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 주부극단 [모정]이 서대문구도시관리공단의 지원으로 지역 아마추어 여성 배우들과 함께 2023년 신작 연극 '작은 할머니'를 서대문문화체육회관 소극장무대에서 6월20일부터 24일까지의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6월 호국 보훈의 달 전석 무료공연.
이 연극의 주인공 “작은댁”은 일제시대부터 한국전쟁과 전후 복구시대를 맨몸으로 살아온 불운의 여성으로, 조선 전통의 남아선호사상이 팽배한 굴곡진 시대를 홀로 견디며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닌,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는 역설적 진리로 관객들의 공감을 끌어낸다.
연극 “작은 할머니”는 지난 2001년 작고한 엄인희 작가의 대표작으로, 1995년 ‘그 여자의 소설’이라는 제명으로 초연되었다. 그 이후 연극계에서 새로운 주인공을 만나면서 꾸준히 선보이는 작품이다.
극단 [모정]은 서울 서대문 주부극단으로, 배우 겸 탤런트 정민준(정두겸) 대표가 이끌고 있으며, 2018년부터 연극 '우동 한 그릇', '배비장전' 등으로 지역 주민과 소통해 왔다. 그 동안 전국에서 상연된 무대들과는 달리 이번 극단 모정의 무대는 전원이 여성출연자 만으로 꾸며진 무대로, 남성의 역할도 모두 여성이 맡고 있다. 앞서 말했듯 극단 [모정]은 주로 주부들로 구성된 아마추어 연극인들의 모임이라서 그렇다.
작품 내용은 결코 멀지 않은 세월 속으로 스며든 우리네 할머니들과 어머님들의 멀지 않은 이야기다. 씨받이라는 둘째 부인으로 들어가 작은댁으로 살아야 했던 여인의 기구한 일생을 그린 작품으로 누군가에게 “넌 우리처럼 살지 말고 사랑받으며 예쁘고 행복하게 살아”라며 여성이 여성에게 전하는 속 깊고 따뜻한 우리네 할머니의 마음이다.
어느 날 결혼을 앞둔 생기발랄한 손녀가 작은 할머니를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 된다.
할머니는 왜 그냥 할머니가 아니고 작은 할머니냐고 묻는 손녀의 말에 작은댁으로 살아왔던 주인공의 할머니의 회상이 무대로 옮겨진다.
이름 대신 조춘어미에서 김씨의 작은댁, 작은 할머니 등으로만 불리던 여인.
작은댁은 가난한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라 16살에 마을의 독립운동가에게 시집을 간다. 그러나 신혼도 잠시. 남편은 만주로 떠나 오랫동안 소식이 끊기고, 일본 순사들은 독립운동가의 가족이라 정신대에 보내야 한다는 둥 찝쩍거린다.
남편 없이 혼자 딸을 키우며 갖은 고생을 하던 작은댁에게 어느 날 아들을 낳지 못하는 김씨네 부인으로부터 아들을 하나만 낳아달라는 간청을 뿌리치지 못하고 쌀 한 가마니를 받아 시부모에게 준 다음 김씨 집안의 씨받이로 들어가지만, 계속되는 가난으로 인해 딸 조춘이도 식모살이로 팔려간다.
아들 하나만 낳으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올 줄 알았던 작은댁은 둘째를 가지게 되었고, 어느 날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던 남편이 불구가 된 몸으로 찾아오게 되지만 자신의 뱃속에 든 딴 남자의 아이를 원망하며 이별을 고한다.
그러다 6.25전쟁이 터지고, 주인공은 자신이 의지하며 살단 큰댁(자신을 씨받이로 부른 김씨의 본처)마저 양식을 구하러 나갔다가 죽고 만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 김씨가 치매로 늙어 죽을 때까지 남편을 수발하며 산다. 그 사이 자신이 낳은 아들 진범이 찾아와 동네 사람들에게 들었다면서 자신의 출생에 대한 진실을 요구하며 술상을 엎지르는 등 행패를 부린다. 왜 나의 어머니를 작은 어머니로 불러야 하느냐고. 그제야 작은댁은 아들 앞에서 자신이 그렇게 된 사연을 밝히며 아들을 위로하고 용서를 구한다.
어느날 시집갈 나이가 된 딸 조춘이가 엄마를 찾아온다. 어려서 두고 떠나온 딸이 식모 살이 끝에 제 짝을 만나 시집간다고 하니 엄마는 그저 대견스러우면서도 미안해 어쩔 줄 모른다. 따지고 괴롭히려고 온 것은 아니지만 조춘이의 말투는 곱지 못하고, 그것이 또 서로 마음 아파 모녀는 속상하다.
과수원 맨 땅바닥에서 시집가기 전 어머니께 올리는 딸의 마지막 절에 어머니도 딸도 객석도 운다. '너만 잘 살면 된다'는 어머니의 말씀은 모든 어머니들의 목소리가 돼 가슴으로 전해져 온다.
이젠 늙어 작은 할머니. 자신은 없고 남을 위해서만 살아간, 그 고난이 그저 숙명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 답답한 우리네 어머니다. 그 빛나는(?) 고난에 대한 대가는 김씨 집안으로 호적을 올려준 게 전부일 뿐이다.
큰댁, 작은댁의 멍에는 누가 씌운 것인가. 시대가, 사회가, 제도가 만든 벽에 갇혀 한 세상 살아야 했던 우리 할머니를 만난 모처럼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나는 사람 한 평생의 삶이 너무도 쓰고 아픈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래도 연극 속 큰댁과 작은댁의 교감과 소통과 서로 아껴주는 정경은 작은 위안이 된다. 사람을 죽도록 아프게 만드는 것도 사람이지만 반대로 사람을 죽지 않고 살아가도록 끌어주고 안아주는 것 역시 사람임을 부인할 수 없다.
〈작은 할머니〉만큼은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은 고통을 몸으로 마음으로 겪어온 이 땅의 할머니들. 어머니들. 그 분들 노년은 그 무엇이 있어, 그 누가 있어 남은 인생을 따뜻하게 이끌어 드릴까. 바로 나이며, 바로 우리들인 것을 우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못내 지우기 어려웠던 시간이었다.
특히 이 작품은 센토와소녀 작가회 회원인 허봉희 시인이 작은댁의 아들 김진범 역으로 출연해 무대를 더욱 빛낸 작품이었다.
“넌 우리처럼 살지 말고 사랑받으며 예쁘고 행복하게 살아”라고 말하는 작은할머니의 말이 마음에 남는 감동적인 작품이다.
첫댓글 비가 내리던 날 서대문문화체육회관으로 가서 분식집 어린날의 컵밥과 라면을 저녁으로 먹고 관람을 했군요
시대의 아픔을 연극으로 올린 한 여인의 이야기가 감동이었습니다 사진 작품과 영상 수고 많으셨어요
역시 새로 구입하신 카메라 성능도 좋은 것 같아요 6년만에 만난 허봉희시인의 열연도 뛰어났고 11년전 교산문학관 시낭송회때 백상빌딩에서 만났던 정두겸 배우님도 반가왔습니다 이렇게 또 만나다니요 주부극단 모정의 발전을 빌며 최기만 작가님 감사합니다
그날 허봉희 시인님 출연하시는 바람에 갑작스레 가게 된 작은할머니 연극 상연.
가 보니 좋았습니다. 내용도 좋았고 큰 감동과 애잔한 마음도 남았습니다.
특히 허봉희 시인님이 출연하시니 더욱 좋았죠.
사진 약속도 없이 갑자기 함께 가게 되었지만 혹시나 해서 카메라를 들고 가기를 잘했군요.
좋은 시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