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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합회 꽃내 쉼터 교회 임광은 집사처럼
성도의 자살을 미화시키면 안 되는 이유?
임광은 집사는 자신이 병을 고치겠다고 하던 한 성도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자 그 장례식에서 설교를 했다고 합니다.
그 설교 내용을 요약하면 한마디로 “성도가 자살한다고
구원 못 받는 것은 아니다”라는 식의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폭식을 하는 것도 사실은 자살”이라느니 등의 온갖 해괴한 논리를
늘어놓으면서 정신병을 고치는 전문가를 자처하던 자신의
궁색한 처지를 그런식으로 변명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나는 요양원을 30여년 동안 운영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정신 요양원을 13년 동안 운영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수십명의 조현병(전, 정신분열증) 환자들을 데리고 있지만,
자살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여러 환우들이 자활에 성공하여 직원이 된 경우도 있고,
최근에만 해도 20대에 조현병에 걸려
37세에 가족들이 아예 포기하여 나에게 맡긴 한 자매는
나의 끈질긴 노력과 기도끝에 2년 전부터 우리 요양원에서
유급 봉사를 시작하였고, 드디어 올해 4월부터 요양보호사 교육원에 다녀
바로 5월 24일 시험을 보고 합격하여 6월에 우리 요양원에
정식 직원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 이것이 별 것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 분들은
조현병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것인지를 전혀 모르기 때문이며,
이 자매도 무려 19년만에 기적과도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과거나 지금이나 믿는 자들에게 동일하게 역사하고
구하는 자들에게 여호와 라파(치료하시는 하나님)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 4:20)
말만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사람들을 속이는 거짓 기별자들은
시대마다 있어 왔고 마지막 때에는 하나님의 택하신 여자의 남은 자손인
재림교회에 사단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기 위해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자를 찾고 있음을 유념해야 합니다.
임광은 집사가 게임 중독자와 정신 질환자들을 치료하는 능력자임을
자처하지만, 그가 그토록 신뢰하던 한 성도의 자살 사건은
그가 얼마나 말만 앞세우는 거짓 기별자인지를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임광은 집사 주장처럼 정말 그곳에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고
임광은 집사가 기도만 하면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자라면,
결코 그러한 불행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어야 맞습니다.
특히 ‘자살’을 미화하는 듯한 임광은 집사의 설교와 주장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며 언어도단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이비 교주나 거짓 기별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억지 해석하는 경우와도 같습니다.
성도가 자살을 하면 과연 구원을 받을까요?
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살인 행위’를 자살(自殺)이라고 합니다.
요즘 언론에서는 ‘자살’이란 단어보다는 ‘극단적 선택’이라고 표현합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2021년 자살사망자 수는
13,352명으로 전년 대비 157명(1.2%) 증가하였고,
1일 평균 자살사망자 수는 36.5명입니다.
우리나라 자살하는 숫자를 보면 최근 5년간 우리나라의 자살
사망자 수가 전 세계에서 발생한 주요 전쟁 사망자 수의
2~5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문제는 이처럼 많은 자살 사망자 숫자조차 정작
전체 자살 문제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연간 자살 사망자는 약 13,000여명 가량이지만,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은
약 500만명, 계획하는 사람은 약 200만명, 자살을 실제 시도하는
사람만 약 15~30만명에 달한다는게 복지부의 집계입니다.
이로 인해 이미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가입 국가 중 1위를 달리고 있고 10만 명 당 자살률 29.1명으로
OECD 평균 12.0명보다 훨씬 높습니다.
우리나라 경우 전직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비롯한 유명 정치인들과
유명 연예인들이 잇달라 자살을 하면서 자살이 미화되기도 합니다.
