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식을 드러낸 수필 두 편
2019겨울신인상.hwp
여세주
이번 겨울호 신인상에는 제주지역의 수필가들이 응모하였다. 그 가운데 두 편의 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한국 수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가는 데 있어서 일정한 기여를 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한국 수필은 그동안 지극히 사사로운 일상이나 주관적인 서정을 고백하는 작품들로 채워져 왔다. 개인적인 경험을 보편화 내지 일반화시키지 못한 채 그저 감미롭게 표현하는 수준에서 머문 작품들이 넘쳐난다. 이러한 상황에서 역사의식에 바탕을 둔 수필 쓰기는 수필의 공공성을 높이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 고승보의 <올무>와 고영봉의 <슬픈 서우봉>은 이런 특성을 지닌 점에서 신인작품상으로서의 자격뿐만 아니라 한국 수필의 새로운 지향성을 제시해 줄 만하다.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삼는다고 해서 역사의식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삶의 문제를 역사적으로 살펴서 분간할 수 있는 이성적 사고 능력을 지니거나 역사적으로 책임 있는 존재라는 자기 인식을 가질 때 역사의식이 있다고 할 만하다. <올무>와 <슬픈 서우봉>은 이러한 역사의식을 지닌 작품이다.
<올무>는 제주4‧3사건을 올무에 비유하여 그 희생자 후손으로서의 피해와 아픔을 토로한 작품이다. 작가는 역사적 흐름에 의거하여 자신의 삶을 반추한다. 이를 헤아리기 위해 작품의 내용을 간추리면 이렇다.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살기 위해 저항하였을 뿐인데 폭도네 집이라는 이유로 집은 불태워지고 미처 피신하지 못한 할머니는 감금되었다가 처형되었다. 그것이 연좌제라는 이름으로 작가의 삶까지 옭아매었다. 검찰직 공무원이 되려다가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무작정 육지로 나와 하루도 쉬는 날 없이 혹사당하며 제철소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민주화의 열풍으로 노동조합의 깃발을 들고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애썼다. 제주를 떠난 지 3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4‧3사건의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비가 마을 앞에 세워지고 4‧3평화공원이 아픈 역사를 기리지만, 아직도 그 후손들은 치유되지 않은 역사적 아픔을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다.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작가는 역사적 흐름에 따라 ‘나’의 삶을 지각한다. 작가의 삶이 역사의 흐름과 관계되어 있다고 여긴다. 따라서 이 작품에는 역사 변화의 과정에 ‘나’의 삶을 관련지으려는 역사의식이 깔려 있다.
<슬픈 서우봉>은 역사적 유적에 대한 관광객들의 무관심을 안타까워하면서 은근히 비판한 수필이다. 따라서 이 작품의 작가는 역사적으로 책임 있는 존재라는 주체적인 자의식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제주 올레길 19코스로 포구에서 서우봉을 오르는 도중에 지나게 되는 몇몇 유적들의 역사적 의미와 그것에 대한 감회를 전달하면서 역사 유적에 대한 관광객들의 무관심을 안타깝게 여긴다. 관광객들은 서우봉 정상 근처의 봉수대 터를 지나다니면서 논길 한번 주지 않고 걷기에만 열중한다. 양민들이 채찍을 맞고 혹사당하면서 팠던 일제 군사 동굴 진지에도 거의 관심이 없다. 지나가던 군인 두 명이 남로당 무장대의 공격으로 숨진 것에 대한 보복으로 300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무참히 학살당했던 북촌마을의 슬픈 역사를 들여다보려는 사람은 보기 힘들다. 작가는 제주 관광객들이 제주의 속살은 들여다보지 않는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럴 뿐만 아니라, 컵 속에 빨대를 꽂고 남의 문화를 빨아대고 스마트폰의 노예가 된 채 맛집을 다녀간다는 인증샷을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젊은이들, 그들에게 장래의 어두움이 드리워져 있음을 느낀다고까지 한다. 이런 데서 작가의 투철한 의사의식이 감지된다.
<올무>나 <슬픈 서우봉>은 선명한 역사의식을 지니고 있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다만, <올무>는 지나치게 작위적으로 보이는 액자형 구성으로 천의무봉의 수필이기에는 약간의 부족함이 있고, <슬픈 서우봉>은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서술로 구성 전략의 부재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이런 점에 유의하면서 수필 창작을 이어간다면 수필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작가로 주목받을 것이다. (수필미학 26호)
심사위원 여세주(글), 이경희, 김종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