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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나치에 의해 희생을 당한 유대인의 후손으로서, '그들에게 과연 양심이 있었을까?'하는 의문에서 시작된 저자의 양심에 대한 탐구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처음에는 나치 정권의 문제에만 국한하려고 했다가, 관심 영역을 넓혀 역사 전반에서 양심이라는 주제를 뒤져보기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러한 저자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원저의 제목을 ‘양심: 전기적 고찰(Conscience: A Biography)’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듯하다.
실상 지극히 추상적인 '양심'이라는 단어는 그 의미를 정의할 수는 있지만, 그 정확한 함의를 밝혀내기는 결코 쉽지 않다. 사전적 의미로 '양심'은 어떤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 선과 악을 구별하는 도덕적 의식이나 마음씨로 정의된다. 그것은 밖으로 드러나는 것도 아니고, 개개인의 내면에 잠재하는 것이기에 증명조차도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양심에 대한 역사적 고찰 역시 지극히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으며, 이 책 역시 그러한 한계를 분명히 지니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양심에 대한 탐구는 독자들에게 적지 않은 흥미를 안겨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양심은 도덕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도덕은 선과 악을 구분해 볼 줄 아는 능력이다. 양심은 오히려 인간 영혼을 이루는 부분, 타고난 것이든 습득된 것이든 영혼의 한 부분이다."(머리말 중에서) 저자는 머리말에서 도덕과 양심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도덕과는 다른 양심의 의미를 고찰하면서, 저자는 고대에는 그에 걸맞은 표현이 없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어쩌면 고대의 기록이란 당시의 지배 계급의 산물이기에, 굳이 양심이란 것을 강조할 필요성이 희박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된다. 그래서 '양심 과잉과 양심 부재의 시대'라는 부제는 각 시대마다 현실적 조건에 따라 양심이 강조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가 공존했음을 보여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이해된다.
전체 7장으로 구성된 내용 가운데 1장은 '양심의 근원과 본성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구약과 유대교 그리고 그리스 철학 등을 통해서 양심 혹은 그에 부합되는 의미를 탐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스 철학에서 양심과 가장 가까운 표현이 '자기 자신을 앎'이라고 한다. 결국 양심은 개개인에 의해 그 판정 여부가 맡겨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라 하겠다. 저자의 관점에서는 어느 시대에는 양심이 부재했는가 하면, 때로는 양심 과잉의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고 판단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양심이라는 의미와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던 시절, 그와 흡사한 표현과 의미를 탐구하고자 한 것이 바로 1장의 내용이었다.
2장에서는 '기독교의 세기들'이라는 제목으로, 기독교가 권력을 비롯한 모든 것의 중심을 차지하던 시절 '신의 이름으로' 모든 것이 행해지던 상황을 서술하고 있다. 오로지 성경의 해석을 독점한 특권 계층들의 행위는 양심보다 '신'을 앞세운 판단으로 대중들에게 강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서양의 중세가 흔히 ‘암흑의 시대’로 상징되는 것은 ‘신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던 폭력들이 당시의 시대 상황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결국 루터의 종교개혁을 이끄는 원인이 되었음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신의 권위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즈음, 기독교의 영향력이 조금씩 약화되기 시작하는 것을 저자는 '거대한 분열'이라고 칭하고 있다.
'마키아벨리에서 니체까지'라는 제목의 3장에서는, 여러 사상가들의 활동을 통해서 양심에 대한 다양한 이론들을 소개하고 있다. 마침내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한 니체의 탄생은 근대적 세계관을 뒤흔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니체의 선언은 특정 종교의 권위가 더 이상 모든 사람들에게 강제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종교적 도그마로부터의 해방된 것이라는 이미이다. 증명할 수 없는 양심에 대한 이론적 탐구는 그래서 더욱 추상적이고 관념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니체의 '신은 죽었다!'라는 선언이 나온 이래, 저자는 4장의 제목인 '신 없는 세상'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제 '양심'의 탐구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주장한다. 권력과 종교의 권위가 아닌, 인간 자신의 문제를 통해서 '양심'을 들여다보는 작업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통해서 본격화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일본의 신도와 중국의 유가사상을 통해서 서양과는 다른 동양의 양심 개념에 대해서 설명하지만, 저자의 논의가 그리 깊이 있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대외적인 평판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자신의 행위에 잘못이 없더라도 사과를 함으로써 도덕적 면죄부를 받는 것으로 치부한다는 설명은 흥미로웠다. 이러한 저자의 설명을 통해서, 식민 지배에 대한 과거 위정자들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이를 부정하는 망언을 지속하는 일본 위정자들의 속셈을 파악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즉 그러한 망언을 하더라도 일부 여론 주도층들을 통해 오히려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정치인들의 얄팍한 계산 때문이라고 이해되었다.
