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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주변의 사물이나 동물들의 움직임을 통해서 새로운 인식을 접하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은 <새들에 관한 짧은 철학>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새들의 생태와 행동을 지켜보면서 인간의 문제와 관련된 성찰적인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풀어내고 있다. 조류학자와 생태 전문 기자가 합작하여 저술한 책으로, 나로서는 그동안 무심하게 스치며 지나갔던 다양한 조류들의 특징을 알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고 하겠다. 사실 마음의 여유가 없다면 주변의 사물들에 시선을 던지고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삶의 문제와 연결시켜 생각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저자들은 아마도 자연 생태와 조류에 대한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의 습성을 관찰하여 인간 사회의 문제와 연결시켜 질문을 던지고 성찰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을 것이다.
현대인들이 새장이나 동물원과 같은 곳을 가지 않고 새들을 자세히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내가 살고 있는 순천은 철새도래지인 순천만이 위치해 있어, 겨울철에는 철새를 조망하는 탐조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주로 새벽에 전망이 트인 곳에 올라 망원경으로 새들의 종류와 개체수를 확인하고, 철새들의 특징이나 상태에 대해 전문가들의 설명을 듣는 것이 프로그램의 주요 과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프로그램은 주로 일과성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주로 열성적인 활동가들의 의해 철새들의 서식처를 보호하고 자연 환경을 보존하는 일들이 진행되고 있다. 간혹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정도라 철새들의 생태나 활동에 대해서는 여전히 무지한 상태이지만, 활동가들의 열정과 헌신적인 자세에 대해서는 늘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지니고 있다.
저자는 ‘들어가는 글’의 제목을 통해서 우리 주변에 살고 있는 새들을 ‘아주 오래된, 작은 철학자’라고 지칭하고 있다. 주변의 새들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자신과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강조한다. 물론 이것은 조류의 생태에 깊은 관심을 가진 저자들의 관점에서 제기하고 있는 질문과 성찰의 결과일 것이다. 다만 새들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독자들 역시 저자들이 제시한 내용들에 대해서 ‘그들이 가진 철학’의 문제에 대해 공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서, 한동안 매일 걸어서 출퇴근을 하는 동안 주변의 새들을 유심히 관찰했던 것 같다. 때로는 떼를 지어 날거나 지저귀기도 하고, 때로는 홀로 앉아 있는 새들을 유심히 관찰해 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로서는 여전히 그들을 통해서 뭔가 새로운 인식에 도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고백한다.
이 책에는 모두 22개의 질문이 던져지고, 그에 관련된 새들의 생태를 적시하고 저자들이 인삭했던 철학적 사유들이 서술되고 있다. 예컨대 털갈이를 하는 시기에 천적들에게 노출이 되지 않도록 인내하며 견디는 오리를 통해, ‘존재의 나약함을 받아들이는 시간’이라는 성찰에 대한 진술이 이어진다. 또한 모래목욕을 즐기는 암탉의 순간을 포착하여 ‘지금, 이 순간의 강렬한 행복’이라는 사람의 자세에 대한 인식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이처럼 다양한 새들의 생태와 행동을 지켜보면서, 인간의 삶과 연관시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저자 나름의 생각을 서술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이 지닌 중요한 특징이라 하겠다.
저자들은 남의 둥지에 탁란을 하는 뻐꾸기의 습성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를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로 그것을 통해 비정한 동물들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고 평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마도 조류학자의 시각에서는 그들의 다양한 생태가 긍정적으로 해석되기를 의도한 서술일 것이라 이해된다. 그리고 열린 새장을 벗어나도 다시 되돌아오는 카나리아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삶의 조건과 자유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새들을 관찰하면서 느꼈던 생각들을 인간의 삶에 적용시킬 수 있는 ‘짧은 철학’적 질문으로 연결시켰듯이, 이 책의 독자들 역시 자신들의 주요 관심사를 삶의 ‘철학’과 연관시켜 사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느껴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또한 앞으로는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주위의 새들을 자세히 관찰하면서, 저자의 질문에 대해 나름의 생각을 펼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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