문제는 기독교계 안에서조차 이제는 자살을 해도 구원은 받는다는 등의
참으로 상상할 수 없는 기이한 주장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년 전에 재림마을 게시판에서 재림교회의 한 목사가 ‘자살해도 구원은
받는다'라고 주장을 했는데, 그 목사는 자신의 친동생이 정신적 질환을
앓다가 자살을 한 케이스로 동생에 대한 인간적 애착이 너무 심하다 보니
엉뚱하게도 그러한 비성서적 주장을 한 것으로 보여졌습니다.
성경을 해석하면서 거기에는 인간의 생각이나 상식, 혹은 인간적 동정이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앞설 수 없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도 망나니 사형수 같은 자식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데
어찌 하나님께서 자살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토록 사랑하신다고 하는
하나님의 자녀를 버릴 수 있겠느냐’면서 자살해도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지만, 그것 역시 지극히 인간적 생각에서 하나님의 공의까지
무시하고 하나님의 영역을 인간 마음대로 재단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이 없으셔서 범죄 한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셨으며 영생을 상실케 했을까요?
하나님이 사랑이 없으셔서 노아 가족 8명을 제외한 모든 인류를
홍수로 쓸어 멸망케 하셨을까요?
하나님이 사랑이 없으셔서 소돔과 고모라 성을 유황불로 멸망케 하셨을까요?
이러한 성경적인 원칙, 하나님의 공의까지 짓밟고 지극히 인간적 생각으로
자살을 해도 구원은 결코 상실되지 않는다는 위험천만한 주장을 하는 자들이
최근 기독교계 안에 점점 증가하고 있으며 재림교회 저변에서도
그러한 주장들이 들려지고 있는 시대에 우리가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일부 성도들의 주장처럼 정말 성도가 자살해도 구원은 받는가요?
오늘 우리는 “과연 성도가 자살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라는
이 심각한 문제를 놓고 성경을 통해 그 해답을 찾아보겠습니다.
자살은 말 그대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입니다.
자살도 엄격히 말하면 살인 행위입니다.
타인의 생명을 끊는 것만 살인이 아니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도
명백한 살인 행위입니다.
생명의 소중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참새 한 마리도 귀하게 보셨습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10:29)
참새 한 마리... 우리가 볼 때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도
그 참새 한 마리의 생명도 하나님은 귀하게 보십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죽지 않는다고 했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은 바 된 사람이겠습니까?
무엇보다 성도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토록 귀하게 여기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피로 산 바 된 하나님의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우리가 하나님의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까?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먹고 마시는 것까지도 구별하여 하나님의 성령의
전인 우리 몸이 건강하게 성결하게 하는 의무까지 있는 자들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하물며 우리 몸을 우리 스스로 죽이는 자살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최초의 살인자인 마귀를 좇아가는
백성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요 8:44)
자살은 명백히 살인입니다.
타인의 생명을 죽이는 것을 성경은 가장 엄격히 금하고 있으며
하나님 앞에 가장 극악한 범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타인의 생명보다 더 귀한 나의 생명 그것도 나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한 생명을 스스로 끊어도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마귀가 만들어 낸 거짓말이며 거짓 복음인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우리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하나님의 전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전3:16,17)
하나님이 예수님의 피로 사셔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한 우리 몸을
우리가 더럽혀도 하나님이 우리를 멸하시겠다고 하셨는데
하물며 그 몸을 스스로 죽이는 자살을 하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엄청난 죄이며 불의한 것인지를 우리는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왜 자살을 할까요?
극한 한계상황 곧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 해결 할 수 없는 일들이
닥쳐 올 때 최악의 선택이 바로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 것입니다.
자살(自殺)과 타살(他殺)은 대상이 서로 다를 뿐 사람의 고귀한 생명을
끊는 행위라는 점에서 이 둘은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타살이 타인에 대한 심한 증오감이나 복수심에서 나온 것이라면,
자살은 깊은 좌절과 절망감에서 나온 행위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끊는 자살...
오죽하면 자기의 생명을 스스로 끊을까요?
