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묻지 않아 비만 오면 파헤쳐지는 과거를,
유해들을 수습해 검은 보자기에 싸서 다시 매장했다.
양지바른 언덕에, 예의를 다해.
무덤 위에 고맘게도
파릇파릇 잔디가 돋아
어머니의 눈물을 덮어주었다.
(최영미, '이장' 전문, 시집 <돼지들에게>에서)
아마도 시인의 어머니 무덤을 이장하고 나서 쓴 시라 파악된다.
지금은 매장보다 납골을 수습하여 모시는 것이 일반화되었지만, 예전에는 시신을 매장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하여 무덤을 돌보는 것이 후손들의 의무라 여겼으며, 때에 맞춰 성묘를 가는 것이 효를 행하는 것이라 생각되기도 했다.
비만 오면 파헤쳐지는 무덤으로 인해 화자는 매번 마음이 쓰였을 것이다.
예로부터 이장을 하기 위해선 이장할 곳을 찾고, 또 택일을 하는 과정에 적잖은 신경을 써야만 했다.
잘 단장된 무덤을 보면서도 늘 사자의 생전 모습이 떠올리기 마련인데, 갑자기 무덤이 파헤쳐진다면 얼마나 황망할까.
그렇게 드러난 유해를 보며 시인은 과거가 파헤쳐진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적지 않은 노력 끝에 이장을 하고, 다시 무덤에 파릇파릇 잔디가 돋는 것을 보면서 그때야 어머너의 눈물이 그쳤을 것이라 위로해 보기도 했을 것이다.
이제 무덤의 주인공이 영면을 맞이하길 빌면서....(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