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퇴진’ 지시한 北 지령문 발견돼도 세상은 왜 조용할까
간첩 잡지 않은 文정권
간첩에 놀라지 않는 세상
1982년부터 독일에서 사회학 교수로 재직하던 송두율은 “북한을 북한 입장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내재적 접근법. 북한이란 나라를 자유민주주의의 잣대로 분석해 나쁜 나라 딱지를 붙이는 게 너무 가혹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동독을 사회주의 체제의 틀 안에서 봐야 한다는, 서독 사회학자 페터 루츠(Peter Christian Ludz)의 주장을 그대로 베낀 것이었다. 더 큰 문제는 이 주장대로라면 그 어떤 범죄자도 욕할 수 없다는 것. 조두순도 조두순의 잣대로 본다면 괜찮은 사람일 수 있잖은가? 하지만 이 땅의 좌파들은 송 교수의 말에 열광했다. 이제 북한을 비난하는 목소리에 반박할 이론이 생긴 것이니 말이다.
정상인: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라는데 왜 김정은 혼자만 잘 먹고 잘살아요? 살 너무 쪘더만.
종북인: 너, 송두율이라고 알아? 독일 뮌스턴대 교순데, 그 교수가 우리 입장에서 북한 비판하는 건 위험하대.
독일 통일 후 페터 루츠가 동독에 포섭된 간첩이란 게 드러난 것처럼, 별 이유도 없이 적국을 대변하는 자는 간첩일 확률이 높다. 송두율도 마찬가지였다. 조선노동당 서열 23위 정치국 후보 위원인 김철수가 그의 진짜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그에게 위기가 닥친 건 1997년 있었던 황장엽이 우리나라로 망명한 사건이었다.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라고, 우리나라로 따지면 국회의장에 해당되는 고위 인사인 황장엽이라면 그의 정체를 알 수도 있지 않을까. 불안해진 송두율은 독일의 북한 공작원을 찾아간다.
송두율: 혹시 황장엽이 내가 간첩인 거 알까?
공작원: 잠깐만 기다려. 북한에다 물어볼게.
북한: 아마 모를 걸? 황이 그렇게 말하면 ‘모략’이라고 강하게 반박해.
하지만 황장엽은 송두율의 정체를 알고 있었기에, 이듬해 낸 책에서 이 사실을 폭로한다. 잠시 당황했던 송두율은 북의 지령대로 황장엽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데, 법원은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송두율의 손을 들어준다. 환호한 좌파들은 2003년 그를 우리나라로 초청하는데, 금의환향이 될 줄 알았던 이 여행은 파국으로 끝났다. 귀국과 동시에 끌려간 국정원에 상상을 뛰어넘는 정보가 있었으니 말이다. 중앙정보부 시절인 1970년대부터 송두율을 감시했다고 하니, 그들이 얼마나 전문가인지 알 만하다. 결국 송두율은 고개를 떨구었다. “북에서 저를 김철수라고 부르는 거, 사실입니다.”
송두율은 반국가 단체 간부로 북한을 다섯 차례나 방문하는 등 북한 당국자와 회합 통신을 했다는 등의 혐의로 기소됐고, 1심은 그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한다. 2심에선 집행유예로 형이 경감돼 자유의 몸이 되지만, 국정원의 위력을 실감한 송두율은 2004년 쓸쓸히 독일행 비행기를 탄다. 그래도 그 당시 좌파들은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다. 송두율이 간첩임이 밝혀지자 빛의 속도로 그와 손절했으니 말이다. 재판 결과를 부인하며 송두율의 무죄를 주장하는 이들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불똥이 자신에게 튈까 봐 그와의 친분을 없던 셈 쳤다.
그로부터 2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 사회는 많이 달라졌다. 시나브로 세력을 확장한 좌파들이 우리 사회 각 영역을 장악한 것이다. 소위 ‘군자산의 약속’이 그 계기다. 충북 괴산군 군자산 보람원 수련원에 모인 좌파들은 폭력 투쟁보다는 정당과 교육계, 노동계 등에 침투하는 등 합법적인 투쟁을 통해 연방 통일 조국을 건설하기로 한다. 그들은 국가보안법이 천하의 악법이라 주장했고, 그간 발각된 간첩 사건들이 모두 조작인 것처럼 거짓 선동했다. 그들은 말했다. 요즘 세상에 간첩이 어딨냐?
문재인 정권은 이들의 노력이 꽃을 피운 시기다. ‘간첩 없는 세상’을 증명하려는 듯, 지난 정권은 간첩이 활개 쳐도 잡지 않았다. 2011년부터 2017년까지 간첩 적발 건수는 26건이었지만,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7~2020년까지 4년간 적발된 간첩은 3명에 불과했고, 그나마도 박근혜 정부 때 혐의를 인지해 수사 중이던 사건이었으니 말이다. 그런가 하면 대진연(대학생진보연합)은 ‘태영호 체포 결사대’를 만들고 협박 전화와 이메일을 보내는 방법 등으로 태영호 의원의 입을 막으려 했고, 서울 광화문에서 “김정은”을 연호하며 “만세”를 외쳤다.
