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두 호에서 태식호흡과 그것이 보사로 이어지는 순환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의문이 남습니다.
우리는 분명 모태에서 그 호흡으로 시작했는데,
지금 우리의 호흡은 왜 이렇게 다를까요.
경학은 그 전환점을 분명히 짚습니다.
만삭(滿朔)의 태를 벗고 중태(中胎, 육태)의 세상을 맞이하게 되면서
발병시원의 저주는 그 유전성을 드러내 영지를 혼란케 한다.
이는 능지(能智)를 제압함으로써
인간의 정(精), 기(氣), 신(神)을 소멸시켜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도록 위약하게 하기 위한 사기(邪氣)적 행위입니다.
그 전조 현상이 바로 병고(病苦)로 나타납니다.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우리는 태식호흡의 본의와 생리적 규율을 망각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인간은 영지를 잃었고,
능질 간의 본래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무엇이 들어왔을까요.
반대적인 죽음의 호흡으로 전환된, 기질적 본능 호흡.
이것이 핵심입니다.
태식호흡이 영원을 지향하는 생명운동이라면,
지금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는 호흡은
그 반대 방향, 죽음을 향한 호흡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코로만 숨을 쉬고,
음식으로만 몸을 채우려 하고,
호흡을 그저 생존을 위한 기계적 동작으로만 여기는 것.
이것이 발병시원 이후 인간이 빠진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실을 알면서도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요.
본래의 인간 기준에 비견하여 본다면
이미 병들어 다 죽어가는 환자의 처지나 다름없다고
경학은 말합니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이 사실조차 망각하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정의가 분명치 않은 상태로,
그저 지금의 삶이 당연한 것이라 여기며 살아갑니다.
인간 회복(人間回復)이란 바로 이 현실에서 치유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죽음의 호흡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순간이 있습니다.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입니다.
다음 호에서는 그 순간에 나타나는 공황(恐惶)이 무엇인지 살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