괴롭히면서 길들이려는 이른바 '태움' 문화가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간호사 사이에서 발생하는 직장 내 괴롭힘을 뜻하는 표현으로,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의미로 ‘태움’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 역시 대학을 갓 졸업해 취직한 병원에서 그것을 직접 겪고 주변 사람들이 그로 인해서 힘들어하는 것을 지켜봤다고 말하고 있다. 아마도 '태움 문화'는 그만큼 그 직종의 조직문화가 서열화되어 있고, 비민주적이라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에서도 저자는 간호사들 중의 최고 책임자인 '수간호사'의 말 한마디에 의해 갑작스럽게 야근이 결정되고, 정당한 항의조차 선배들에게 대든다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직장을 쉽게 떠나고, 애초에 가졌던 간호사로서의 포부와 희망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저자는 간호사로서 포부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을 찾아 외국으로의 취업을 결심하고, 20대의 청춘을 그것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해서 아랍에미리트로 취업하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작년부터 전 세계로 확산된 코로나19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의 헌신적인 모습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안겨주기도 헸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이러한 경직된 조직문화로 인해서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있다고 하니, 바람직하지 못한 조직 문화가 하루라도 빨리 변화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책에는 '자신감 부족과 미안함을 달고 살았던 간호사 윤혜진의 환골탈태 라이프스토리'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저자는 한국에서 간호사 생활을 하면서 '자신감 부족과 미안함을 달고 살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하지만 나이와 직급에 상관없이 평등한 조직문화가 자리 잡은 외국에서의 간호사 생활은 비록 그 과정은 힘들지만 스스로 공부한 만큼 보람이 따른다고 말하고 있다. 동일한 인물에 대한 조직의 평가나 개인의 만족도가 장소와 역할에 따라 이처럼 차이가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그래서 더욱 우리 사회의 경직된 조직문화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곱씹어보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힘들게 노력해서 외국에서 자리를 잡은 저자의 노력에 격려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이들이 외국으로의 취업에 성공하기가 힘든 만큼, 한국에서의 조직문화를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이 책에는 저자의 현재 상황과 과거 한국에 있을 때의 힘들었던 경험이 자주 비교되고 있다. 이 역시 한국에서도 평등하고 민주적인 조직문화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저자의 바람이 담겨있다고 이해된다. 서열을 중시하고 경직된 조직문화에 몸담아 보았던 사람이라면, 저자의 이러한 바람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어느 한 사람의 힘으로 조직문화를 바꿀 수는 없겠지만,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하면서 우리 주변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나아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잇는 코로나19의 종식을 위해서 노력하면서, 환자들을 위해서 힘들게 일하는 간호사들에게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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