이어지는 5장은 저자가 애초 '양심'이라는 개념에 천착하게 된 원인을 제공했던 독일 나치 치하의 '제3제국의 양심'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나치 치하에서 자행되었던 학살에 대해, '명령한 자'와 '명령을 실행한 자' 그리고 '명령에 저항한 자'들의 상황을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서 서술하고 있다. 한나 아렌트를 통해서 알려진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이 절로 연상되는 내용들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드는 점은, 2차 대전 당시 그러한 폭력의 희생자의 처지를 절감했던 그들이 지금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이 자행하는 무자비한 폭력에 대해서는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6장에서는 '옛 우상과 새로운 우상'이라는 제목으로, 근대 이후 새롭게 등장한 양심을 재는 척도들에 대해서 설명한다. '양심과 인권'은 주로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주제를 통해, 어느새 막강한 지위를 차지하고 개인의 양심을 재단하는 국가 혹은 법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건강보험으로 대표되는 의료복지가 때로는 불필요한 막대한 비용을 소모하고, 그것을 통해서 제도에 따라 개인의 건강까지도 좌지우지하는 문제를 '양심과 건강'이라는 항목에서 서술하고 있다. 또한 자연을 보호하고 환경을 지키는 환경운동의 중요성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지만, 때로는 지나치게 절대적인 기준만을 강요하는 것 역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양심과 환경'이라는 항목에서 소개하고 있다. 이처럼 과거의 권력과 종교에 의해 양심의 문제가 논의되던 것이 '옛 우상'이라고 한다면, 여기에 소개된 인권과 건강 그리고 환경은 '새로운 우상'으로 대두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라고 하겠다.
마지막 7장에서는 ‘기술 시대 양심의 자리’라는 제목으로, 양심에 관한 철학적 고찰을 전제하고 이른바 ‘AI’로 대표되는 과학기술 시대에 양심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설정할 지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자동화 과정에서 로봇 혹은 기계의 선택에 의해서 인간의 운명이 좌우될 수 있다는 것은 지금도 과학계에 적지 않은 논란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논의들은 어떤 결말이 나더라도 반론에 부딪힐 수밖에 없음도 충분히 예견되고 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양심’이라는 주제가 엄격하게 계량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두고 말하거나 쓴 것이 그들의 실제 느낌, 믿음, 생각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적어도 양심의 문제에서만큼은 표현과 실제 내용 사이에 간극이 존재한다."(머리말에서) 저자는 남겨진 기록을 토대로 양심을 탐구하는 작업이 쉽지 않다는 것을 머리말에서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양심에 대한 과학적 정의를 내리고 그 기원 및 본성을 완벽하게 설명하는 것이 여행의 목표였다면. 이 책은 실패작’이었을 것이라고 자평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양심의 생생한 우여곡절을 확인하는 것이 목표라면, 이 책은 훌륭한 성공’이라고 볼 수 있다는 평가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양심적이다'라는 표현이 지닌 모호성을 보면, 왜 양심의 탐구 작업이 어려운지에 대해 쉽게 납득이 될 것이다. 누군가에 대해 ‘양심적’이라는 말하는 것도 결국 평가자의 자의적인 판단일 뿐이다. 양심을 객관적인 기준으로 재단하고 논의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양심'이란 단어 뒤에 숨어 행해지고 있는 폭력적인 상황은 없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떠올린 생각들이었다. 그렇지만 지극히 추상적이고 자의적인 개념으로 사용되는 '양심'의 다양한 용례들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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