자살하는 사람들을 보면 충분히 인간적으로는 동정의 여지가 있습니다.
대통령을 했던 분도 자살을 하고 유명 정치인들과 유명 연예인들이
걸핏하면 자살을 하는 세상에 우리는 지금 살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리스도인이 자살을 하는 경우입니다.
성도가 과연 자살을 하면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가요?
성도가 자살을 하면 정말 구원은 못 받을까요?
아니면 정당한(?) 자살을 하면 구원을 받을까요?
우리는 이 문제 역시 성경에서 답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성도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러한 살인 행위에 대해
그 어떤 인간적인 생각이나 동정심을 갖고 접근할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뿐 아니라 전세계 거의 모든 사람들이 기억하는
끔찍한 집단 자살 사건이 몇 사례가 있는데 그 중 미국의 경우
1978년 11월 18일, 남아메리카 가이아나 '존스 타운'이란 교주 짐 존슨의
인민사원에서 교주의 명령에 따라 총 909명 신도들이 청산가리를 탄
쿨에이드 음료를 마시고 집단 음독자살을 했습니다.
놀랍게도 그 수많은 사람들이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처럼 순순히
교주 존스의 말에 따라 그 자식들에게 독을 먹인 다음 자기들도 마셨고,
짐 존스 교주 역시 머리에 스스로 권총으로 자살을 하여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이 경우가 빗나간 종말신앙이 자살을 부추 킨 대표적인 경우였습니다.
이들은 극단적인 종말신앙을 가진 사람들로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하나님 앞으로 간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80년대에 이와 비슷한 오대양 집단 자살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었는데 1987년 8월 29일 경기도 용인군 남사면에 있는
(주)오대양의 공예품 공장 식당 천장에서 오대양 대표 박순자를
비롯해 가족·종업원 등 신도 32명(남 4명, 여 28명)이 손이 묶이거나
목에 끈이 감긴 채 시체로 발견됐습니다.
박순자가 자신의 아들 2명과 딸 1명과 함께 사망하는 등
사망자 32명 중 17명은 가족관계였습니다.
일반인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자살극으로 위장된
변사사건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최대의 변사사건이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이렇게 사이비 종교 집단에 빠져 자살하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우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한 고통이나 절망감
혹은 남녀 연인 관계 속에서 실연을 당하거나 불치병에 걸려 도저히
그 고통을 견뎌낼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자살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인간으로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한계 상황에서 스스로 조용히
목숨을 끊는 것이 과연 하나님 앞에 구원 받지 못할 죄가 될까요?
아니면 저들은 하나님도 불쌍히 여겨 구원해 주실까요?
앞서 언급한 사이비 종교 집단에 빠져 자살한 경우는 그들이 건전한
믿음이 없다는 전제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데 이견이 없겠으나,
그런데 두 번째 경우들은 그들이 이미 예수 믿고 구원을 받은 신자라는
사실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고 우리의 고민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고 거듭남을 경험하고 구원의 종교적 체험을 한 사람들이
어떻게 자살을 할 수 있을까요?
아니 자살을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죽었을까요?
실제 그랬다면 하나님이 저들을 어떻게 하실까요?
다시 말씀 드리지만 이 문제는 인간의 생각이나 동정심에서 출발하면
절대로 바른 답을 얻을 수가 없고 반드시 성경을 통해 답을 찾아야 합니다.
먼저 성경에 나타난 몇 가지 자살의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사울의 자살입니다.(삼상31:3-5)
사울은 전쟁에서 패하고 중상을 입자, 할례 없는 이방인에게
모욕당할 것이 두려워 자신의 칼 위에 엎드러져 죽음을 맞이합니다.
칼에 엎드러져 사울의 목숨이 아직 붙어있고, 또 사울의 간청으로
아말렉 사람이 그를 죽였으나 아말렉 사람이 아니었더라도
사울은 죽을 수밖에 없었기에 결국 사울은 자살한 것입니다.
