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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인적으로 신경림 시인의 시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무엇보다 그의 시를 읽으면, 세상과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는 따뜻함이 그대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서 그냥 스쳐갈 수도 있는 사람과 사물들은 그의 시선에 포착되는 순간, 놀라울 정도의 생동감을 가지고 시로 탄생되는 것이다. 그러한 시 세계는 아마도 시인 자신이 그만큼 넉넉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시집에는 평론가나 시인들이 시 세계를 논하는 발문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이미 다른 책에 수록했던 산문을 수정한 ‘나는 왜 시를 쓰는가’라는 글이 시집의 맨 뒤편에 수록되어 있었다. 실상 시집을 볼 때마다, 시인의 시 세계에 대해 상찬(賞讚)으로 일관하고 있는 누군가의 발문이 그리 호의적으로 보이지 않았던 적이 적지 않았다. 아마도 시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서 비롯되었겠지만, 실상 누군가의 상찬에 걸맞은 시 세계를 발견하지 못했을 때는 더욱 그 내용에 대해서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집에는 시인이 한때 시를 멀리했다가, 다시 시를 쓰게 된 상황에 대해서 진솔하고 담담하게 진술되어 있었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 넉넉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집의 표제와 같은 작품은 시집의 맨 앞에 수록되어 있었다.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신경림, ‘낙타’ 전문)
이 시는 아마도 노시인의 자서전처럼 느껴진다. 세상의 문인들이 세속의 권력에 기웃거리는 동안 시인은 그저 시와 글을 품고 ‘낙타’처럼 살았을 것이다. 화자는 오로지 ‘별과 달과 해와 / 모래만 보고 살’았던 낙타를 타고 저승길로 가겠다고 말하고 있다. 돌이켜 생각하면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겠지만, 마지막 가는 길은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 길동무 되어서’ 세상을 떠나겠노라는 화자의 심정을 알 수 있을 듯하다.
이 시를 포함하여 이번 시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이전보다 사유의 깊이가 더해진 것처럼 생각되었다. 여전히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담고 있는 것도 느껴졌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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