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549) 몰입성은 어떻게 생기나요? - ④ 하나의 이미지만 가지고 써라/ 시인 하린
몰입성은 어떻게 생기나요?
네이버블로그/ [하린의 시클] 좋은 시의 조건 2 - 하나의 이미지만 가지고 써라
④ 하나의 이미지만 가지고 써라
트럭, 하고 공기를 토하면 거대한 밤이 질주해 온다 살다 보면 폭력적인 기계를 몰고 고속도로를 점령하고 싶은 밤은, 꼭 온다 너는 비행소년에서 비행청년으로 자라고 길들여지지 않는 야성을 엔진으로 장착한다 방향지시등이 고장 난 삶에서 넌 애인에게 예민한 급소를 들킨다 건기 내내 굶주린 사자처럼 넌 너무 오래된 이빨을 숨겼다 천천히 혈관을 따라 불법 제조한 분노가 주입되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혁명이 끓어오른다 식상한 표정으로 어머니가 시야를 흐린다 애야, 넌 너무 착하단다 이제 그만 일하러 가야지 어머니가 걸어갈 때마다 등 뒤에선 사리(事理)가 뚝뚝 떨어진다, B급 기름 같은 아버지와 길들여지지 않는 애인과 마이너스 통장을 보고도 그런 악몽을 견디다니 어머니는 트럭보다 무서운 기계다
아, 씹어 먹고 싶은, 으깨고 싶은 밤은, 꼭 온다 트럭, 하고 입을 벌리면 신호등이 녹색 불로 바뀌고 불만을 가득 채운 가스통을 싣고 트럭들이 몰려온다 어제도 그제도 백 년 전에도 너는 방치된 유전자다
―하린, 「트럭」 전문, 『서민생존헌장』, 천년의 시작, 2015.
의심이 점점 늘어간다. 책장을 정리해도 의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도 나지 않는 줄거리. 감정도 먼 흑백사진 몇 장. 그들은 죽어 여기 없고 오늘의 눈동자는 살아서 그들의 사진을 본다. 창밖으로 매미 껍질이 바스락거리며 떨어진다. 매미도 한 시절을 불살랐을 것이다. 그들의 웃음을, 사진을, 기억도 희미한 페이지를 불사르기로 한다. 의심들을 불사르기로 한다. 불을 당기자, 기억나지 않는 상징 속에서 수런수런 말소리 들려온다. 의심이 점점 늘어간다. 불타오르면서 의심은 멈추지 않고 재로 쌓인다. 오로지 순간에만 집중하자. 불타오르는 순간만은 완전하다. 하나의 점이 될 때까지. 불타오르는 순간만은 순수하다. 하나의 실재가 될 때까지. 책을 불사른다. 이데아를 불사른다. 죽은 저자들의 사회를 불사른다. 영원히 죽지 않을 작자들의 난무하는 상상력, 죽은 광기가 저토록 아름다울 수 있을까 불타오르는 순간은 완성된다 하나의 철학이 될 때까지. 불타오르는 순간은 순정하다. 하나의 정치가 될 때까지. 아직도 할 말이 많은 입술들을 불사른다. 아직도 완성하지 못한 역사들을 불사른다. 의심은 영영 줄어들지 않는다.
― 정원숙, 「분서(焚書)」 전문, 『수요일의 택스트』, 천년의 시작, 2016.
김진규 시인의 「대화」가 정적인 하나의 장면을 바탕으로 쓰여진 시라면
필자의 「트럭」은 동적인 이미지를 배면에 깔고 쓰여진 시다.
하나의 장면만을 가지고 써야 하는 법칙은 똑같다.
동적인 이미지를 내포하더라도 화자의 눈(카메라 앵글)이 움직여서는 안 된다.
만약 기차가 달려가는 장면을 바탕으로 시를 쓰려고 할 때
카메라가 장면을 따라가면서 담는 것은 몰입성에 도움이 되지만
시공간을 갑자기 바꾸면서(편집하면서) 담아내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동적인 것을 담더라도 슬로우비디오처럼 담으면 되는 것이다.
필자의 「트럭」에는 하나의 동적 장면만이 담겨져 있다.
분노로 가득 찬 채 고속도로를 달려가는 트럭의 질주 장면이 그것이다.
이 시에서 집중할 하나의 대상은 당연히 트럭이다.
집중하고 있는 하나의 정서는 당연히 불만으로 가득 찬 이탈심리이다.
하나의 사물인 ‘트럭’ 안에 이탈심리의 원인과 과정, 결과를 중첩시켜 놓으니,
야성으로 가득 찬 ‘분노’가 생생하게 눈 앞에서 펼쳐지게 됐다.
빈부격차가 해소되지 않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한 자는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방치된 유전자”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사리(事理)’에 맞게 행동해도 가난은 악몽으로 존재한다.
그 악몽의 반복 속에서 자라난 분노와 이탈심리를 필자는 하나의 집중할 장면과
하나의 집중할 대상을 통해 집요하게 시화시켰다.
정원숙 시인의 「분서(焚書)」는
‘불사르다’라는 동적인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중첩시키면서 자신이 말하고 싶은 정서를 표출한다.
하나의 장면은 무언가를 태우는 장면이다.
그런데 하나의 집중할 대상은 추상적인 ‘의심’이다.
‘의심’이 선명한 시적 대상이 아니기에 시인은 불사르는 구체적인 행위와 ‘의심’을 결합시켰다.
“감정도 먼 흑백사진 몇 장”이 화자 앞에 놓여 있다.
‘나’는 내가 사진 속 사람들을 아직도 순수하게 기억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는다.
그렇지 않은 것만 같다.
그래서 “그들의 웃음을, 사진을, 기억도 희미한 페이지를 불사르기로 한다.”
그런데 “불을 당기자, 기억나지 않는 싱징 속에서 수런수런 말소리 들려”오고,
“의심이 점점” 더 늘어만 간다.
결국 “불타오르면서도 의심은 멈추지 않고 재로 쌓인다.”
모두 다 깨끗하게 지울 수 있다고 믿었는데,
“영원히 죽지 않을 작자들의 난무하는 상상력”이나 ‘이데아’,
‘기억 속에 축조된 죽은 저자들의 사회’ 등이 자꾸 되살아나 의심을 계속 부추긴 것이다.
화자는 “오로지 순간에만 집중하”며 순간만을 완성하려고 다시 “책을 불사른다”.
그러면서 “하나의 철학이 될 때까지”,
“하나의 정치가 될 때까지” “불타오르는 순간”이 순정하다고 믿어버린다.
그런데도 “의심은 영영 줄어들지 않는다.”
시인은 결국 의심을 불사르는 하나의 동적인 행위를 통해 이 시에서 작가들이 가진 난무한 상상력과
광기의 위대한 힘을 역설적으로 강조했다.
‘하나의 법칙’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나의 극적인 장면, 하나의 객관적 상관물, 하나의 시공간, 하나의 정서만을 가지고
창작에 임해야 자신만의 좋은 시를 창작할 수 있다.
몰입성이 없는 시는 독자로부터 자꾸 달아나는 시이다.
그러니 파편화된 무의식이나 환상이나 몽상 같은 비현실적인 세계를 다루더라도
하나의 법칙을 지키면서 꼭 창작에 임해야 한다.
< ‘슬럼프에 빠진 당신에게 찾아온 21가지의 질문, 시클(하린, 고요아침, 2016.)’에서 옮겨 적음. (2024. 5.25.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549) 몰입성은 어떻게 생기나요? - ④ 하나의 이미지만 가지고 써라/ 시인 하린|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