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542) 시를 쓰지 말고 시적인 것을 써라 ― ② 시의 네 가지 높은 경지/ 시인 안도현
시를 쓰지 말고 시적인 것을 써라
Daum카페/ 시를 쓰지 말고 시적인 것을 써라
② 시의 네 가지 높은 경지
중국 송대의 시인 강기(姜夔)는 그의 시론집 『백석도인시설』에서 시에는 네 종류의 높은 경지가 있다고 했다.
첫째는 이치가 높은 경지요,
둘째는 뜻이 높은 경지요,
셋째는 상상력이 높은 경지요,
넷째는 자연스러움이 높은 경지가 그것이다.
(이병찬, 앞의 책, 259쪽) ‘시적인 것을 탐구하는 우리에게 꽤 유익한 사색을 제공해주는 시론이다.
그는 먼저 “막혀 있는 듯하나 실제로는 통하는 것을 이치가 높은 경지”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이치란 인간의 도리와 자연의 섭리를 두루 포괄하는 개념이다.
정경융합(情景融合)을 중요한 시의 가치로 여긴 동아시아의 시학과 동일성의 미학을 강조한
서양의 시학이 모두 이런 경지를 향한 시적 모색이라 할 수 있겠다.
천둥번개 지나간 곡우날 아침,
때아닌 우박과 꽃잎 사이
들숨과 날숨
부딪쳐 살아 오르며
낯선 우박이 자기를 녹여 꽃잎을 깨우네
낯선 꽃잎이 자기를 찢어 우박을 맞네
잘못 든 길을 알아차리고도
설레설레 봄꽃은 번지네
―이안, 「숨길 1」, 『목마른 우물의 날들』, 실천문학사, 2002년, 11쪽.
우박은 꽃잎을 찢는 공격적 주체가 아니고,
꽃잎은 우박에 찢어지는 방어적 객체도 아니다.
엄연한 자연의 질서 앞에 주체와 객체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우박은 꽃잎을 깨우고 꽃잎은 우박을 맞이할 뿐이다.
낯선 우박과 꽃잎 사이의 작지만 소중한 소통의 숨길이
우주 전체의 봄을 불러온다는 이치를 말하고 있는 시다.
이때 이 시를 읽는 독자의 마음속으로도 분명 ‘설레설레’ 봄의 기운이 스며들 것이다.
두 번째로는 “표현해낸 것이 표면적인 의미를 초월하게 되는 것을 뜻이 높은 경지”라고 했다.
무논에 써레가 지나간 다음 흙물이 제 몸을 가라앉히는 동안
그는 한 생각이 일었다 사라지는 풍경을 본다
한 획 필체로 우레와 침묵 사이에 그는 있다
―문태준, 「황새의 멈추어진 발걸음」, 『맨발』, 창비, 2004, 27쪽.
표면적으로는 써레질이 끝난 뒤 흙물이 가라앉는 모습이 시의 소재가 되고 있다.
흙물이 그저 가라앉는 게 아니라 ‘제 몸을 가라앉히는 동안’이라고 말하는 것도 범상하지 않지만,
그것을 ‘생각이 일었다 사라지는 풍경’으로 확장하는 상상력은 놀랍다.
그리하여 ‘우레와 침묵 사이에’ 있는 존재의 고독과 무상함을 드러내기에 이른다.
여기에서 황새는 단순한 조류가 아니라 드높은 정신주의의 한 표상으로 읽힌다.
(‘써레’와 ‘우레’라는 유사한 음성기호가 동일한 의미로 나란히 서 있는 언어유희도 볼 만하다.)
세 번째로 “깊어 분명하지 않은 것을, 마치 연못이 맑아 밑바닥이 다 보이듯이 훤하고 분명하게
써내는 것을 상상력이 높은 경지”라고 했다.
세 자매가 손을 잡고 걸어온다
이제 보니 자매가 아니다
꼽추인 어미를 가운데 두고
두 딸은 키가 훌쩍 크다
어미는 얼마나 작은지 누에 같다
제 몸의 이천 배나 되는 실을
뽑아낸다는 누에,
저 등에 짊어진 혹에서
비단실 두 가닥 풀려나온 걸까
비단실 두 가닥이
이제 빈 누에고치를 감싸고 있다
그 비단실에
내 몸도 휘감겨 따라가면서
나는 만삭의 배를 가만히 쓸어안는다
―나희덕, 「누에」, 『그곳이 멀지 않다』, 문학동네, 2004, 32쪽.
두 딸과 꼽추인 어미 사이에 이어진 보이지 않는 실을
이토록 선명하고 감동적으로 부조한 것은 시인의 상상력이다.
그 실은 급기야 모녀를 바라보는 화자에게까지 연결되고,
독자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눈에 보이도록 만드는 시람이 시인이다.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10전 균일 상밥집 문턱엔
거지소녀가 거지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10전짜리 두 개를 보였다
―김종삼, 「장편(掌篇) 2」, 『북 치는 소년』, 민음사, 1979, 84쪽.
일제 때 10전의 가치는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밥 한 상에 10전이라니 그리 많지는 않은 액수였을 것이다.
분명 구걸로 얻게 되었을 10전짜리 두 개를 부모의 생일 밥값으로 당당하게,
그러나 가련하게 내미는 어린소녀의 손목이 보일 듯하다. 그 눈망울도 보일 듯하다.
이렇게 서럽도록 아름다운 시를 읽다가 보면 사랑이니 효도니 인정이니 하는 말들이
얼마나 낡고 뻔뻔한 소리인지 깨닫게 된다.
“특이하지도 않고 기이하지도 않으면서 문채를 벗어 떨치고,
그것이 오묘하다는 것만을 느낄 뿐
그 오묘하게 되는 까닭을 알 수 없는 것을 자연스러움이 높은 경지”라고 하는 것이다.
<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안도현의 시작법(안도현, 한겨레출판, 2020.)’에서 옮겨 적음. (2024. 5. 3.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542) 시를 쓰지 말고 시적인 것을 써라 ― ② 시의 네 가지 높은 경지/ 시인 안도현|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