둘째는 다윗을 대적한 알삽롬의 반역에 동참한
아히도벨의 자살입니다.(삼하17:23)
아히도벨은 압살롬의 반역과 관련해서 자기의 모략이
성공하지 못함을 깨닫고 스스로 목매어 죽었습니다.
셋째, 이스라엘 왕이었던 오므리 왕의 자살입니다.(왕상16:18)
이스라엘의 왕 오무리는 성이
함락되는 것을 보고 불을 질러 그 가운데서 죽었습니다.
넷째는 우리가 잘 아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였던
가룟 유다의 자살입니다.(마27:3-5)
유다는 예수를 판 일에 대해 뉘우치고 스스로 목매달아 죽었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에 나타난 자살은 자신들의 죄악으로 인해
결국 최악의 죽음으로 치닫게 된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울, 아비도벨, 오므리, 가룟 유다 모두 하나님 앞에 크게 범죄한
자들로 자신들의 죄가 결국 그들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한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경 66권에서 참된 믿음을 가졌던 하나님의
자녀들은 단 한 사람도 자살했다는 기록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 반역하고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자살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는 절대로 스스로 자기 생명을 끊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귀히 여기셔서 살인을 엄히 금하셨을 뿐 아니라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믿음으로 산 사람들은
결코 자살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정론을 믿고 무조건적인 성도의 견인과 구원을 믿는 사람들은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once saved, always saved)이라고 주장하면서
구원받은 사람, 즉 하나님께 한 번 택함을 받은 사람은 그 어떤 죄와는
전혀 상관없이 반드시 견인되어 구원 받는다고 주장합니다.
저들은 성도가 어떠한 죄를 짓거나 성도 자신의 심적 변화나
외부의 어떤 환경이 작용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주권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살을 했든, 타살을 했어도 즉 참으로 중생한 사람이라면
그 구원을 상실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정말 한 번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사람은 그 어떤 죄를 지어도
자살을 해도 이미 받은 그 구원은 변함이 없는 것일까요?
자살을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자들이 공통적으로 인용하는
성경절이 바로 다음의 말씀입니다.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9)
그런데 이 말씀은 성도가 죄를 지어도, 자살을 해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는다는 그러 말씀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 있을 때, 성도가 죄를 지어도 회개하고 믿음으로
주 안에 머물 때 그렇다는 것이지,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예수님의 피로 사신 우리의 생명을 스스로 끊어도
그 사람이 결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질 수 없다고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그 어떤 죄를 지어도 구원은 유지된다고 하는 것은
사실 아담과 하와만 생각해도 전혀 맞지 않는 마귀의 복음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오늘날 우리와 같은 도덕적인 그런 죄는 근처도 안 가본
자들이었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가장 완벽하게 창조된
하나님의 첫 자녀였으나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은
불순종 하나 때문에 영생을 상실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 하나만 생각해도 한 번 받은 구원은 그 어떤 죄를 지어도
절대 빼앗기지 않는다는 주장의 허구성을 금방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히6:4-6)
여기서 "타락한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타락하다"(파라핍토)는
“떨어지다, 변절하다, 떨어져 나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지라도 첫 신앙에서
변절된 자들, 떨어져 나간 자들은 다시는 회개할 수 없고
멸망할 수 있음을 성경은 확연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무엇보다도 생명이 소중함과 고귀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십계명 중 하나가 “살인하지 말라”입니다.
그리고 다음의 말씀은 살인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요일3:15)
형제를 미워하는 것조차 살인인데 그러한 자에게는 영생에 거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하물며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끊어 살인하는 자가
어떻게 영생에 거할 수 있겠으며 구원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요?
여러분! 이웃의 생명과 여러분의 생명 중 어느 것이 더 귀합니까?
참 기막힌 질문이지요? 말할 것도 없이 우리 자신의 생명이
이웃의 생명, 타인의 생명보다 훨씬 더 귀하고 귀합니다.