귀신이 무서운 이유는 실제 귀신을 본 이가 드물기 때문이다. 귀신이 우리 곁에 늘 있는 존재라면, 그래서 우리처럼 밥도 먹고 잠도 잔다면, 귀신은 더 이상 무서운 존재가 아닐 것이다. 간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간첩이 자기 신분을 숨기는 대신 떳떳하게 거리를 활보한다면, 우리가 간첩을 무서워할까? 게다가 문화계를 장악한 좌파들은 북측 인사들을 멋지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포장하려 애쓴다. 영화 <공조>의 유해진과 현빈, <강철비>의 곽도원과 정우성, <의형제>의 송강호와 강동원 등등, 둘 중 상대적으로 잘생긴 이가 북한 사람 역할을 맡지 않았는가?
2023년 대한민국, 이제 사람들은 간첩에 놀라지 않는다. 이적 단체가 캄보디아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선해 지령을 받고 공작금을 수수했다는 보도가 나가도, 민노총 관계자 사무실에서 윤석열 정부의 퇴진 운동을 지시한 북한 지령문이 발견돼도, 심지어 “퇴진이 추모다”라는 문구조차 북의 지령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도, 세상은 조용하다. 적반하장이라고, 민노총을 비롯한 좌파 단체들은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어 윤석열 정권을 심판한단다. “정부가 출범과 동시에 북을 ‘적’으로 낙인찍었다”는 게 그 이유란다. 민노총이 한미 연합훈련 중단과 국정원 해체를 요구하고, 정의구현사제단은 대놓고 윤 대통령 퇴진을 외치지만, 사람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일상을 영위한다. 더 큰 문제는 내년부터다. 2020년 민주당이 국정원법을 고쳐 대공수사권을 국정원에서 경찰로 이관하도록 했는데, 3년의 유예기간이 올해로 끝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평소 믿지도 않던 신을 소환하게 된다. “신이여, 대한민국을 지켜주소서.”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753814?cds=news_edit
노동계 정치권 대상 北공작 심상찮다
연초에 터진 제주간첩단, 창원간첩단(자통 민중전위), 민노총 침투 간첩단 등을 수사하던 당국은 북한이 내린 반정부투쟁 지령과 일치하는 구호가 각종 시위 때 등장했음을 확인했다. 지난해 화물연대 파업 당시 등장했던 ‘모든 통일·애국 세력이 연대해 대중적 분노를 유발하라’는 내용이나 핼러윈 참사 시위 현장에 단골로 등장했던 ‘퇴진이 추모다, 국민이 죽어간다, 이게 나라냐’ 등의 구호가 그것이다. 심지어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조의 장기 파업에도 간첩단이 연계됐음이 드러났다.
또한, 지난해 6월 북한은 창원간첩단에 윤석열 정권 퇴진 투쟁을 지령했는데 7월에 열린 민노총 주최 노동자대회에 그대로 반영됐다. 지난해 11월 지령한 ‘제2의 촛불 국민대항쟁’도 마찬가지다. 북한에 포섭된 간첩들이 지령을 받아 반미·반정부 등 각종 투쟁을 주도하고 투쟁 구호까지 북한과 일치한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5년 8월 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 시도도 북한의 지령이었음이 2011년 적발된 왕재산간첩단 지령문에서 확인됐다. 1988년 1월 18일을 기점으로 5월까지 서울대 등 대학가에 ‘KAL기 사건의 진상’이라는 대자보가 게시된 적이 있다. 주 내용은 KAL기 폭파 사건이 남한 당국에 의해 조작됐다는 것인데, 이는 같은 해 1월 15일 자 북한중앙방송(‘구국의 소리방송’)의 보도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이었다. 토씨만 몇 개 바꿔 북한 방송문을 그대로 옮기며 가짜 뉴스를 유포했다.
이번에 적발된 간첩단들이 충성맹세문을 작성해 보고했다는 것도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국내 간첩들은 매년 김일성·김정일 생일 때나 당 창건일 등 북한의 주요 행사 때 어김없이 충성맹세문을 보낸다. 2011년 왕재산 간첩단, 2021년 적발된 청주간첩단의 대북 보고문에서도 충성맹세문이 발견됐다. 창원간첩단의 경우 규약에 이 조직이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지도사상으로 하는 김일성-김정일주의 조직’이라며, ‘김정은 원수님을 우리 혁명의 수령으로 받들겠다’고 명시한 바 있다.
북한은 정권 목표인 한반도의 공산혁명을 위해 남북관계 개선과 무관하게 계속 간첩 공작을 펴고 있다. 김일성은 생전에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듯이 남한 혁명은 남한 인민이 주도해야 한다’면서 북한을 혁명기지로 삼아 남조선 인민들의 혁명역량을 지원하라고 강조했다. 이른바 민주기지론에 입각한 대남혁명 강화 노선이다. 1964년 2월 27일 당중앙위 제4기 8차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이 제시한 남한혁명역량 강화 노선은 △남한 내 반정부투쟁 지원 △남한 인민의 정치사상적 각성(종북의식화) △지하당 구축과 통일전선 형성 △반혁명역량(주한미군과 국군, 대공수사기관, 국가보안법)의 무력화다.
이에 따라 간첩들이 각종 대규모 집회 때 개입해 선동하는 것은 우리 내부의 정치·경제·사회 등 제 부분에 혼돈상태를 조성해 이른바 혁명의 결정적 시기를 앞당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북한 직파 간첩과 국내 포섭 간첩들은 남북한과 해외를 오가면서 지금 이 시간에도 정권 타도와 공산혁명 완성을 위해 다방면의 공작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아직 적발하지 못한 제2, 제3의 간첩단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1/0002561639?sid=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