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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읽기 시작한 <35년> 시리즈의 마지막 권이 드디어 내 손에서 떠났다. 일제 강점기의 역사를 읽고 접하는 일은 언제나 힘이 들고, 때로는 가슴속의 분노가 끓어오르고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다지는 과정이 되풀이된다. 풍전등화의 상황 속에서 일신의 안위를 좇아 자발적으로 친일의 길로 나서는 인간들이 있는가 하면, 온갖 희생을 마다않고 항일의 길에 나서 독립을 위해 투쟁한 분들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상황을 제대로 직시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절실히 깨닫게 된다.
‘일본이 그리 쉽게 망하리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이제는 죽어 무덤에 묻힌 어느 시인은 해방 이후 자신의 친일 행위에 대해 이렇게 변명을 했다고 한다. 그러한 변명 이외에 그는 죽을 때까지 단 한마디도 자신의 친일 행위에 대해 반성하지 않았다. 이후 이승관과 박정희 그리고 전두환 정권을 거치는 동안, 권력자에 영합하는 삶의 태도는 ‘곡학아세(曲學阿世)’의 전형이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비록 뛰어난 문학적 역량을 지녔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실을 알고 난 이후 그의 작품을 읽는 것을 애써 피하고 있다. 물론 불가피하게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접하게 되지만, 작품의 우수성 외에도 꼭 그의 삶의 행적이 지닌 비루함을 꼭 첨언하게 된다. 그와 비슷한 태도를 보였던 자들이 지금 일본 극우주의의 논리를 반복하면서 '신친일파'로 맹활약(?)하고 있는 현실이 착잡하기만 하다.
1941년부터 1945년까지의 역사를 다룬 7권의 부제는 ‘밤이 길더니.. 먼동이 튼다’이다. 일제 강점기라는 기나 긴 ‘밤’을 지나, 해방을 맞이하여 새로운 날의 ‘먼동’이 튼다는 의미일 것이다. 1940년대 전반, 독일과 이탈리아 그리고 일본의 제국주의자들이 촉발했던 제2차 세계대전은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터지면서 종결이 된다. 그리고 한반도에는 마치 ‘꿈처럼, 또는 도둑처럼’ 해방이 찾아왔다. 희망이 부풀어 새로운 시대를 준비했지만, 남과 북에는 각기 다른 외국 군대가 주둔하면서 진정한 독립의 길은 요원해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패전국 일본 대신 식민 지배를 받았던 한반도가 분단이 되는 비극에 처해졌던 것이다.
해방 이전 일제는 ‘전시 동원체제’에 열을 올리면서, 그야말로 ‘발악하는 제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에 발맞추어 ‘친일 대합창’을 부르는 자들의 진면목이 적나라하게 폭로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친일의 길에 들어선 자들이 너무도 많아서인가, 7권에서는 이들이 명단과 활동상을 보여주는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이다. 그리고 그들은 해방 이후에도 아무런 반성 없이, 미군정과 이승만의 비호로 다시 한국 사회의 주류로 성장하게 된다. 물론 그 가운데 채만식처럼 자신의 친일을 반성하면서 절필을 선택한 이들도 드물지만 존재했다. 그리고 일제의 거센 폭압 속에서도 저항을 했던 이들도 분명히 존재했다. 그 희생이 너무도 컸지만...
광복군을 비롯한 중국과 해외에서 활동하던 독립투사들은 일제와의 마지막 항전을 준비하였으나, 급작스럽게 찾아온 독립으로 인해서 그것을 실천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리고 일제의 패방과 독립, 해방 이후 남쪽에 진주한 미군정과 그들에 의해 추대된 이승만으로 인해 친일청산의 기회는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다. 누군가는 해방을 목전에 두고 일제의 감옥에서 순국을 하기도 했고, 해외에서 힘겹게 독립투쟁을 이어가던 이들은 개인 자격으로 고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전개되기도 했다. 이어지는 ‘해방공간’의 상황은 다시 좌우의 이념 대결로 맞서 혼란스러운 상황이 전개되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일제 강점기 우리의 가슴 아픈 역사를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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