이웃의 생명을 죽이는 살인, 아니 이웃을 미워하는 것도 살인인데
하물며 이웃의 생명보다 귀한 내 생명을 죽여도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과연 누구의 주장이며 누구의 계략인지를 식별해야 합니다.
내 생명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웃을 결코 사랑할 수 없습니다.
내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나의 생명이 예수님의 피로 사신 바 된
하나님의 것임을 깨닫고 소중히 여길 때 같은 원리로 하나님의 것이
된 이웃의 생명도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그러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자살은 명백한 살인 행위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예수님의 피로 사셔서 하나님의 것이라고 선언한
소중한 생명을 스스로 끊는 것은 명백한 살인 행위인 것입니다.
살인하는 자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음을 성경 요한 계시록
마지막 부분에서 두 번씩이나 이렇게 강조합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21:8)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 (계22:15)
살인하는 자들은 결코 천국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예수 믿고 평생 신앙생활을 했어도 자살을 하여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끊는 자들은 살인자들로 구원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거짓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자살을 미화시키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자살을 해도 구원은 상실되지 않는다는 희한한 논리를 펼쳐 나갑니다.
자살을 해도 구원이 상실되지 않는다면 힘든 세상, 걱정 근심이 많은
세상 이렇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자살하여 죽으면 천국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인민사원의 짐 존스 같은 사이비 교주가 그러한
논리로 1천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스스로 죽게 만든 것입니다.
그의 마지막 설교를 들어보면 ‘죽어 이 육체의 고통에서 벗어나
다시는 영원한 고통이 없는 천국으로 가자’고 집단 자살을 부추키고
선동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근거로 확실히 말씀 드립니다.
성도가 자살을 해도 구원은 상실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거나 설교하거나
그렇게 사람들을 선동하는 목사들이나 교사들은 바로 사이비 교주
짐 존스와 별 반 다를 바 없는 무책임한 마귀의 종들이라고 말입니다.
저들의 주장은 자살을 해도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구원은
결코 상실되지 않는다는 논리로 펴지만 이러한 주장은 참으로 허접하고
전혀 구원의 교과서인 성경적 근거가 없는 마귀의 거짓 복음입니다.
진짜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희망을 잃지
않을 것이요,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은 결코 자살하여 자신의 소중한
생명을 끊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살한 사람은 구원에 대한 마지막 끈인 믿음을 스스로
상실하고 놓아 버린 경우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 말씀의 결론을 내리려고 합니다.
첫째,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은 하나님의 성령의 전을
스스로 궤멸케 하는 하나님 앞에 분명한 죄악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죽여 살인하는 이 파괴행위는 그 어떤 변명이나
말로도 합리화 시킬 수 없는 죄로서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한 처사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도전하는 행위가 분명한 범죄인 것입니다.
둘째, 성경은 너무도 확실히 살인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도 없고
영생에 거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자살은 명백한 살인 행위에 해당됩니다.
셋째, 자살은 인간이 마지막 회개할수 있는 기회마저도 다 저버린
행위로 스스로 인류의 구주이신 예수님을 붙들 수 있는 믿음을
완전히 포기하고 저버린 범죄 행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자살을 해서는 안 되며 자살을 해도
구원은 상실되지 않는다고 하는 거짓 구원론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자살은 그 어떤 방법으로도 결코 미화되어서는 안 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 곧 예수 안에 참된 믿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이
예수님의 피로 사신 바 된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인 우리의 몸을
스스로 죽여 살인하는 인생의 마지막 죄를 결코 짓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필로 사신 우리 자신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성도들이 됩시다.
나의 생명처럼 주님이 피로 사신 이웃의 생명도 소중히 여깁시다.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도록 결심합시다.
첫댓글 자살은 명백한 범죄 행위입니다.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목사님의 건강 회복하시기를 항상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