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 일요일이면 쉬기는 커녕 형들은 학교를 졸업하는 대로 도시로 떠나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종일토록 일을 해야 할 때가 많았다. 아침이면 집에서 기르는 가축들에게 먼저 밥을 주고 나서 식사를 할 때 쯤엔 어김없이 이 산 저 산의 양지바른 묫등에서 장끼들이 '꿩~ 꿩~ 푸드득'하며 아침 인사를 했다.
내가 아는 바로는 뭇 짐승들도 자가들만이 아는 보금자리를 감추고 있는데 분명한 것은 눈에 띄는 지형지물이 그 근처에 있는 곳에 자리를 잡는 것이다. 꿩은 일단 날았다가 착지를 할 때 비행기처럼 얼마만큼의 넓은 공간이 필요하고 몸이 크기 때문에 착지하는데 많은 힘을 소모한다. 까치는 사람을 경계하면서도 사람으로부터 얼마만큼은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집이나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 근처에 보금자리를 튼다.
우리집엔 밭이 약 1000평 정도가 있는데 걸어서 20분 쯤 걸리는 야산 너머의 경사진 다랭이 밭이다. 여기에 매년 밀농사를 지었고, 밀의 추수가 긑나면 콩과 깨, 수수, 고추, 고구마 등을 심었다. 물론 추수를 하면 집에까지 지게로 져서 날라야 했고 아바지께서도 하시는데 군소리 한 마디 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 국민학교도 가기 전부터 이웃의 형들이나 친구들이 그러니까 덩달아서 내 키보다 더 큰 지게를 멜방을 줄여 지고 나무를 하러 다니다 보니 낫을 가는 방법을 일찍 터득했다. 그 후로 군에 갈 때 까지 집에 있는 낫이란 낫은 다 갈고 주방의 칼, 가위 등을 가는 것이 어머니께서도 쓰시기 때문에 내 차지가 되었다.
하루는 바로 위의 형과 밀을 베러 가게 되었다. 하지감자를 캘 즈음 밀농사도 추수를 하는데 미리 낫을 여러게 갈고 숫돌과 물주전자를 들고 가 한 시간 쯤 베었을까? 그만 형이 손을 베었다. 하는 수 없이 응급조치로 소나무 속껍질(송진이 들어 있으며 그 옛날 먹을 것 없는 보릿고개에는 이 껍질까지 벗겨 먹었었다고 들었음))을 벗겨 상처를 싸매려고 밭의 가장자리에 묘가 있는 곳 가까이의 수령 10년 쯤 됐을 소나무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덤불을 헤치며 가까이 다가 가는데 소름이 끼쳐지는 예감 같은 것이 느껴져 순간적으로 발을 멈추었다. 처음에는 독사가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으로 생각이 되었는데 움직이지 않고 아래를 자세히 보니 까투리가 덤불 사이에서 쭈구리고 앉아 있는 것이었다.
도망을 가지 않고 있으니 손으로 잡아 보겠다고 아주 천천히 두 손 바닥을 폈다가 빠르게 눌렀는데 그 순간 꿩은 털이 약간 빠진 채로 도망을 치고 누르는 힘에 둥지 안에 있던 알만 두 개나 깨버렸다. 물론 알을 품고 있으리라는 생각은 못했었고, 꿩은 알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이 위험한 상태에 까지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꿩의 병아리들이 아직 날지를 못 할 때는 마치 다람쥐색 같은데 사람 등 위험에 닥치면 도망을 치다가 발로 가랑잎을 집고 발랑 누우며 숨어 잡기도 어렵고 야생의 성질이 있어 집에서 기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소나무 껍질을 벗겨와 손가락을 감싸고 나서 뽕나무 그늘에 앉아 쉬며 오디를 따 먹었다. 그리고 나머지 알들은 가져와 집에 가지고 가 삶아먹었다.
꿩알은 달걀보다는 작고 잿빛 점들이 섞인 연한 푸른색을 띄고 있다. 지금 같아선 확신하건데 그 알들을 그냥 놔 두고 왔을 것이다. 대구의 앞산에서도 가끔씩 꿩을 보는데 논 밭 하나도 없는 이 곳에 꿩들이 산다는 것도 의아스럽지만 요즘은 벌래 하나도 제대로 죽이질 못하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어려서부터 산과 자연을 좋아 해 혼자서도 계룡산 준령인 고향의 뒷산을 골짝골짝마다 무섭다는 생각도 없이 헤매었고 지금도 어느 골짝 어느곳에 어떤나무와 어떤 바위들이 있는지 눈에 선하다. 그러다 보니 독사들도 자주 부닥쳤다. 갑작스러운 것은 뱀도 나도 마찬가지여서 너무 가까이 조우했을 때는 서로 놀라기 때문에 물리지 않기 위해서는 꼼짝도 않은 상태에서 뱀과 눈싸움을 하며 안정시키면 뱀이 먼저 또아리를 풀고 사라져 갔다. 이 것이 내가 터득한 뱀에게 물리지 않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눈싸움을 하다 보니 뱀의 옷 색갈들이 그렇게 조화로울 수가 없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사의 잿빛 무늬들과 특히 꽃뱀이라는 능사의 경우 조화로우면서도 호화로운 무늬가 징그럽다는 생각 보다는 저렇게 아름답다니 하며 감탄을 하게 했다.
아카시아 꽃이 필 이맘 때는 하얀 칠래꽃도 피고, 보리와 밀들이 익어가기 시작한다. 전과 확연히 다른 것은 더위속에도 들려오는 노란 꾀꼬리들의 춤과 노래 소리들이 참으로 아름다웠는데 지금은 그 꾀꼴새들을 보기조차 어렵다. 약을 많이 치다보니 먹이들도 사라지고 생태환경이 변해서 이리라.
첫댓글 글을 보고 있으니 삼철리 금수강산이 눈에 선하네요 요즘은 한참 프르름을 뽐내고 있을터 인데 산에 가고 싶어 지네요 전에는 뱀도 잘 잡았는데 지금은 그냥도요 지도 살라고 나왔는데 ㅋㅋㅋㅋ
자연에서 터득한 지난 날의 지혜를 리얼한 필치로 써주셨네요. 산과 들이 삶의 학교였고, 지게 지고 일하면서 인생을 배웠던 지난 시절에 비해 요즘 아이들은 콘크리트 숲속에서 과외로 꿈과 동심을 잃어가고 있으니 정말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효웅님의 글 잘 읽고 갑니다.
어린 시절 시골에 살때의 이야기군요. 꿩과의 조우. 긴장감도 잠시 꿩을 잡으려다가 부화 중인 꿩의 알을 깨고 말았군요. 이선생님의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뱀이다~. 개구리다~ 똥개다~ ㅎ ㅎ ㅎ 참아주세요!